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숨님이 2020 달궁 첫 독서모임 책으로 골라 주셨다네. 20분이면 읽을 수 있다는 나의 구박을 철회하고 결국 당당하게 테드 창의 책과 함께 당첨!!! 사실 20분은 더 걸렸다. 아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들은 그러리라는 나의 착각 때문이었겠지.

 

사실 오래 전 친구가 선물해준 <향수>를 읽고 나서 뻑이 가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열혈 팬이 되어 버렸다. 얍삽하게도 책이 얇아 읽기 쉬웠다는 점도 빠트릴 수 없을 것이다. <비둘기>도 아마 그 때 읽었지 싶다. 그런데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중고서점으로 달려가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

 

우리의 주인공 조나단 노엘 씨는 올해(1984) 53살의 은행 경비원이다. 그는 바라는 게 아무 것도 없다. 1931년에 태어난 조나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태인 학살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누이와 함께 시골 마을 아저씨네 농가에서 숨어 살았다. 기구한 운명의 시작이 아니던가. 결혼한 아내는 바람이 나서 도망가 버렸다지. 그전에는 프랑스의 불의한 인도차이나 전쟁에도 참가했다고 한다. 비극으로 얼룩진 프랑스 현대사의 증인이 아닐 수 없다. 파렴치하게도 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나치의 유대인 이송에 협력한 1942716일 벨로드롬 디베르 사건은 아마 오랜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미처 몰랐을 사건일 곳이다.

 

파리는 조나단 노엘에게 안락의 공간이었다. 은행 경비원으로 지내면서 24호실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꾸민 그는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인 일상을 영위한다. 그놈의 비둘기란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어느 금요일 아침 마주친 비둘기와 그 비둘기가 복도에 싸지른 똥 때문에 그의 삶은 꼬이기 시작한다. 사실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자신의 안락한 거주지 대신 호텔 방은 전전하게 되다니 말이다. 당시 프랑화의 가치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55프랑하는 저렴한 숙소를 전전하다 보면 파산하게 될 거라는 조나단의 고민이 얼마나 실존적인가.

 

우리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거주지에 대한 불안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유럽 각국의 주요 도시에서 월세가 폭등하는 현상은 물론이고 미국에서 집세가 비싸기로 유명한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노숙자들이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조나단이 공원에서 마주친 거지 아저씨의 모습에서 오늘날의 현실을 그대로 볼 수가 있었다.

 

조나단 노엘은 타인에게 혐오를 주는 행위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 그의 성격이 나와 비슷해서인지 몰라도 격렬하게 공감이 됐다. 그래서 그는 공원의 벤치에 두고 온 우유팩을 가지러 갔다가 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만 자신의 바지가 찢어진 것이다! 오 맙소사. 도대체 왜 신은 그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 모든 걸 비둘기 탓으로 돌려야 하는 걸까. 비둘기의 날갯짓 하나가 조나단에게 이런 큰 시련으로 돌아오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바지 수선을 부탁하러 갔다가 3주 후에나 찾으러 오라는 말에 조나단은 절망한다. 그리고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아니 그놈의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쥐스킨트 작가는 <비둘기>에서 우리 현대인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회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없이 경비원으로 은퇴한 다음, 조용하게 자신만의 작은 공간에서 살고 싶어 했던 조나단 노엘의 시련은 비둘기 한 마리가 던져준 공포로부터 시작된다. 어이없는 사건에서 비롯된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조나단의 의식을 잠식해 버리고, 결국에 죽음에 이르는 궤도에 그를 올려놓는다. 아마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게 뭐였지하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거리를 지나가다가 거리에서 모이를 쪼아 먹고 있는 비둘기 군단을 보고 길을 돌아가던 행인 사람이 불쑥 났다. 조나단도 아마 비슷한 생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조나단의 체면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던가. 빈 틈 하나 없이 견고하게 구축된 조나단의 일상에서 근무복 바지가 찢어진 게 그렇게 문제란 말인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스카치 테이프로 일단 급한 불은 끄는데 성공하지 않았던가. 그가 용서할 수 없었던 건 그런 자신의 태도였을까.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지 못한 그의 모습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너무 빡빡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쥐스킨트의 소설 <비둘기>에 대한 내 생각은 이 정도다. 나머지는 동지들의 생각을 들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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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12-27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세히 보니 엠블렘 5개가 모두 연속선에 있네요^^ 2020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19-12-28 12:40   좋아요 0 | URL
어쩌다 보니 알라딘 개미지옥에 빠
지게 되었답니다 ㅋㅋㅋ

새해에도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또 달려 보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0-02-07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열혈 팬입니다. <비둘기> 다시 읽고 싶네요^^

레삭매냐 2020-02-07 22:35   좋아요 0 | URL
<깊이에의 강요>도 다시 읽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