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리커버 특별판)
마이클 루이스 지음, 김찬별.노은아 옮김 / 비즈니스맵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올해로 메이저리그를 보기 시작한 지 22년이 되었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내가 응원하던 보스턴 레드삭스가 그놈의 지긋지긋한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마침내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 게 가장 의미가 깊은 것 같다. 펜웨이 파크에 가서 직관도 했고, 외계인 투수와 이제 전설이 된 타자 이치로의 대결도 보았다. 지금은 잊혀진 타자지만 모 본의 호쾌한 타격도 보았다.

 

나는 적어도 야구에 대해서는 올드 스쿨 타입이다. 세이버메이트릭스 지수가 일반화된 21세기에도 여전히 타율과 타점이 그들이 주장하는 출루율이나 장타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이클 루이스가 <머니볼>의 주인공으로 삼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과 세이버메이트릭스의 창시자 빌 제임스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사실 그들은 업계에서 이단아였다.

 

세상에 빌리 빈이 1980년 드래프트에서 메츠가 뽑은 1순위 유망주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만큼 당시만 하더라도, 빌리 빈은 장래가 촉망되는 야구 선수였다. 대릴 스트로베리의 라이벌이었고, 마이너리그에서는 레니 다익스트라의 동료이기도 했다. 그 둘은 메이저리그의 빛나는 별이 되었건만 우리의 빌리 빈은 메이저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별 볼 일 없는 성적을 남기고 은퇴해버렸다. 그렇다고 그가 영영 야구계를 떠난 건 아니었다. 오클랜드의 선수에서 어드밴스 스카우터로 변신해서 구단을 운영하는 단장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당시만 하더라도 통계는 스카우팅 시스템에서 중요한 자료가 아니었다. 올드 스쿨 스카우터들은 자신의 감을 믿고 스카우팅을 진행했다. 어쩌면 그런 픽은 정말 로또를 뽑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요즘처럼 신인 스카우트가 팀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는 점이 일반화된 시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요즘에는 1순위 드래프트 픽을 위해 탱킹도 마다하지 않던가.

 

4구를 골라 진루해서 득점에 성공해서 이긴다는 빌리 빈의 야구 철학은 어쩌면 기존의 공겨 일변도의 메이저리그 팬들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클랜드 같은 스몰 마켓 팀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었다. 양키즈나 레드삭스처럼 부유한 구단이라면 프리에이전트 시장에서 원하는 선수들을 원하는 만큼 수급할 수 있겠지만 가난한 구단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빌리 빈은 다른 방식으로 정상에 도전하게 되었다.

 

다른 팀들이 눈길도 주지 않았던 그야말로 진흙에 파묻힌 진주 같은 선수들을 찾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선수들은 스타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최근 오클랜드가 13년 만에 10연승을 달리고 있다고 하는데, 슈퍼스타급 선수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빌리 빈이 20년 전에 머니볼로 히트를 칠 적에는 제이슨 지암비를 필두로 해서 미겔 테하다 그리고 영건 삼인방(팀 허드슨-마크 멀더-배리 지토) 같은 스타들이 즐비하지 않았던가. 마크 멀더에 대해서는 책에 특징있는 묘사가 없지만 영건의 막내이자 폭포수 커브의 달인 배리 지토와 체인지업을 연마해서 타자들을 농락했다는 팀 허드슨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빌리 빈과 그의 부단장 폴 디포데스타 그리고 데이빗 포스트 삼인방은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 에이스의 성공을 견인한 트로이카였음에 분명하다. 누구에게라도 1억 5,000만 달러만 주면 당장에라도 악의 제국 양키즈와 보스턴에 필적할 만한 팀을 만드는 일이 어렵겠는가? 그전까지만 해도 감에 의존하는 마구잡이식 스카우팅 시스템과 팀운영에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한 빌리 빈 일당의 도전은 딱 포스트시즌 진출까지였다.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포스트시즌에서는 빌리 빈의 변칙이 통하지 않았다. 당시 리그 최고의 투수진을 자랑했지만, 기이하게도 영건 삼인방은 포스트시즌에서 정규 시즌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빌리 빈의 매직은 과연 거기까지였단 말인가.

