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 프리메이슨 - 서양인 연쇄 살인사건
정명섭 지음 / 마카롱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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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소설의 배경이 병자호란이었다면, 이번에는 구한말이다. 역사 스릴러 장르를 개척 중인 정명섭 작가의 신작 <한성 프리메이슨>은 제목 그대로 1906년 일본의 국권 침탈이 가속화되던 시절, 한국에 상륙한 비밀 결사 프리메이슨 그리고 그와 연관된 연쇄살인을 다룬다. 어때 이 정도만 해도 벌서 염통이 쫄깃해 질 정도의 그런 재미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소설은 한미전기에 다니던 미리견(미국) 사람 마크와 제니 트래비스가 의문의 살인을 당한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유명한 평리원 검사 이준과 실존 인물은 호머 헐버트 박사가 등장해서 팩션의 재미를 더한다. 헐버트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으로 사회장을 치른 분이시며 지금은 양화진 묘역에 안장되셨다고 한다. 이거 놀라운 사실이군 그래.

 

이준은 러일전쟁 당시 늑대처럼 한반도를 집어 삼키려는 아라사(러시아)와 맞서 싸운 승냥이 일본이 대한제국의 주권을 지켜 주리라 생각하고 부상당한 일본군을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서기도 했지만, 곧 식민지배의 날카로운 야욕을 드러낸 일본의 본색을 알고 반일주의자로 거듭나게 된다. 어쨌든 이준 검사는 양인척살 사건의 배후를 캐고, 대한제국의 군주 고종은 군부대신 이용익과 합의해서 제물포에서 일본 낭인을 상대로 그야말로 슈퍼히어로급 활약을 펼친 통신원 7호에게 특명을 전달한다. 물론 소설 초반에 그게 무슨 일인지 밝히면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이 떨어지기에 작가는 적당한 선에서 밀당을 시도한다. 통신원 7호의 과거를 슬쩍 밝히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떡밥 투척도 등장한다.

 

번사창에서 통신원 7호를 맞이하는 백발노인의 모습은 스파이물 007의 Q와 너무 유사해서 웃음이 났다. Q 할아버지도 더블오쎄븐에게 맞춤형 무기를 제공해 주지 않았던가. 덕국에서 십년 전에 개발된 최신형 무기 마우저 C96가 조선 땅에 흘러 들어왔다는 점도 신박하게 다가왔다. 개머리판을 달 수가 있어서, 당시 조선 사람들은 목갑총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더라.

 

나중에 밝혀지게 되지만 통신원 7호는 훗날 실미도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일단의 특수요원들에 버금가는 훈련을 강화도 모처에 극비리에 마련한 장소에서 받는다. 어라, 어느 장면에서는 또 영화 <니키타>가 연상되기도 하네. 통신원 7호의 본명은 고종욱, 거의 슈퍼히어로급에 버금가는 혹은 제이슨 본을 능가하는 실력으로 고종의 밀명을 받고 사건 해결에 나선다. 진고개 아편굴을 습격하는 장면과 응봉산 일대에서 일본 사무라이를 상대로 펼친 활약을 스크린으로 옮긴다면 어떨까 싶을 정도의 재미를 선사한다.

 

살인사건을 배후에서 꾸민 제물포 대아해운의 사장 하야시는 조선에 침투한 프리메이슨 세력이 조선을 집어 삼키려고 한다는 음모론을 제시하는데, 그 부분이 아무래도 소설적 핍진성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한성에 일단의 프리메이슨 세력이 침투했다는 점은 소설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유래하고, 예루살렘 성전 건설 책임자(히람 뭐라더라), 중세 성전 기사단을 거쳐 석공조합(메이슨!) 그리고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전쟁 등등을 압축한 음모론은 그야말로 절정으로 치닫는다, 놀랍다 놀라워.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발전할 수도 있구나 하고 말이다.

 

지난달 독서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오늘 아침에 잡은 <한성 프리메이슨>으로 말끔하게 슬럼프에서 탈출선언을 할 수 있게 되었지 싶다. 양인척살 사건 과정에서 고종의 신임을 얻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애국역사 이준이 군주에게 발탁되어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는 장면으로 마무리를 지은 것도 일품이었다. 일본에서 프리메이슨 지부인 롯지가 존재했고, 정한론의 주창자도 프리메이슨이었다나 어쨌다나. 세이난 전쟁과 의화단의 난에서 활약했다는 하야시의 존재감이 통신원 7호의 그것에 비해 너무 작은 것도 좀 아쉬웠다.

 

다른 건 몰라도 읽는 재미 하나는 끝내줬다. 이제 노동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장강명의 신간을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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