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리커버 특별판)
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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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서 저주 받은 걸작으로 알려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는 미국 출신의 SF 작가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1968)를 그 원전으로 하고 있다.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간 SF걸작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너무나 많은 철학적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책을 읽으면서 과연 원전과는 어떻게 달랐는가를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주인공 릭 데커드(경찰 소속의 현상금 사냥꾼)가 화성 식민지를 탈출한 (영화에서는 레플리컨트로 불리는) 안드로이드들을 ‘은퇴’(retire)시키는 과정과 다른 하나는 “특별자”로 전쟁 후 방사능 낙진이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을 침묵시키는 지구에 남아 가짜 동물 수리점에서 일하는 “닭대가리” 존 이지도어가 자신이 대면한 데커드가 찾는 안드로이드들을 돕는 이야기다. 궁극적으로 두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마치 현대사회에서 자동차가 개인이 가진 권력과 부의 상징인 것처럼, 핵전쟁으로 거의 모든 동물들이 멸종된 지구에선 남들이 가지지 못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 큰 특권으로 치부된다. 주인공 데커드 역시, 자신이 기르고 있는 ‘전기양’(electric sheep)의 존재를 타인이 눈치 채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사냥을 통해, 언젠간 진짜 동물을 사겠다는 꿈을 꾼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마저도 ‘펜필드 기분 전환기’라는 기기를 통해 조작해내는 미래상은 유토피아라기보다는 디스토피아에 더 가깝다. 게다가 하루 23시간 방송되는 인기 쇼프로그램에 중독되어 사람들의 모습은 미래에 미디어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저자 필립 K. 딕의 무언의 경고처럼 다가온다. 감정 이입기를 통해 지구에 남겨진 자들은 갈 수 없는 외계 체험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자본주의의 병폐인 양극화 현상의 극단화로 인한 자본의 유무에 따른 사회계급화에 대한 묵시록처럼 보인다. 돈이 없는 자들은, 그저 미디어가 보여주는 신기루에 만족하라는.

 

한편 화성식민지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들을 지구에서 이주해온 이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해주고, 화성에서의 식민 사업에 이용한다.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의 완벽한 형상을 본떠서 만들어진 복제물인 안드로이드들은 자신의 처지에 분개해서, 지구로 탈출을 해서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려고 한다. 물론 안드로이드들의 지구유입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다. 바로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화성으로 가려하고, 반면에 화성에 있는 안드로이드들은 지구로 오고 싶어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에 나오는 인간과 안드로이드 간의 중요한 갈등의 근원이다.

 

릭 데커드는 동료 현상금 사냥꾼 데이브 홀든이 처치하지 못한 나머지 6명의 넥서스6 모델, 가장 인간처럼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들의 사냥에 나선다. 그전에 앞서, 그는 넥서스6 안드로이드들의 제조사인 로젠 연합으로 가서 안드로이드 식별을 위한 보이그트 캄프 테스트를 샘플에게 시도하게 된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바로 로젠 연합의 총수 엘던 로젠의 조카딸이라는 레이첼 로젠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기업인 로젠 연합은 안드로이드에게 기억마저 이식해서 정말 인간 같은 안드로이드를 생산해낸다. 물질생산에 기반을 둔 포디즘(Fordism)의 세계에서, 인간 고유의 영혼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기억마저 이식해낸다는 작가적 상상력은 몸서리쳐지게 두려운 사실의 현현이었다.

 

휴머니즘과 몰개성화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끝에, 결국 데커드는 레이첼의 정체를 밝혀낸다. 하지만 안드로이드와는 달리, 필연적으로 감정의 전이 그리고 이입을 경험하게 되는 인간으로써 데커드는 레이첼과 만나면서부터 끊임없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 다시 말해서 안드로이드의 은퇴에 회의를 품게 된다. 러시아에서 온 경찰로 위장한 폴로코프, 경찰조직의 수장으로 꾸민 갈란드 그리고 오페라 가수 역을 훌륭하게 해내던 루바 루프트는 차례로 은퇴 당한다.

