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평점 :

신은 우리가 기쁘게 살면서 배우며 지혜롭게 되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세상을 현명한 영혼과 어리석은 영혼들로 채우셨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하였던가. 세상은 곧 어리석은 영혼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신은 천사를 파견하여 세상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으나, 천사의 실수로 바보들의 영혼이 가득 든 자루를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마을에 풀어 놓게 되었다. 그런데 바보들 가운데에도 현자는 있는 법, 바로 그 헤움이라는 은행도, 도서관도 그리고 관공서도 하나 없는 마을이 꾸려져 가는 모양새를 류시화 작가는 우화라는 스타일로 풀어냈다.
이디시/아슈케나지로 보이는 유대인들이 등장하는 헤움 마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때 즐겨 읽던 에프라임 키숀의 <닭장 속의 여우>가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별 것도 아닌 일로 죽어라고 토론하고, 신의 계시를 기다리지만 정작 해결책은 단순하다. 어느 농부가 잃어버린 쇠스랑을 유대인들이 거룩하게 생각하는 성물 메노라 촛대라고 우기질 않나, 왜 우리 마을에는 시인이 없을까 싶어서 갖은 궁리 끝에 시낭송 밤 행사를 준비하고 공모전을 준비하는 장면이 그렇다.
우화란 무엇일까?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기 위해 어리석은 상황을 전개하고, 그 안에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는 걸 그들에게 알려 주는 방식이 아니던가. 그런데 정작 문제는 우리가 어리석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바보들의 마을 헤움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런 일이 적다. 바보마을 헤움에서 벌어지는 엉터리 같은 일들이 현대문명 세계에서도 버젓이 재현되지 않았던가. 9-11 당시 미국에서 알카에다 같은 테러집단의 미국 본토에 대한 화학물질 공격이 임박했다고 하면서, 그 대책으로 덕테이프(검정 테이프)로 창문을 밀봉하라며 시연해 주는 장면들이 방송국 카메라로 전국에 송출되지 않았던가. 우리에게는 이제 녹조라떼라는 이름의 재앙이 되어 버린 4대강 사업은 그저 헛웃음만 자아낼 뿐이다.
<인생 우화>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으며, 행복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가 삶 가운데 그렇게 추구하는 진리와 행복은 추구하면 할수록 우리의 손에서 스르르 빠져 나가 버리는 모래알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고 비교할 때도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저자는 연달아 등장하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을 통해 그런 간단한 진리를 들려준다.
마치 탈무드의 변주 같은 이야기들을 통해 류시화 저자는 우리 삶의 근원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계기를 제공한다. 어떻게 보면 유심론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오묘한 진리가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점이 재밌다. 신이 존재한다면 자신의 소원을 들어 줄 거라며 랍비가 봉투에 넣어 건네준 50즈워티를 바람에 날려 보내며 신에게 원래 부탁대로 100즈워티를 달라는 구두 수선공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복작거리는 집안에 식구들이 늘어나면서 생지옥이라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집에서 기르는 다양한 닭이나 염소 그리고 양 같은 동물들을 들여 놓아 보라는 랍비의 조언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장 다가온 이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왠 놈의 물욕이 그리 많은지(대개가 책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도대체 버리질 못하는 어느 중생의 모습과 왜 이리도 닮았는지 모르겠다. ‘책장 정리를 해야 되는데’라는 타령은 그야말로 나같은 책쟁이가 평생 숙제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헤움의 친구들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다. 그들에게 이런 주제가 주어진다면 또 서넛의 현자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에 돌입할 것이다. 그들이 가진 지혜로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외부의 도움을 받고자 외주를 주겠지.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결론은 대개 비합리적이기 마련이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그것도 수용하는 포용력과 아량을 과시한다. 어쩌면 행복은 현재에 대한 안분지족하는 나의 마음자세에 달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아주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