 

책은 2002년 시즌을 중심으로 해서 오클랜드의 기적 같은 20연승 그리고 스캇 해티버그와 채드 브랫포드 같이 빅리그 팀이라면 어느 팀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법한 선수들을 꾸려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대권도전에 나선 오클랜드 에이스의 이모저모를 그린다. 그렇게 빌리 빈이 애지중지한 제레리 브라운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하고 스러져 갔다. 어디 제레미 브라운 뿐이었던가. 책에서도 잠시 언급된 세인트루이스의 유망주 릭 앤키엘도 포스트시즌 선발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포수 머리 한참 위로 공을 던지고 침몰하지 않았던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스캇 해티버그가 2루타성 안타를 치고 자신의 우상이었던 양키즈의 돈 매팅리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1루에 머물렀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코치들이 절대 좋아하지 않는 해괴한 투구폼을 지닌 브랫포드의 진가를 알아본 건 바로 오클랜드의 경영진이었다. 다시 한 번 능력만으로 모든 게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머니볼>을 통해 깨달았다. 그만큼 운이 중요하다는 걸까, 빌리 빈 단장 역시 운이 좌우하는 야구 경기를 과학적 방식을 도입해서 혁신해 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빌리 빈이 그렇게 원하던 그리스 걸음의 신 케빈 유킬리스는 끝내 얻어내지 못했다. 유킬리스야말로 출루의 신이 아니었던가. 그가 높이 평가했던 빌 뮬러는 보스턴에서 타격왕에도 오르고, 양키즈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를 상대로 기적 같은 동점타를 때리면서 극적인 리버스 스윕의 발판을 놓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빌리 빈의 선견지명이야말로 최고라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스캇 해티버그나 채드 브랫포드 역시 어려서부터 빅리그 선수의 꿈을 꾸었지만, 그런 꿈을 꾼다고 재능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빅리그 선수가 되는 건 아니었다. 빌리 빈 자신부터 그러지 않았던가. 미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거라고 예상했던 선수들이 추락하는 건 다반사가 아니었던가. 드래프트에서 엄청나게 낮은 순위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마이크 피아자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세상사가 그런 법이다.

 

책은 2002년 시즌이 끝나고 보스턴으로 자리를 옮기려던 빌리 빈이 돈 때문에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과연 빌리 빈이 보스턴으로 갔다면 테오 엡스타인을 대신해서 밤비노의 저주를 깰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랬을 것이고 또 반대로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야구의 매력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불확정성이 아닌가. 아무리 통계의 천재라는 빌 제임스가 개발한 갖가지 방법들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실책 하나로 게임의 승부가 그리고 시리즈 전부가 뒤바뀔 수가 있는 게 바로 야구다. 그런 점에서 야구야말로 총체적 예술이자 과학이라는 표현에 공감하게 된다. 내게 스포츠는 야구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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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5-31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통계분석이 야구처럼 유용한 스포츠도 없기에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야구가 과학이자 예술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동시에 장기판의 말처럼 움직이는 선수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 가장 인간적인 스포츠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1982년 삼성 투수 이선희 선수가 OB 김유동 선수에게 만루 홈런을 맞은 후 흘렸던 눈물이 저는 가장 슬펐고 인상깊었던 기억으로 남습니다...

레삭매냐 2019-05-31 20:47   좋아요 1 | URL
크하 정말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통계 야구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투수
와 타자의 수싸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속이는 투수와 자신이 원하
는 공을 노리고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의
대결...

아마 야구는 계속해서 진화하겠지만 변화
무쌍한 드라마라는 점은 변하지 않으리라
고 믿슙니다.

카알벨루치 2019-05-31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머니볼> 영화로 보고 책도 작년에 사다놨는데...현대는 그냥 야구가 굉장히 복잡한 사업이란 생각이 듭니다 류현진 8승했는데 요즘 빅데이터시대이니 더 많은 통계와 자료가 산출될 것이니...

레삭매냐 2019-05-31 20:48   좋아요 1 | URL
그동안 류현진 투수에 대해 그다지 좋
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는데 이번 시즌
만큼은 어쩔 수가 없군요.

지금 페이스로는 거의 싸이영급이네요.

<머니볼> 영화로도 함 봐야 하는데
책이 원체 재밌어서 영화가 책의 서사
를 제대로 구사했는지 궁금하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