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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감추는 날
황선미 지음, 조미자 그림 / 이마주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알라딘에서 서지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황선미 작가의 <일기 감추는 날>이 재출간된 책이라는 걸 모를 뻔 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세상의 빛을 본 책이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일러스트레이터와 작업으로 다시 나온 모양이다.
책의 내용이야 당연히 동일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가 소윤경 작가에서 조미자 작가로 바뀌면서 톤이 상당히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아마 <암탉>의 대성공으로 해외 진출을 고려해서였을까? 조미자 작가의 그림은 장 자크 상뻬의 그림체처럼 왠지 프랑스 스타일처럼 보였다. 소윤경 작가의 그림은 아무래도 오래 전이라 촌스럽긴 해도, 이야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민이와 경수의 이야기에 좀 더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 감추는 날>은 내레이터 동민이가 말썽쟁이 경수가 울타리를 훌쩍 뛰어 넘는 걸 목격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아이들은 왜 하지 말라는 건 기를 쓰고 하는 걸까? 울타리를 뛰어 넘다가 다칠 수도 있으니 울타리를 넘지 말라고 하는 건데. 하긴 우리가 언제 부모님 말씀 대로 세상을 살아 왔던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장면이었다.
진짜 이야기는 다음이다. 동민이와 경수네 담임 선생님은 일기 쓰기를 정말 강조하신다. 하루의 삶을 반성하고, 개선하는데 있어 일기 쓰기만한 게 없다는 지론이시다. 이제는 공감하는 이야기지만, 여름 방학 때 그림일기 쓰기가 죽기보다 더 싫었던 건 나만의 일이 아니었으리라. 잘 그리지도 못하는(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그림이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림에 일상까지 담으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중에 커서는 쓰지 말라고 해도 일기를 쓰고 했으니까. 문제는 선생님이나 엄마 아빠가 나의 일기를 몰래 볼 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나중에 동민이가 직면하게 되는 문제처럼, 엄마는 선생님에게 제출하는 일기장에 아빠와 한 부부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적지 말라고 하지 않는가. 아, 동민이는 벌써부터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일기장에는 있는 그대로를 쓰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 주고 싶은 일들만 보여 주라는 것이지. 그럼 우리가 매달려 사는 인스타그램 같은 SNS와 뭐가 다르다는 거지? 좋은 경치를 자랑하는 여행지, 별미 같아 보이는 음식 사진을 찍기 위해 포크를 들고 달려 드는 대신 에어샷을 찍기 위해 “잠깐!”을 외치는 우리네 모습이 동민이의 고민과 묘하게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어쨌든 경수는 자신이 울타리를 뛰어 넘었다는 걸 동민이가 일기장을 통해 선생님에게 일러 바쳤다고 생각하고 동민이를 괴롭힌다. 아주 사소한 방법들로. 물론 거친 물리적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녀석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자신에게 닥칠 후과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말이지. 아, 어린이들의 세상도 어른들의 그것 못지 않구나. 동민이는 엄마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데, 엄마는 맞서 싸우라는 말만 하고. 그러니까 이 놈의 세상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걸 엄마는 이번 기회를 통해 알려 주려고 하셨나 보다.
뭐 예상대로 나름 범생이었던 동민이는 일기를 거르게 되고, 그 벌로 청소도 하고 늦게까지 남아 교실문을 잠그고 열쇠를 선생님에게 전달하는 일도 하게 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일들은 선생님이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아이들에게 맡겨도 되는 건지 좀 헷갈리기 시작한다. 15년 전에는 그랬었나. 동민이 역시 울타리를 상처가 나면서 뛰어 넘게 되는데, 좀 힘들긴 했지만 막상 해보니 별 게 아니었더라. 그리고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걸 보고는 경수도 더 이상은 동민이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더라는. 곁에서 수연이란 친구도 동민이를 응원하게 되면서 나름 해피 엔드로 끝난다. 아, 직장을 그만 둔 동민이의 아빠와 엄마의 이어지는 스토리가 궁금한데 그 부분은 생략되었다. 동민이 아빠는 직장을 그만 두고 호구지책으로 공사장에 나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나.
다시 한 번 선생님이 학생들의 일기를 검사하는 장면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학교 선생님이 아이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건가? 알아도 아이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슈퍼히어로도 아닐 텐데 말이다. 다시 한 번 개입과 중용의 미덕이 어떤 식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해는 가지만 다 수긍할 수도 없는 그런 어쩡정한 관계라고 해야 할까. 아, 그리고 그림은 새로 나온 버전보다 예전 게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