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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출근 길, 흔들리는 버스에서 찍은 컷이다. 리알리티의 재현이랄까.)
아침저녁으로 버스를 타고 일터로 돈벌이에 나선다. 오늘은 버스정류장에 제 때 도착해서 앉아서 무사히 지각하지 않고 도착할 수가 있었다. 이번 달에 언젠가는 버스 준공영제 문제로 파업을 한다고 해서 자가용을 끌고 와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 버스는 우리 서민의 발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아 참, 내가 사는 경기도는 버스 요금 인상으로 파업을 막았다고 한다. 이 점도 이해한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자, 버스 기사님들을 착취해서 내가 행복해야겠는가 그건 아니다.
2주 전 금요일인가 김용민 브리핑에서 전주에서 버스 운전을 하신다는 허혁 작가의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달려 나가 책을 샀다. 그리고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고단한 노동 끝의 귀가길이라 그런지 감성이 최고조로 치솟았던 모양이다. 나이가 드니 주책없게 눈물이 많아지는가 보다. 하루 열여덟 시간을 운전하신다는 작가의 글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리고 나서 한동안 급하게 읽어야 하는 책들 때문에 잠시 쉬었다가 지난 주말부터 다시 집어서 읽기 시작했다. 지난주 달궁 독서모임에서 모름지기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잡다한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고 떠들었는데, 그런 점에서 허혁 작가만큼 다양한 경험을 한 분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야말로 그가 누비는 전주 시내버스 안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노선을 주어진 시간 안에 달리기 위해서는 과감한 신호위반은 기본이란다. 목적지에 빨리 가겠다는 데 그런 ‘사소한’ 위반에 태클 거는 승객이 있을까 싶다. 안전운행은 기본이라지만, 아무리 봐도 저자가 묘사하는 시내버스 운전사 분들의 실태는 좀 심각한다. 용변은 물론이고 끼니나 제대로 드시면서 운전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다. 인간의 기본권 중의 하나인 이동권을 담보하는 버스 운전 중에 안전이 최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일 교대라고는 하지만 무시무시한 체력적 소모는 어쩌란 말인가. 버스 기사도 인간인 것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타인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에 버스 안에서 통화는 아무래도 자제해야지 싶다. 배우고 느낀 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인간이겠는가.
정비는 허혁 기사님의 짝꿍인 고참께서 알아서 하시기에 저자 분께서는 주로 청소를 맡는다고 하셨던가. 요즘 음식물을 들고 타는 건 괜찮지만 섭취는 자제해 달라는 뉴스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커피 같은 음료를 들고 탔다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타인에게 쏟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교통 약자를 위하는 마음도 절절하게 다가왔다. 외국에서는 휠체어를 탄 승객이 버스에 오르는 동안, 그 어느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더라. 아마 한국에서 그랬다간 정말 여기저기서 도대체 언제 갈 거냐는 불평이 터져 나오지 않을까.
어려서 아버지에 당한 폭력적인 학대의 트라우마에 대한 서사도 참으로 슬펐다. 황현산 선생은 나이가 드셔서도 여전히 어려서 우러러 보던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노라고 술회하시지 않았던가. 예술가로서 드러머를 꿈꾸는 아들이 대학 진학 대신 서울로 올라가 예술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 마다하지 않은 통 큰 아버지의 자세도 자못 멋져 보인다. 학벌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면서도 왜 그렇게 남들보다 좋은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기 위해 소위 ‘스카이 캐슬’ 만들기에 너도나도 나서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적당히 벌어서(적당히의 기준이 어딘진 모르겠지만) 행복하게 살자는 저자의 의견에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다.
시간으로 공간을 박음질하는 게 운전기사의 임무라고 저자가 어디서 쓰셨던가. 그 표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기사 분의 청소 재미를 늘리기 위해 쓰레기 꼭꼭 숨기기 같은 행동은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다. 기사 분들이 왜 선글라스를 애용하시는가 싶었는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몇몇 단서를 발견하게 됐다. 일단 모든 승객들의 질문에 대꾸할 겨를이 없다. 그리고 눈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동요를 승객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한 이유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눈부심을 막기 위함이라는 기본적인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어제도 집에 가는 길에 기사님을 슬쩍 쳐다보니, 선글라스를 끼고 계셨다.
우리는 노동하는 인간이다. 나의 밥벌이는 기본적으로 노동을 기초로 하고 있다. 나의 노동을 포함해서 타인의 모든 노동은 존귀하다. 그런 점에서 오늘도 부지런히 전주 시내를 누비실 허혁 기사님의 안전운행 노동과 글쓰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