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웨이크
무르 래퍼티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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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달궁 독서 책이라 읽게 됐다. 원래 에스엡 소설은 잘 읽지 않거든. 지난번에 한동안 에스엡 소설에 꽂혀서 죽어라 읽은 적이 있지. 그 다음에는 좀 시들해져서 멀리 했고. 그 때도 아마 달궁책으로 읽게 되었는데 정작 독서모임에는 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완독도 했고, 영생-클론 복제-기억 이식 등 정말 한 가지 주제만 가지고서도 수 시간 동안 토론할 만한 내용이 많아 주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서기 2493년 그러니까 25세기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진행된다. 자그마치 400년이 걸리는 항성 이주 계획의 일환으로 도르미레호는 2,500명을 냉동수면 상태의 인간들과 6명의 승무원 그리고 인공지능 이안의 인도로 우주여행에 나선다. 그리고 바로 비극의 문을 열어 제친다. 승무원 모두가 죽은 것이다! 짜잔 그리고 6명의 승무원 가운데 가장 하급 인원인 마리아 아레나부터 복제 상태에서 깨어난다.

 

인류는 마인드맵이라는 시스템을 개발해서 새로운 복제 인간에 기억을 이식해서, 영생을 추구한다. 이거 놀랍지 않은가. DNA가 복제돼도 기억은 그럴 수 없다는 복제기술 시대의 맹점을 기억 이식이라는 방식으로 돌파해낸 것이다. 이 장면은 바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이식된 기억을 감별해내는 보이트캄프 조사를 연상시켰다. 유사 이래 새로운 것은 없었지.

 

우주를 부유하고 있는 도르미레호라는 우주선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도대체 누가 범인이랑 말인가. 전형적인 장르 소설의 밀실트릭이다. 그러니까 6명의 승무원 중에 범인이 있다는 거지. 마리아는 요리와 청소를 맡은 잡역부다. 모두 지구나 루나에서 중죄를 짓고, 사면을 조건으로 해서 400년이나 걸리는 우주 여행길에 나선 것이다. 무한으로 반복되는 클론 복제로 더 이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인류, 아니 그런 상태의 클론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바로 윤리적 문제가 튀어나오는구만 그래.

 

팟캐스터 활동을 하던 무르 래퍼티 작가는 전형적인 밀실트릭 구조에 각각의 승무원들이 가지고 있는 화려한 범죄경력을 양파 까듯 하나하나 까면서 모두가 범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기술을 시전한다. 먼저 전직 군인으로 전쟁영웅이었던 카트리나 들라크루즈 선장은 누군가에게 폭행당해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절대 두 개의 클론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보충법안에 따라 혼수상태의 카트리나 선장은 재순환처리 되어야 하지만, 의사 조애나 글래스 박사는 선장의 명령을 자신의 권한으로 무마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사실 가운데 중요한 점 하나는 승무원 모두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해서 클론 출신 백만장자 샐리 미뇽과 이러저러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모두가 그녀의 협박 혹은 제안에 따라 도르미레호에 탑승했는지 모르겠다.

 

전과에 대한 한 겹의 의혹만으로는 소설을 흥미롭게 만들기는 역부족이었으리라. 그래서 무르 래퍼티 작가는 몇 겹의 기억을 중첩시키면서 내러티브 후크를 시도한다. 일단 누가 범인인가? 범인은 무엇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인공지능 이안의 능력마저 초기화시키고 모든 기억을 삭제했나. 배후에는 온갖 감정들이 춤을 춘다. 배신의 드라마, 클론폭동에 대한 분노, 끝까지 인간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사제의 스토리, 마인드맵 해킹이라는 범죄, 그야말로 인간 복제에 관한 모든 이슈들이 총동원된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아닐 수 없다.

 

소설을 읽는 동안, 소설의 컨텐츠와는 무관한 나의 상념들이 우주의 공간을 누비기 시작한다.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인간/클론들에게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개념이 되었다. 예비 신체에 마인드앱을 깔기만 하면, 영생이 가능하다는 설정은 또 어떤가. 생애 가운데 가장 최고의 컨디션의 피지컬로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면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군터 오르만 신부처럼 철저한 반클론주의자처럼 영생이 아닌 일생을 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중에 진짜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리아 아레나 박사처럼 내가 가진 천재적 기술이 기업이나 사악한 야심가에게 휘둘리게 되어 자신의 양심과 달리 악용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안에 하나가 아닌 세 개의 다른 정신이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투쟁하고, 통제받지 않는 범죄를 저지르려고 한다면 어쩌지? 내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육신이 제거되어 인공지능 신세가 되어 반기계적으로 생존해야 한다면? 무르 래퍼티의 <식스 웨이크>가 던지는 질문들은 끝이 없다. 어쩌면 오래된 미래의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에스엡 장르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다 읽은 뒤, 나의 마지막 질문은 이렇다.

우리 인간에게 영생은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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