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케스 - 가보의 마법 같은 삶과 백년 동안의 고독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6
오스카르 판토하 지음, 유 아가다 옮김, 미겔 부스토스 외 그림 / 푸른지식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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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만 가비토 마르케스의 책을 5권 읽었다. 이제 작가의 역작 <백년 동안의 고독>과 <콜레라 시대의 사랑>만을 남겨 두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만난 오스카르 판토하의 가비토에 대한 그래픽 노블 평전 <마르케스>는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요소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스페인 어로 쓰인 작품 중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버금가는 영예를 누린 <백년 동안의 고독>을 만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마르케스 사후, 망명지였던 멕시코와 조국 콜롬비아 사이에서 그의 유해 안치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좌파 지식인 마르케스를 거의 쫓아내듯 조국에서 몰아낸 콜롬비아보다는 그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준 멕시코의 손을 들어 주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그래픽 노블은 아카풀코 해변으로 가는 1965년 마르케스 가족 여행으로부터 시작한다.

 

마르케스는 어려서부터 이별과 고독에 익숙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아버지 돈 가브리엘 엘리히오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할아버지 마르케스 대령의 휘하에서 자라나면서, 콜롬비아 역사의 한 획을 장식한 천일전쟁에 대해 조숙한 가비토는 익숙해졌다. 훗날 자신의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콘도는 고향 아라카타카의 다른 모습이었다. 오랜 시골집에 출몰하는 유령과 여자 가족들에 둘러 싸여 자란 가비토에게 <백년 동안의 고독>을 위한 모든 준비는 이미 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다만 실마리를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느 소설이든 첫 출발이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바로 1965년의 아카풀코에서 가비토는 위대한 출발을 시작했는 지도 모르겠다.

 

그의 곁에는 작가로서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은 위대한 작가를 보필하는 평생의 사랑 메체(메르세데스)가 있었다. 작가를 남편으로 둔 아내는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면서 남편의 글쓰기를 응원한다. 아카풀코에서의 가족여행도 남편의 역작 구성을 위해 이만 충분하다며 돌아가자고 먼저 제안하지 않았던가. 약간의 윤색도 없진 않겠지만, 언제나 위대한 스토리에는 MSG도 필요한 법이니까.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방식이 과연 마르케스 평전을 다룬 그래픽 노블답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버지 엘리히오는 장남 가비토가 대학을 졸업하기를 바랐지만, 전업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나선 가비토의 꿈은 달랐다. 수많은 문인들과 교류를 통해 가비토는 주술적 리얼리즘으로 훗날 알려지게 될 붐 문학을 영도한 문학적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멕시코 작가 후안 룰포의 작품을 통해 도저히 현상을 타파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을 주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로 포용하는 기법도 이 시기에 마련된 게 아닐까.

 

마침 가비토의 초기작들을 연달아 읽어서 그런지 데뷔작 <썩은 잎>과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를 비롯해서 최근에 재출간된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 관한 내용이 그래픽 노블에 등장할 때는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미 일가를 이룬 작가면서도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작가적 고민은 인상적이었다.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카스트로 정권을 열렬하게 지지한 좌파 지식인으로 부평초 같은 망명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는 점도 그리고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 전까지 생활고로 시달려야 했던 생생한 삶의 리포트가 이어진다. 망명길에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만난 카를로스 푸엔테스와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푸엔테스의 작품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나의 독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연쇄반응인가 보다.

 

그래픽 노블의 대미는 스웨덴에서 새벽녘에 걸려온 전화로 마무리된다.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1982년에 가비토가 선정된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가비토 마르케스의 노벨문학상 이후의 행적이 없다는 점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의 집필을 위한 기나긴 여정과 걸작에 담긴 다양한 요소들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그래픽 노블 <마르케스>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위키피디아에서 그의 비블리오그래피를 추적해 보니, 확실히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에 작품 활동이 뜸해지긴 했다. 아무래도 노벨문학상이라는 하나의 성취가 작가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쓰도록 추동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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