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의사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3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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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관심을 가져 오던 시리즈인데 이번에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우연히 만나서 빌려다 보게 됐다. 이 책 저 책 읽다 보니 근 일주일이나 걸린 것 같다.

 

1936년에 태어 나신 매리온 채스니(M.C.) 비턴 할머니는 우리 나이로 올해 84세인데도 왕성한 집필 활동 중이다. 내가 이번에 만난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 중의 하나인 <치과 의사의 죽음>(1997)은 작년에 발표된 <정직한 남자의 죽음>까지 모두 33편 중의 13번째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스코틀랜드 고지대 그러니까 그 동네 사람들이 하일랜드라고 부르는 곳의 로흐두 마을 순경 해미시 맥베스의 사건에는 항상 죽음이 개입되어 있다는 말인가 보다. 이거 흥미진진하군.

 

매리온 할머니의 경력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처음에 조그만 서점의 판매 직원으로 출발해서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연극비평가, 비서, 패션 에디터 그리고 범죄를 주로 다루는 사회부 기자까지 두루 섭렵하면서 미래의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것으로 추정된다. 해리 스콧 기븐스를 만나 결혼한 뒤에는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초반에 신랑은 레스토랑에서 접시닦이 그리고 매리온은 웨이트리스로 일하다, 루퍼트 머독의 타블로이드 신문 <스타>에 캐스팅이 되었다나. 그후 다수의 로맨스물과 여름마다 서덜랜드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피싱스쿨에서 해미시 맥베스 창조에 대한 영감을 받았단다. 뭐 이 정도면 우리의 주인공 해미시 맥베스에 대한 얼개는 완성되었으니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 보자.

 

문제의 시작은 치통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다른 건 몰라도 이가 아프다고 하면 제깍 병원에 보내 주었다. 그 정도로 이 아픈 건 봐줄 수 있다는 말인가. 해미시 맥베스는 치통 때문에 치과를 찾게 된다. 인근에 치과라고는 이가 아프다고 하면 무조건 발치해 버리는 것으로 악명 높은 길크리스트 밖에 없다. 그의 진료실을 찾은 해미시 순경은 니코틴 중독으로 살해당한 뒤, 드릴로 이가 모두 뚫려 있는 치과 의사를 발견한다.

 

참 그전에 스코츠먼 호텔의 금고에 든 25만 파운드의 거액이 도난당하는 사고도 있었지 아마. 호텔 지배인은 비용을 아낀답시고 나무판자로 된 금고에 돈을 두었다나. 서덜랜드에서는 도무지 비밀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거액의 절도사건과 바람둥이 치과 의사의 죽음이 혀에 혀를 타고 불길처럼 번져 나간다. 게다가 항상 사건의 이면을 조사해서 나름의 성과를 거두는 해미시에게 적대적인 블레어 경감은 초동수사 단계에서부터 해미시를 배제하고 강압적인 방식을 고수한다. 본청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홀로 고군분투하는 해미시가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네.

 

보통 이런 강력범죄에는 동기가 필요한데,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사 정보와 해미시의 탐문수사만으로는 도저히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해미시는 스코츠먼 호텔 도난 사건과 길크리스트 살해사건이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는 점을 직감으로 알아 차린다. 그렇다 우리의 주인공 해미시 순경은 올드 스쿨 스타일의 경찰이다. 어떤 조력도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하느 순간, 헤어진 여자친구(?) 프리실라의 지인으로 아름다운 외모의 세라 허드슨이 등장해서 해미시를 지원한다. 솜씨 좋은 해커가 되어 해미시가 접근할 수 없는 블레어 경감의 계정을 해킹해서, 블레어가 해미시에게 보여주지 않는 사건 보고서들을 읽는데 성공한다. 어느 순간, 세라가 이 범죄에 가담한 공모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얼치기 독자의 너무 앞서 나간 설레발이었다.

 

단순해 보이던 사건은 해미시가 치과 의사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니코틴 증류소를 찾던 중, 하일랜드에서는 일상이라는 밀주제조를 해서 대량공급하던 악당 스마일리 형제들에게 납치 감금되어 토탄 숲에서 일생을 마감할 뻔 하기도 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한다. 결국 사단의 원인은 바람둥이 치과 의사의 정도를 넘어선 바람이 문제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꼬시기 위해 자신의 재정 상태를 넘어서는 소비가 필요했고, 지킬 수 없는 약속들을 남발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바로 자신의 죽음이었다.

 

해미시는 탐문 수사 중에 하나의 비극을 만나게 된다. 그건 바로 자신의 수사를 돕던 프레드 서덜랜드 씨의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었다. 이 동네에서는 도대체 비밀이라고는 없다. 특히 연세 드신 노인분들에게 살인사건만한 자극적인 뉴스거리도 없지 않은가. 해미시 순경의 짧은 로맨스도 거의 실시간으로 로흐두 사람들에게 중계되는 판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그만 치과 의사를 죽인 범인이 조여 오는 압박감에 그만 프레드 씨마저 살해한 것이다!

 

양식연어가 아닌 강에서 해미시가 직접 잡은 연어를 원하는 점쟁이 앵거스는 또 어떤가. 그는 자신에게 점을 보러 오는 이들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기가 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다. 점을 본다고 하지만, 앵거스 역시 동네 사람들이 물어다 주는 정보를 바탕으로 가공 조립하는 역할을 할 따름이다. 세라는 앵거스에게 여행용 앙고라 담요를 전달하고,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 간다. 해미시와 보낸 격정의 밤은 그저 하룻밤의 즐거움이었단 말인가! 역설적으로 프리실라와 다시 잘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는 점을 주목해야할 것 같다.

 

어젯밤에 자기 전에 조금만 보고 자야지 하고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모조리 다 읽고 나서 새벽 2시에 잠들 수가 있었다. 이럴 수가 있나 그래. 그 정도로 재미는 있었다. 아무래도 M.C. 비턴의 다른 죽음 시리즈들도 하나씩 구해다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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