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스케치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자크 상페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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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의 소설들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재개정되어 나온 상페 작가의 책을 두권 빌려 왔다. 어제 읽은 책들을 반납했으면 오늘 더 빌릴 수 있었는데, 망했다. 상페의 책 두 권, 아시아 제바르의 책 하나 그리고 하인리히 뵐의 <아일랜드 일기>를 빌렸다. <아일랜드 일기>는 벌써 품절이구나. 천상 중고책으로 구해야 하나.

 

뉴욕은 모두가 알다시피 밀레니엄 캐피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세계의 경제 문화의 수도 같은 메가시티다. <뉴요커>에 카툰을 기고하던 상페가 자신의 글에서도 소개한 것처럼, 뉴욕은 항상 공사 중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이들이 자본주의 성공신화를 이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공간이다. 종교 문화적 차이 따위는 물신 앞에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저자는 자전거에 자물쇠에 걸어 놓았다가 바퀴를 풀었다가 어쩌구를 반복하는 장면으로 만화를 시작하지 않던가. 한동안 어떤 절단기도 자르지 못한다는 유락(U-lock)이라는 자전거 자물쇠가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중국고사 모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날카로운 창으로 뚫지 못하는 방패가 어디 있을까.

 

상페의 대선배 알렉시스 토크빌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시작하는 내용도 흥미롭다. 지난 세기에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분석을 했던 그 사람 말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정치판은 그 어느 때보다 혼탁한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증오와 분열의 정치가 미국 정치판을 달구고 있는 중이다. 지난 주말에 피츠버그 시나고그에서 벌어진 유대인 총격사건만 하더라도 그렇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이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하고 사는 공간이 바로 미합중국이 아니었던가. 상대방에 대한 격려한 증오를 더 이상의 공존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폭탄테러와 증오범죄가 들끓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도래한 게 아닌가. 아마 상페가 그린 뉴욕도 거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으리라.

 

<뉴욕 스케치>를 읽으면서 흥미롭게 느꼈던 던 점 중의 하나는 미국의 문인들이 상당히 많은 각종 재단의 후원 아래 문학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모두가 전업작가로 성공하기란 난망할 것이다. 내가 만난 어느 작가도 작가로 데뷔하기까지 친구의 적잖은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되어서 오롯하게 글밥으로 먹고 사느냐 하면 아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놈의 호구지책이 무언지. 그렇게 재정적 후원 아래 탄생한 미국 문학이 전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미국 문학이 가진 경쟁력이 아닐까 싶다.

 

상페의 그림책 이야기를 하라고 했더니만 또 내 생각만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는구나. 상페가 짚은 뉴욕 라이프의 또다른 단면의 핵심은 바로 파티다. 작가는 어설프게 배운 영어 탓을 하지만, 사실 말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본토박이 지식인들 앞에서 이방인이 그들의 어휘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은 임무였으리라.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고 들은 정보만으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각종 파티에 참석하는 그런 재미가 아닐까. 스리슬쩍 파티에 참가한 이들의 위선적인 면면을 드러내는 것도 고수의 실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출판사를 떠나겠다는 편집자를 두고 벌어지는 험담에 대해, 사실 그 편집자도 해당 출판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거리하는 장면은 통쾌했다. 사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 문학판도 몇몇 출판사들의 독과점 형태라 찍히면 죽는다라는 법칙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몇 통의 레퍼런스 콜 첵만으로도 충분히 해당 편집자의 전력에 대해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어떻게 보면 인간적 관계라기 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따른 만남이 누구에게는 반가울까. “계속 연락하자”는 말처럼 허망한 언어가 또 있을까 싶다. 나도 예전에 ‘나중에 같이 밥 한 번 먹자’는 말이 그렇게 불편하게 생각된 적이 또 없었다. 정말 밥을 같이 먹을 생각이 있다면 시간 약속을 하고 만나서 밥을 한 번 먹으면 될 텐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 그런 말을 남발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모름지기 관계란 관리의 확장일 터인데, 게으름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보잘 것 없는 나의 관계들이 하나둘씩 허공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걸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그리고 <뉴욕 스케치>의 주인공 장폴 마르티노도 친구들하고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판이 커지고 자꾸만 장소가 바뀌다가 결국엔 파토가 나지 않았던가. 다른 약속이나 파티가 있어서 또 그리로 장소를 옮겨서 시간을 보내면 되겠지만, 그런 상황은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난다.

 

 

밀레니엄 캐피탈이라는 별명답게 뉴욕의 서점들은 사이즈도 크고, 개성도 확실하다. 언제 또 뉴욕에 가게 될 진 모르겠지만 가게 되면 꼭 스트랜드 서점에 들러 그 유명한 토트백을 하나 사리라. 하루키가 즐겨 찾았다는(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니면 말구) “빌리지 뱅가드”에서 시원한 IPA  한 잔은 또 어떨까. 시간 여유와 풍부한 재정이 있다면 무엇은 못하겠는가.

 

 

건강검진으로 후유증으로 속을 부글거리고, 머리는 어지러운 가운데도 책을 읽고 리뷰도 날림으로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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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0-30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이 진정 날림으로 쓴 거 맞습니까? 혹시 건강검진을 날림으로 받으신 게 아닌지...^^;;
뉴욕 스트랜드 서점.. 저도 언제 갈지 모르겠지만 꼭 기억해둬야겠어요! ^^
오늘은 아무 생각마시고 저녁에 가족들과 맛난 거 드시며 긴장했던 몸과 마음 푸시기를요.~

레삭매냐 2018-10-30 17:37   좋아요 1 | URL
디테일을 알려 드리자면,,,
수면내시경 중에 그만 의식이 돌아오는 바람에
두 번 했답니다 카오 ~~~

스트랜드 서점은 예전에 자주 갈 수 있는 찬스
때 갔었어야 했는데... 이젠 가고 싶어도 갈 수
가 없군요 ㅋㅋㅋ 도저히

저녁에는 고기를 먹어야 하나 싶습니다 헷 !

아, 지난 주 독서모임에 가서 멤버 중에 한 분
에게 오래 살아서 뭐하게? 했더니만 오래 살면서
읽고 싶은 책 맘껏 읽고 싶다는 말에 그만 빵!
터졌습니다 지쟈쓰.

목나무 2018-10-30 17:49   좋아요 1 | URL
아니.... 수면내시경 중 의식이 돌아올 수도 있나요?
아무튼 고생 많으셨어요. 내시경을 하셨으니 오늘 저녁은 부드러운 유동식을 드셔야겠네요. 가족들과 꼬기 먹는 건 다음에...^^

그 멤버분 마음이 제 마음입니다.
더도 말고 오래 살아서 읽고 싶은 책 아니 사 놓은 책만이라도 다 읽었으면 좋겠어요! ㅎㅎ



세상틈에 2018-10-30 21:35   좋아요 1 | URL
저도 수면내시경 하다가 깼는데 그때 트라우마 때문에 담부턴 그냥 내시경 받습니다.ㅎ

독서모임의 그 분 말마따나 읽고 싶은 책 한 권이라도 더 읽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삽시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