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1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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쿳시 읽기에 매진 중이다. 모름지기 독서에는 무언가 강력한 동기 유발 요인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 쿳시 도장깨기를 시전 중인 나에게 동기는 바로 달궁 독서모임이다. 이 정도는 읽어야 모임에 나가서 신나게 털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지난 며칠 동안 죽어라 쿳시를 읽었다. 모임책인 <야만인을 기다리며>을 시작으로 <나라의 심장부에서> 그리고 <철의 시대>까지 섭렵했다. 토요일 전까지 <슬로우 맨><서머타임>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철의 시대>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교수 출신 지식인 커런 부인이다. 아주 후반에 가서야 독자는 화자의 이름을 알 수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딸은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에 질려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영위한다. 그리고 커런 부인은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의사에게 전해 듣는다. 암에 걸렸고 이제 남은 날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삶 가운데 노숙자 퍼케일 씨가 그의 개와 함께 침투한다. 커런 부인의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딸에게 보내는 편지다. 커런 부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피로 얼룩진 땅을 떠난 딸이 자신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터널 때문에 돌아오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앞둔 초로의 늙은 여인이 고독하지 않고, 고통이 없다는 건 아니다. 고통은 의사가 처방한 디코날로 잠시 유예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약효가 떨어지면 바로 고통이 엄습한다. 커런 부인은 냄새나는 홈리스 퍼케일 씨에게 동정에 기반한 자선 대신 정원사 일자리를 제공하지만, 퍼케일 씨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브랜디 한 모금을 원할 따름이다.

 

커런 부인은 그런 퍼케일 씨와 모종의 거래를 시도한다. 자신이 죽으면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해 달라는 것이다. 이 거래는 자꾸만 덩치를 불려서 자신의 메신저가 되어 미국에 있는 딸에게 직접 전달해 달라고까지 한다. 하지만 동시에 커런 부인은 퍼케일 씨를 믿지 않는다. 불신하는 남자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의문이 들었다.

 

화자가 규정한 <철의 시대>를 사는 커런 부인은 냉소적이다. 폭력과 증오로 얼룩진 남아프리카를 오늘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지식인 계급이었던 커런 부인 역시 아파르트헤이트의 무력한 공모자일 수밖에 없다.

 

초반의 미묘한 갈등은 커런 부인의 집에서 일하는 플로렌스의 아들 베키가 시위 도중에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피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 그전에 경찰의 고의로 베키의 친구 존이 사고로 머리를 다치는 것을 커런 부인은 직접 목격한다. 그동안 커런 부인이 관조적인 입장에서 흑인들의 저항에 동조했다면, 십대 소년 베키의 죽음은 죽어가는 부인의 각성을 촉구하기에 이른다. 경찰들을 속이면서 플로렌스를 베키에게 데려다 주는 장면은 장엄 그 자체였다. 도대체 흑백 간의 이런 격렬한 증오와 분노의 뿌리는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라틴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교수 출신답게 흑인 소년들이 어른 세대에게 선동되고 조종되어 멋모르고 자유와 차별 철폐를 요구하다가 결국 죽게 되었다는 서사를 설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커런 부인은 과연 기존 질서의 수호자였을까? 곧 죽음을 앞둔 커런 부인은 어린 아이들은 전쟁터 같은 증오의 현장에서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동시에 카리타스라는 라틴어를 이용해서 노숙자 퍼케일 씨를 속이는 위선자이기도 했다. 과연 그런 무력한 공모자가 말년에 정의의 편에 선다고 해서 자신의 과오를 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게 쿳시 작가는 독자에게 우리가 직면한 복잡한 방정식의 정의에 대한 변증법적 사고를 멈추지 말라고 주문한다. 우리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소년 베키의 죽음이 커런 부인의 영역 밖에서 발생했다면, 존의 경우는 그녀의 집에서 발생했기에 그만큼 그녀가 느낀 충격도 컸다. 퍼케일 씨와 베키 그리고 존 모두 그녀를 이용한다. 특히 존은 권총과 폭발물을 커런 부인의 집에 은닉해 두었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에 결국 총에 맞아 죽었다. 주인공의 죽음이 서서히 진행되는 가운데, 두 개의 결정적 죽음들이 발생한다. /요하네스를 구하려는 커런 부인의 거짓말과 수고는 소용이 없었다. 이제 커런 부인은 자신의 죽음을 기다릴 차례다.

 

소설의 어디에선가 그녀는 고전을 가르치던 교수답게 유식한 라틴어를 구사한다. honesta mors(명예로운 죽음). 대화나 소통을 통한 갈등 해결 대신, 강대강의 대결만이 치열하게 대치되던 아파르트헤이트의 현장에서 커런 부인이 추구하던 명예로운 죽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피와 대지의 형상이 떠오른 곳에서 철의 시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이들에게 오래전 타키투스가 남긴 말을 전해주고 싶다.

 

honesta mors turpi vita potior (명예로운 죽음이 불명예스러운 삶보다 낫다)


[뱀다리] 쿳시 작가는 주인공 커런 여사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사랑하라고.

그리고 사랑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해 보라고.


그게 어쩌면 진정한 구원에 이르는 길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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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10-23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화이팅!이 넘치세요~~ 늘 좋은 에너지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쿳시의 작품 늘 생각은 하는데 워낙에 안 읽은게 많아 이렇게 리뷰보며 입맛만 다시네요ㅎ 글 잘 읽었습니다. 남은 작품도 꼭 완독하셔서 독서모임 잘 하시길요~~

레삭매냐 2019-10-23 13:04   좋아요 1 | URL
제가 지금까지 읽은 쿳시의 책이
모두 8권이네요 :>

이제 6권 남았습니다.
뭐 또 새로운 책이 나오면 더 늘
겠지만요. 감사합니다.

초딩 2019-10-23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궁모임은 어느 지역이에요? 감색해보니 달궁이 대구쪽 지명 같기도한데 ㅎㅎ

레삭매냐 2019-10-23 20:59   좋아요 1 | URL
서울 종각에서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에 모여서 책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