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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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실패를 규정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결국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나의 성공과 실패가 판정된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나의 행복도? 질문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그런 점이 너무 슬펐다. 내가 느끼는 사소한 감정들조차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그런 점이 말이다.

 

딸 홍유나(31세)가 죽었다. 십 수 년 전부터 이미 깨져 버린 가정의 가장인 정근은 전라도 출신의 공군 기무부대 예비역 대령이다. 정근과 그의 처 지숙은 황망한 가운데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받는다. 그 중에 딸 유나의 절친 윤철용과 강주한이 눈에 띈다. 우락부락한 영어샘 철용은 전혀 조문객답지 않은 복장으로 정근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반면 그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인 주한은 차분하게 장례식 절차를 돕는다. 유나는 차를 몰고 그대로 저수지로 들어갔고, 사인은 익사라고 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에 앞서 우리는 왜 젊디젊은 유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죽기 전 아빠에게 남긴 메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간다.

 

고향을 떠나 사회에 만연한 지역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동향 출신을 비난하던 홍 대령은 방산 비리로 불명예제대를 했고, 경비로 나머지 시간을 죽이고 있는 중이다. 교대 출신 유나는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대신 항공사 승무원으로 변신해서 사회인으로 출발했다. 홍 대령은 자신이 모르던 딸의 삶의 흔적들을 그녀가 죽은 뒤에 하나씩 찾아 가기 시작한다. 학생 시절, 자기 때문에 동료 윤 대령이 죽었다는 딸을 모질게 폭행하고 그 과정을 지켜 보던 지숙이 기절하는 과정 등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슈퍼리얼리티였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홍 대령의 가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게 아닐까.

 

승무원 5년차 유나는 자신을 밀고한 동료에게 환멸을 느낀다. 예의 밀고는 부기장 김영훈(그는 예전에 홍 대령의 운전병이었다)과 불륜이라는 모함이었던가. 반성문과 따귀는 정말 모욕적인 처사가 아닌가. 어쩌면 그 모든 출발은 노조간부로 활동하던 영훈과의 친분이 발단이 된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자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영훈네와 유나네는 서로 얽히고설킨 악연이 있었던 것 같다. 영훈의 아내 혜진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지난 2년간 코마 상태에 빠져 있다. 아마 소설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에 나오는 어떤 장면을 언급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 전에 본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소설 속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그 어떤 희미한 이미지들 정도.

 

소설에는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등장하는데, 왠지 모르게 따로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나가 승무원으로 근무한 항공사의 천태만상 비리는 최근 언론지면을 통해 접해서 그런지 낯설지 않았다. 피고용인들에 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어느덧 오너리스크의 상징이 되어 버린 갑질은 이제 일상이지 않은가. 우리들이 아무 생각이 없이 비행기 안에서 구매하는 면세품 팔기가 승무원들의 실적으로 둔갑하는 불편한 상황은 또 어떤가. 심지어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자신이 강제로 구매해야 한다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 버린 일들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감정이 놀랄 지경이다.

 

방산비리의 일각과 군부대 내 계급의 고하로 무시로 동원되는 사모들의 노동력 착취는 또 어떤가.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정작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은 책임을 외면하는 풍토에 대한 고발도 심상하게 다가온다. 홍 대령의 운전병이었던 영훈이 항공대를 졸업하고 부기장이 되어 승무원이 된 유나와 만나는 장면은 참 어색했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무런 빽도 금전적 여유도 없는 영훈이 부기장의 자리에 올라, 노조활동을 하다가 회사에게 찍혀 정직된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좀 무리지 싶다.

 

사실 소설은 유나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한 아버지 홍 대령의 노력에 초점이 맞춰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런 구체적 진실보다 유나의 지난 십년의 삶에 더 방점이 찍혔다고나 할까. 요지경 한국사회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의 나열도 좋지만, 선택과 집중으로 왜 유나가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나를 밝혀 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반성문과 따귀, 불륜 의혹 정도로 승무원 5년차 베테랑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건 아무래도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주변에 철용이나 주한 같이 좋은 친구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들과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점도 한국사회가 얼마나 각박하게 탈바꿈하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고발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도 슬프다.

 

책을 읽는 동안 몰입도는 상당했지만, 결론에 가서는 허무해졌다. 어쩌면 이것도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하나의 트렌드이려나. 도보순례에 나선 유나와 친구들의 명랑쾌활한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다. 나의 친구들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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