 

이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인정사정없는 필 레시를 안드로이드라고 단정하지만, 그는 인간 현상금 사냥꾼이다. 레이첼과의 만남을 통해 촉발된 데커드의 갈등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증폭되기 시작한다. 이제는 도저히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굳이 보들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이론을 도입하지 않고서도, 복제가 만들어낸 복제의 덫에 걸려 버리게 된다.

 

이지도르가 홀로 사는 아파트 건물 군에 숨어든 나머지 세 명의 안드로이드들인 로이 배티, 임가드 배티 그리고 프리스 스트래튼은 데커드와의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꿈을 꾸는가?>는 필연적으로 영화로 발표된 <블레이드 러너>와 필연적인 비교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유명한 CF감독 출신의 리들리 스콧이 영화에서 창조해낸 미래상은 소설에서 보다 더 암울한 디스토피아다. 게다가 영화음악을 받은 반젤리스의 신비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전자음향은 필립 K. 딕이 소설을 통해 보여 주려고 했던 것 이상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 릭 데커드와 레플리컨트(안드로이드)들과의 대결은 더욱 박진감 넘치는 각색과정을 통해 재창조되었다. 유니콘의 판타지가 결부된 데커드와 레이첼의 관계는 판타지 그 자체다. 소설에서 윌버 머서가 맡았던 판타지는 거세되고, 데커드를 귀신같이 따라다니는 동료 형사 개프가 만들어 놓는 기호학적 오리가미(origami)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하지만 영화와 소설 모두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질문들은 모두가 의미심장하다. 도대체 무엇이 현실인가? 그리고 인간과 안드로이드들을(이데아와 복제 혹은 복제의 복제)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에서 거의 신적 존재로 등장하는 윌버 머서가 말하는 대로, 살인자들이 죽어야 한다면 양이나 염소 같은 동물보다도 못한 처우를 받는, 인간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는 안드로이드들을 ‘은퇴’시킨 현상금 사냥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의 후반부에서 머서가 주장한 인간을 안드로이드와 구분하는 감정의 융합이라는 것이 모두 조작한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머서의 선언들은 모두 무효가 되지 않는가 말이다.

 

데커드의 전기양은 진짜 양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전기양은 진짜 양의 본질을 가리고 변질시킨다. 그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것들의 실재는 허상이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가 뒤죽박죽인 알고리즘의 순환 속에서, 데커드가(그런데 그가 만약에 안드로이드라면?) 그 사실을 구분해내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오히려, 그가 차례로 은퇴시키는 안드로이드들은 정신적으로 인간보다 자유롭고,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뚜렷한 주관을 갖게 자체진화하게 된다.

 

필립 K. 딕은 선사시대 이래 인류의 직업인 사냥꾼 릭 데커드라는 다양성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내고, 암울한 미래상의 가능성을 이 소설을 통해 보여 주었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 동물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유보한 채, 진짜인 인간이 가짜인 안드로이드들을 은퇴시키는 것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가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해도 되는걸까? 그리고 머서의 정체가 폭로되었을 때,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도 작가는 슬쩍 가짜 두꺼비를 등장시켜 빠져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에 대한 답은 독자들 각자에게 맡겨 두었으리라.

 

필립 K. 딕의 ‘전기양’은 오늘도 무사한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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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7-05 1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ㅎ 저 며칠 전 이 책 샀어요. 근데 멋진 표지가 다 찢어져서 와서 교환했었죠. 저도 읽을거라 매냐님 서평을 띄엄띄엄 읽었지만 이렇게 보니 반가운 마음에 글 남깁니다.

레삭매냐 2019-07-05 13:28   좋아요 3 | URL
그러고 보니 저는 스포일러?
그나저나 책이 찢어져서 오는 정말...

너무 디테일하게 서평을 쓰면 안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게 잘 안되네요.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정말 최고의 SF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9-07-23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2019-08-15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