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참말로 작가는 많고, 우리의 인지능력이 닿을 수 없는 미지의 문학도 많다는 걸 이번에 페루말 무루건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국내에는 단 한 번 소개가 된 적이 없는 인도 타밀나두 출신 페루말 무루건 교수의 책들이 나에게는 그랬다. 간만에 들른 뉴욕타임즈 책 소개에 무루건 교수의 <마도루바간(Madhorubagan)> - 영문제목 <One Part Woman> - 이라는 영어 번역서를 다룬 기사가 눈에 띄었다. 미국 내셔널북워드 번역서 코너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구간(2010년 발표)이 불러일으킨 화제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장에 전세계 배송료 무료라는 북디파지터리(아마존 계열사다)에서 주문했다. 국내에 언제 출간될 지 모르니, 쓰담쓰담을 위해서라도 하나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게다가 어제로 만료되는 10% 할인 쿠폰이 있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자국의 문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분명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행위겠지만, 문학적으로는 그만한 소재가 또 어디겠는가 말이다. 무루건 교수의 <One Part Woman>에서는 아이가 없는 부유한 카스트 계급의 여성이 아이를 갖기 위해 힌두 사원축제에서 만난 외간남자와 섹스를 한다는 설정에서부터 시작한다. 무루건 교수는 1세기 전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하지만, 힌두 극우주의자들에게 자국의 문화를 비하한 지식인은 처단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그들은 무루건 교수에게 전화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협박을 시작했다.

 

무루건 교수의 고향에서는 격렬한 저항과 시위가 벌어졌으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저자는 교수직 사임을 강요받았다. 급기야 2015년 1월, 자신의 독자들에게 책들을 불살라 버리라는 메시지와 함께 “저자 페루말 무루건은 죽었다”며 절필선언까지 SNS을 통해 해야 했을까. 자신이 신도 아니며, 부활에 대해 믿지도 않는다는 글도 썼다. 그냥 자신을 냅두라고 했다. 오죽 했으면 스스로 걸어다니는 시체(Walking corpse)라는 표현까지 해야 했을까. 다시 한 번 문학이 가진 파급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아무래도 문학에는 경계가 없다고 하지만, 갖은 협박을 받은 무루건 교수의 경우를 돌아볼 때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2016년 1월, 법원은 무루건 교수의 저작들이 기소되어야 한다는 극우 힌두 그룹의 수많은 진정서들을 기각했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무루건 교수는 사방의 위협으로부터 피해 있던 시기가 특히 자녀들과 부인에게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동안에도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았는데, 200편의 시를 썼다고 한다. 트라우마가 지배했던 그 기간 동안, 글쓰기는 가장 깊은 레벨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과 도구였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지, 모름지기 작가는 이래야 한다는 걸 무루건 교수는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페루말 무루건은 1966년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의 티루첸고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면서 동시에 동네 극장에서 소다를 파는 부업으로 가족을 부양했다. 무루건은 어려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지역방송을 타게 된 동요 가사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무루건 교수는 타밀나두의 에로드에서 타밀문학을 전공했고, 타밀나두 중부에 있는 공업도시 코임바토르에서 대학원 수업을 받았다. 그 뒤, 마드라스 대학에서 타밀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루건 교수는 1998년부터 단편을 발표하면서, 문학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1991년 첫 번째 소설 <Rising Heat>을 발표했다.

 

박사과정 중에 무루건은 자기보다 하위 카스트 계급의 부인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걸 끝내 거부했다. 결혼한 지 이십년이 지났지만 무루건의 친척들과 여전히 소원한 관계이며, 그의 아내는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루건의 형은 가족사업인 소다업에 종사하기 위해 학교를 일찍 떠났고, 같은 병에 채워넣던 밀주에 중독됐다. 형은 42세의 나이에 자살했다.

 

<마도루바간> 사태 이후, 무루건 교수는 자기 내부의 검열관과 치열하게 싸우게 됐다고 한다. 그가 만들어낸 단어 하나하나에 개입해서 시험을 치른다. 물론 어떤 글도, 독자에게 오역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예의 검열관을 머리에서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이다. 무루건은 꼬마 아들과 저녁 8시에 잠에 들어다가 자정 무렵에 깨어나 가장 조용한 시간에 2~3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글을 쓴다. 많은 수의 무루건 동료들은 그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어쨌던 3년 동안, 5편의 소설을 발표할 정도의 왕성한 창작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지난 시절의 혹독한 시련이 작가로서 무루건을 더욱 단련시킨 모양이다.

 


(영어로 번역된 무루건 교수가 쓴 책들)


발표된 지 3년 뒤에 영어로 번역된 <마도루바간>의 주인공은 칼리와 포나다. 십년에 걸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다. 혹시 조상 중에 저주 받은 적이 있는지 세심하게 조사한다. 혹시 숲에서 젊은 처자를 야만적으로 다룬 조상이 있었던가? 아니면 마을 경연에서 부정을 저지른 조상이 있었나? 부부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속죄 의식도 치른다. 모든 사당에 경배하고 미신에 복종한다. 하지만 인도의 그렇게 많은 신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지는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초조해진 칼리와 포나 부부에게 이웃들은 칼리가 다른 부인을 들이거나 아니면 포나가 예의 힌두사원 축제에 참가하라는 제안을 던진다. 결국 질투가 도착하고, 섹스는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전개된다. 포나는 “삶을 찾으면서 우리는 우리 삶의 포로가 되었다”고 말한다.

 

페루말 무루건의 케이스를 살펴보면서 두 가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첫째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구나라는 점과 둘째는 인도 문화의 그것까지 삼켜 버리는 영어라는 문화권력의 실체였다. 그나저나 무루건 선생의 책의 국내번역은 요원하기만 하니 하는 수 없이 어려워도 영어책을 구해다 읽어야겠구나.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들처럼 도서출판 아시아에서 나서서 번역하고 출간해 주면 좋겠으련만.

 

* 뉴욕타임즈 기사와 BBC 그리고 위키피디아와 인터뷰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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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2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22 11:40   좋아요 0 | URL
제가 아무래도 오리발, 아니 호기심이
마당발 수준이라 여기저기 기웃거리
는 분야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인도 문학이 땡기는군요.

얄리 2018-10-22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덕분에 페루말 무루건을 알게되었네요. 번역본이 나오면 참 좋으련만... 원서 주문해야겠네요. 법정까지 가게 된 작품내용이 정말 궁금합니다.

레삭매냐 2018-10-22 11:41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당분간 번역이 될 것 같지
않은 강렬한 예감이라 질렀습니다 -

분량도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던데...

인도 작가 중에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양반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18-10-22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22 11:43   좋아요 1 | URL
북디파지토리, 전세계 무료 배송이더라구요.
아마존 계열사지요.

어떤 책들은 아마존보다 비싸지만, 아무래도
무료 배송의 장점을 누릴 수 있으니깐요.

아주 드물게 주문하고 있습니다. 번역서도
다 못 읽고 있는 마당에 영어책이라뇨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