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셔츠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는 아마 <베아트리스와 버질>이었지. 삶에는 모름지기 안내자가 필요한 법, 연옥과 지옥에는 버질, 베르길리우스가 그리고 천국의 안내자는 베아트리스가. 그런데 왜 제목은 <20세기의 셔츠>지? 다 이유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

 

스패니시 캐나다 출신으로 트렌트 대학을 졸업한 얀 마텔의 <20세기의 셔츠>를 읽었다. 표지를 보면 줄무늬 셔츠가 등장한다. 그리고 당나귀 베아트리스 등 위에 올라탄 붉은고함원숭이 버질도 보인다. 그 둘은 셔츠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그 안에는 무슨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과연.

 

저자 마텔이 말하듯, 소설 <20세기의 셔츠>는 누가 봐도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마텔은 유대인도 그리고 독일인도 아니다. 그동안 내가 접한 홀로코스트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들은 주로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의 기록이었다. 빅터 프랭클, 로베르 앙텔므 그리고 프리모 레비까지 모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런 대재앙에 대한 기록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들이 전하는 홀로코스트 이야기는 너무 진지하고 무겁다. 하지만 얀 마텔은 홀로코스트에 상상력을 얹으라고 주문한다. 인류의 비극에 상상력을 더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란 말이지?

 

우선 얀 마텔은 자신의 문학적 페르소나로 헨리 로트라는 작가를 등장시킨다.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평론과 소설 두 편을 동시에 발표하는 헨리. 책이 출간된 뒤, 런던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헨리는 어느 역사학자로부터 책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냐는 본질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 작가는 모름지기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를 드러내야 하는 법이지. 글을 쓰는 이들은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그 사건이 있은 뒤, 헨리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어느 대도시에 이방인으로 살기 시작한다. 한 편의 소설로 성공한 작가로 간주되던 그에게 독자들의 편지가 쇄도한다. 그 중에서 자신의 도움을 청하는 헨리라는 이름의 사나이의 편지가 그의 눈에 들기 시작한다. 희곡을 쓴다는 그의 이야기가 소설가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당연히 헨리와 만나야 이야기가 더 전개가 되겠지. 점점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소설가 헨리 로트가 만난 헨리는 오카피 박제상회의 솜씨 좋은 박제사다. 그가 평생을 걸쳐 쓴 희곡이 바로 <20세기의 셔츠>다. 이제 왜 제목이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아니라 <20세기의 셔츠>인지 알겠지. 홀로코스트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소설가 헨리는 박제사 헨리가 저술하는 희곡 역시 그의 일환으로 보인다.

 

희곡 <20세기의 셔츠>에서 근면 성실을 대표하는 선수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영리한 고함원숭이 버질은 배에 대해 신랄한 대화를 나눈다. 버질이 배를 몰랐던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실존하는 사물을 보지 않은 이들은 배의 존재에 대해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홀로코스트는 어떨까? 이단적인 수정주의자들은 아예 나치의 대학살극 홀로코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동물들의 우화에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을 대입하는 순간, 소름이 쭉 끼칠 정도였다. 지금 우리는 수십 년간에 쌓인 적폐청산을 위한 역사투쟁의 순간을 살고 있지 않은가. 통제받지 않는 사법 권력의 부역자들이 재판 결과를 가지고 최고권력자와 거래를 한 사실을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암담한 순간 말이다.

 

박제사 헨리는 자신이 행하는 박제 행위를 옹호한다.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박제 자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그의 설득이 나에게는 적어도 유효하지 않았다. 박제사 헨리의 주장 덕분에 남아프리카에 살다가 멸종된 사바나얼룩말 쿠아가에 대해 알게 된 건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싶다. 우리는 현재 대멸종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지구별에 번성해온 다양한 생물종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환경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다가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도 언젠가 멸종되는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열심히 읽다가 만나게 된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살쾡이>(우리나라에는 <표범>으로 소개되었다)를 만난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마침 서가에 비치해 둔 책이라 잠시 살펴보기도 했다.

 

소설 초반에는 작품 속의 또다른 작품 희곡과 뒤섞이면서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박제사 헨리가 저술하는 희곡 <20세기의 셔츠>에는 어떤 흥미진진한 내러티브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무의미해 보이는 대화가 이어질 따름이다. 박제사 헨리가 소설가 헨리에게 전달한 쪽지에는 단지 자신의 이야기에는 줄거리도 없으며, 살인에 근거한 이야기라는 점만 적시되어 있을 뿐이다. 박제사 헨리를 황급하게 찾아간 소설가 헨리는 전직 나치 부역자에게 끔찍한 테러를 당한다. 전번제(홀로코스트)를 상징하는 나치 부역자의 소멸은 역시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내가 처음 만난 얀 마텔의 작품은 대단히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사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런 전개로 이어지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전혀 홀로코스트 문학과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한국 작가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쓰게 된다면 어떨지 살짝 궁금해졌다. 내친 김에 얀 마텔의 다른 책들을 읽어볼까 했지만 지난 가을에 산 <유보트 비밀일기>가 조금 더 궁금해서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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