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맨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만난 쿳시의 9번째 책이다. 이번 주에만 네 권의 쿳시 책을 읽었다. 아주 무서운 속도로 읽어대는 중이다. 오늘 읽기 시작한 자전적 소설 <섬머타임>도 절반도 넘게 읽었다. 목표 이상의 성적이라 대단히 만족스럽다.

 

남아프리카를 떠나 호주 시민권을 딴 쿳시가 호주 애들레이드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 소설이 바로 <슬로우 맨>이다. 청년 시절 호주 배낭여행을 갔을 때. 들린 애들레이드에 대한 나의 추억은 와인 투어였다. 공짜로 제공되는 와인을 하루 종일 마셔서 그야말로 각종 와이너리에서 거의 알딸딸한 상태로 돌아다닌 기억만 남아있다.

 

사건은 주인공 폴 레이먼트가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왼쪽 다리를 잃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마 젊은이였다면 고난의 접합 복원수술을 했겠지만, 초로의 폴에게 선택지는 절단이었다. 의사는 때로 그런 살벌한 결정을 내려야 하나 보다. 갑자기 발생한 장애로 폴은 정상적 생활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복지사의 조언대로 간호사 겸 도우미를 집안에 들이게 된다.

 

그의 선택을 받은 간호사는 크로아티아 난민 출신 마리야나 조키치다. 평생 불구로 살게 된 남자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여성 마리야나를 사랑하게 된다. 문제는 그녀가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 유부녀란 점이다. 아내 앙리에트와 오래 전에 이혼하고, 자식마저 없는 폴의 의식세계에 유사가족을 꾸미겠다는 망상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쿳시 작가는 흥미롭게도, 대화체 문장에서 폴이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 혹은 해서는 안되는 표현을 썼다가 정정하는 기법을 구사한다. 독자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고수답다.

 

전직 사진사인 폴 역시 마리야나와 같은 이방인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폴은 6살 때, 계부를 따라 호주로 건나왔다. 의족과 재활을 거부하는 폴의 모습에서 나는 오래전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연출한 <크래시>가 생각났다. 그 영화는 미케닉한 에로티시즘을 구사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과연 폴이 지향하는 욕망의 탄착점이 어떨지 자못 궁금해지는 그런 순간이다.

 

아주 느린 속도로 폴은 간호사이자 도우미인 마리야나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켜 나간다. 그리고 마리야나의 가정사에 폴의 개입이 시작된다. 해군사관학교 진학을 원하는 마리야나의 16세 아들 드라고에 대해 자식이 없는 폴은 비싼 사립학교 비용을 자진해서 대겠다고 제안한다. 마리야나의 남편 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제안이었다. 내가 봐도 폴의 제안은 순수해 보이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는 드미 무어 출연의 <은밀한 유혹>이란 영화가 떠올랐다.

 

소설의 진짜 기묘한 장면 중의 하나는 72세 작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등장이다. 잔잔하게 진행되던 소설은 엘리자베스가 출현하면서 격랑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점 중의 하나는 그녀가 어떻게 폴의 스토리를 알고서 나타났는가이다. 그리고 뚜쟁이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마리아나를 폴에게 소개시켜준다. 그것은 다른 형태의 에로티시즘으로 묘사된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순수한 호의로 드라고를 자신의 아파트에 받아들인 폴은 청소년 기의 아이들을 다루는 게 어떤 일인지 전혀 몰랐던 것이 틀림없다. 드라고는 자주 선을 넘는 행동을 하고, 폴이 애지중지하는 사진을 훼손하는 일까지 벌인다. 결국 폴의 인내심을 바닥이 나고, 엘리자베스의 조언대로 결판에 나서게 된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한 캐릭터는 바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다. 쿳시가 <슬로우 맨>을 발표하기 전인 2003년 작의 제목이 바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아직 읽어 보지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마치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쿳시는 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는 도대체 어떻게 주인인 폴도 몰랐던 포슈리의 사진이 드라고에 의해 날조된 것을 알았던 걸까. 그녀는 과연 자신의 소설의 소재로 써먹기 위해 폴에게 접근했던 걸까. 또 그녀는 폴의 눈에 밀가루반죽을 붙이고 만난 마리아나와의 관계를 통해 각자, 구원을 얻게 될 거라는 설득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돈도 주어야 한단다. 도대체 이 소설에서 코스텔로 여사의 정체와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을 살면서 숱한 변신 내지 탈피를 하기 마련이다. 자의에 의하든, 타의에 의하든 간에 말이다. 폴의 경우는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일단 신체의 자유를 속박 당했다. 자신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샤워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그런 그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마리야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건 필연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폴의 제안은 마리야나에게 거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에 가깝다. 그 다음에 어떤 요구가 올지 모르는. 후반에 폴은 마리야나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만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 내가 너무 상황에 몰입한 모양이다. 쿳시 작가가 그리는 과연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가란 질문은 각각의 단계의 상황에 처한 폴의 대처에서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러운 추론에 도달한다.

 

드라고에 대한 오해(?)는 소년이 사고로 고장난 폴의 자전거를 조키치 집안이 모두 동원되어 손으로 손잡이를 돌리는 자전거로 개조한 장면에서 비로소 해방된다. 그렇다, 모든 것이 미아 컬파(내 잘못이다)였던 것이다. 진실이 무엇이었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미아 막시마 컬파 Mea Maxima Culpa.

 

[뱀다리] 드라고의 사진 훼손 사건으로 마리야나에게 따지러 간 폴에게, 빛의 사로잡아 물건이 된 이미지(사진)에 원본이 어딨냐고 따지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기술목제 시대에 사진의 오리지널리티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쿳시 스타일의 항변이 절묘하지 않은가 말이다.

 

[뱀다리2] 책 표지의 왼발 석고상이 무언가 했더니만, 폴이 사고로 잃은 다리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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