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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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봄인가 인스타의 피드를 한 소설이 장악하다시피 한 적이 있다. 영어 제목은 <The House of Broken Angels>였다.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라던가. 우리말로 해석하면 망가진 천사들의 집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드디어 번역이 되어 내 곁을 찾아왔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이라는 이름으로.

 

우선 책의 표지를 살펴보자. 오래전 어느 수업 시간에 영화의 포스터와 오프닝을 보면 그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대강을 파악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렇게 우레아 작가의 소설 표지가 상징하는 것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가장 먼저 중앙의 메히코 전통 모자인 솜브레로가 눈에 띈다. 어떤 식으로든 메히코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할 거라는 점을 상징한다. 그 다음에는 한 쌍의 천사 날개다. 천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천국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누군가 곧 죽을 거라는 그리고 어쩌면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상상이 가능하리라. 마지막으로 세 채의 집들이 하단을 장식한다. 아마도 메히코 패밀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 위에 겹쳐진 반원들은 약속을 의미하는 무지개로도 볼 수 있을 듯 싶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썰을 풀어 보자. , 이 책을 수중에 넣기 전에 우레아 작가의 인터뷰 동영상을 유튜브로 찾아봤다. 작가의 실제 생활을 너무 투영하는 것도 독해의 오류겠지만, 작가가 말미에 적어 놓은 것처럼 글을 쓰는 사람을 잘 훔쳐야 한다는 표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한 동시에 유한하기도 하니, 누군가의 이야기 혹은 서사를 훔쳐서 새로운 형태로 수정하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 아닐까 싶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미국 중에서도 메히코로부터 미국이 강탈한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다. 평소 메히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시간 엄수에 목숨을 걸어 독일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우리의 주인공 빅 엔젤(앙헬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 파파 아메리카의 장례식이 늦었다. 바이 골리!!!

 

메히코 라파스에서 천조국으로 건너온 데 라 크루스 집안의 총수 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바로 다음날 자신의 성대한 70세 생일파티를 치를 예정이다. 모든 일가붙이들을 총동원해서 말이다. 그 어느 예외도 없다. 시애틀에서 사는 자신의 배다른 동생 리틀 엔젤 교수를 필두로 해서 없는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트랜스젠더 가수 엘 인디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차례로 등장하는 데 라 크루스 집안 선수들의 면면은 천명관 작가의 <고령화가족>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능가한다. 이런 선수들이 총수의 명령으로 총집합했으니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장례식과 생일 파티를 치른다면 그게 더 웃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빅 엔젤이 지금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했던가? 데 라 크루스 총수는 마지막으로 가족들이 모여서 한바탕 신나는 잔치를 벌이길 원한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멋진 한 판 승리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총수는. 한 편으로 공감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 아무래도 좀 그건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

 

경찰이자 바의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린 바람둥이 아버지 돈 안토니오로부터 시작해서 빅 엔젤 그리고 그 다음 자식대인 엘 인디오, 브라울리오, 랄로 그리고 여걸 라 미니에 이르는 메히칸 가족 3대에 걸친 이야기는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속설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해준다. 우레아 작가는 물론 거기에 유머라는 양념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초반에 복잡한 데 라 크루스 집안의 가계도를 상상하지 못할까봐 리틀 엔젤 교수님이 그린 가계도를 말미에 붙여주는 서비스 정신도 칭찬할 만하다.

 

두집살림을 차린 돈 안토니오 덕분에 빅 엔젤과 리틀 엔젤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은 감정의 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링고 여인 베티를 만나 라파스의 가족을 버리고 월경한 돈 안토니오 덕분에 빅 엔젤 가족들은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생고생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베티와 리틀 엔젤이 호의호식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렇게 두껍게 쌓인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에 우레아 작가는 소설의 방점을 찍는다.

 

우레아 작가가 가족 간의 갈등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도를 넘지 않게 하기 위해 그야말로 빵빵 터지는 에피소드들을 절묘하게 배치하는데 성공했다. 엔딩에서 돌아온 탕자 역할을 기가 막히게 수행해낸 엘 인디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조국을 위해 머나먼 이라크까지 가서 당한 부상으로 퍼플 훈장까지 받았지만 결국 불법체류자 딱지를 떼지 못하고 마약중독자가 된 아들 랄로, 티후아나에서 미국 국경을 넘으면서 앵무새 밀수를 하려다 실패한 마마 아메리카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주옥같은 서사들이 빵빵 터진다.

 

내가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을 읽으면서 짚어낸 주제는 이민의 나라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기다. 미대륙에 원래 살던 아메리카 인디언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주한 이방인들이 누가 먼저 왔냐에 따라 후발주자들을 무시하고, 더 이상의 이민을 막기 위해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살벌한 장벽을 세우겠다는 일단의 선동가들의 난센스에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우레아 작가는 애써 유머로 포장하려고 하지만, 히스패닉 사람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을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말이다.

 

어쨌든 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가족뿐이라는 결말에 순순히 동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또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어쨌든 우레아 작가가 절묘하게 설계한 엔딩에서는 아주 쬐끔 안구에 습기가 차오르기도 했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이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이라고 하는데 다른 소설들은 어떤 서사로 무장되어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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