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살던 곳에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줄창 러브송만 들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낯설고 물선 곳에서 어느 이방인의 마음을 달래 주던 디제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데이빗 앨런 부쉐.

 

어제 라디오로 야구 중계나 들어 볼까 하고 수많은 라디오 앱들을 검색해 보았으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대신 그 시절 즐겨 듣던 라디오 디제이의 근황을 엿볼 수가 있었다.

 

유튜브가 있어 숱한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이 양반이 자신의 정체를 엄청 숨기는 모양이다. 인터뷰 진행하는 동안, 페도라 모자를 써서 얼굴을 가리고 시청자들에게는 뒤통수만 보여 준다. 아니 그럼 그동안 아무도 이 사람의 정체를 몰랐단 말인가.

 

1982년부터 방송을 베드타임 뮤직을 진행해 오셨다고 하는데, 자그마치 37년이나 진행해 오셨네 그래. 어제 마침 시간이 맞아 데이빗 앨런 부쉐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볼 수가 있었다. 그전에는 참 목소리가 쎅시 그 자체였었는데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가 없었는지 예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역시 흐르는 세월, 그 누가 막으리오.

 

그러니까 대부분의 라디오 청취자들은 이 디제이의 진짜 얼굴을 모르는 것이다. 혹시 일상 생활에서 누가 목소리를 듣고 알아 보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인터뷰어의 말에, 데이빗 앨런 부쉐는 자기 삼촌이 자기 목소리와 같다며 눙친다고 했다. 역시 고수다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는 질문에도 인터뷰어가 원하는 대답 대신, 모든 러브송을 좋아하노라고 말하고 피해 나가더라. 대단하구만 그래.

 

라디오시대가 곧 죽을 거라는 지난 세기말의 예언은 정확하게 틀렸다. 라디오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전파를 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아니 이제는 인터넷 시대를 맞아, 그 영역을 전 세계로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텔레비전은 눈과 귀를 다 필요로 하지만, 라디오는 듣는 귀만 필요하지 않은가. 무언가 들으면서 일도 할 수 있으니, 요즘 같이 멀티플레이가 필요한 시절에 어쩌면 딱 들어맞는 매체가 아닌가 싶다.

 

미지의 디제이 아저씨가 과연 언제까지 방송을 하실 지 궁금해졌다. 모쪼록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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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4-28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독서모임 멤버가 팟캐스트 방송을 하고 있어요. 방송 프로그램 이름은 ‘페미니스트의 책장’입니다. 방송하고 있는 멤버가 제게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하라고 제안을 했는데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저의 정체를 숨기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방송에 출연하면 많이 긴장할 것 같아요. ^^;;

레삭매냐 2019-04-30 10:30   좋아요 0 | URL
데이빗 앨런 부쉐처럼 페도라 모자를
쓰고 출연하시는 건 어떨지요 ㅋㅋ

신비주의 컨셉이네요.

맞습니다, 일단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
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