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뼈들이 노래한다 - 숀 탠과 함께 보는 낯설고 잔혹한 <그림 동화> ㅣ 에프 그래픽 컬렉션
숀 탠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2월
평점 :

아이들이 열광해 마지않는 디즈니 제작 애니메이션의 상당수가 저작권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야코프와 빌헬름 그림 형제의 <그림 동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호주 서부의 시골 아저씨 숀 탠은 저자들 생전에 리뉴얼이 자그마치 7번이나 이루어진 <그림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석조 조각과 토우 느낌이 나게 종이 반죽과 공기 건조 점토 그리고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서 재창조해냈다. 사실 나도 하나 가지고 싶은 생각이 살짝 들 정도로. 저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자신이 만든 작품(!)은 팔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 아티스트라면 이 정도 패기는 있어야겠지.
그림 형제가 1807년부터 수집하기 시작해서 1812년에 처음으로 펴낸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에는 86편의 수집된 민화 혹은 민담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그리고 백설공주 등의 이야기의 원래 서사는 정말 잔혹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은 디즈니나 다른 편집자들이 아이들 용으로 순화한 이미지라고나 할까. 반면 숀 탠 작가는 아무래도 원작에 가깝게 다시 창조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야 어른이니까 괜찮지만, 백설공주의 계모가 사실은 친모고 사냥꾼에게 자기 딸을 죽이고 허파와 간을 가져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위기 서사를 겪은 공주는 자신의 결혼식날 어머니를 초대해서 공개처형에 준바하는 처벌을 내렸다. 디즈니식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신데렐라 역시 살벌하기는 마찬가지다. 하긴 그림 형제들도 어린이와 가정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처음에 실렸던 이야기들 가운데 선별해서 18개 정도는 빼는 편집능력을 선보여 주기도 했다.
다시 <뼈들이 노래한다>로 돌아가 보자. 숀 탠은 그림 동화 중에서 가장 중요한 컷을 선택해서 입체화시킨다. 이미지를 우측에 배열하고, 좌측에는 축약된 이야기를 배치한다. 사실 나도 200개에 달하는 원작 그림 동화에 대해 정통하지 못하다 보니 인터넷으로 도움을 받기도 했다. 어느 신문사에서 잔혹동화 시리즈를 다루고 있어서 몇 편 읽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들은 우리 동양 사회에서도 들어본 것 같은 유사성이 보인다. 가령 예를 들어 나이가 들어 음식물을 흘리는 할아버지에게 나무로 만든 그릇을 주고, 부모가 구박하자 아이가 나중에 자기가 어른이 되면 부모에게 여물통을 준다는 말은 우리네 어느 동화랑 상당히 비슷하지 않은가 말이다.

<거위치는 소녀>의 이야기는 원래 자신이 누려야 할 것이 아닌 것을 사악한 방법으로 차지한 시녀에 대한 처벌 서사가 등장한다. 작가가 만든 대문에 걸린 말하는 말 ‘팔라다’ 밑에 떨어진 핏자국을 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아마 그냥 무심하게 넘어갔을 지도 모르겠다.

64번째 <새하얀 새>는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신화, 전설 그리고 민화에 등장하는 터부(taboo)는 반드시 깨져야 한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경고가 주어진다, 무엇무엇은 반드시 하면 안된다고.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이들에게 그것은 하지 말라는 것은 반드시 해봐야 한다는 메시지로 탈바꿈되어 전달된다. 보지 말라는 것은 보고 싶고, 하지 말라는 행동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야 뒤 따르는 그에 응징을 가하는 처벌 서사가 완성되니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한 서사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Spirit Shakers : https://www.youtube.com/watch?v=So109Xuzv28
아무런 재주가 없는 곰손이지만, 문득 숀 탠 작가의 작업 내용을 보다 보니 나도 종이반죽과 공기 건조 점토만 있다면 작가처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에 잠시 빠져 보았다. 작가가 달래 작가더냐 하고, 어설픈 창조에 나서려는 자신을 말린다. 아, 그리고 보니 집 어딘가에 오래 전에 사둔 스피릿 셰이커가 네 개 있을 텐데. 매스 아트 칼리지 출신 존 베어링굴드란 아티스트가 13년 전부터 만든 거였구나. 유튜브의 세상, 참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