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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빛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2월
평점 :

제임스 설터의 최근 작품에서도 느꼈듯이 대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균질한 작품의 완성도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로맹 가리 전작읽기 중에 만난 <여자의 빛>도 그랬던 것 같다. 여성성이야말로 자기 작품 추구의 목적이라고 읊조리는 노년의 로맹 가리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으로 보이는 주인공 미셸 폴랭은 명백한 작가의 페르소나이다.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파리의 어느 날, 주인공 미셸은 40대의 매력적인 리디아 토바르스키를 만난다. 리디아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딸과 남편을 잃었다고 미셸에게 고백한다. 첫 만남부터 위태로운 관계가 피어오를 것 같다는 불안감이 스물스물 퍼진다. 미셸 역시 불치병에 걸린 아내 야니크가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죽어가는 아내를 대신할 새로운 ‘여자의 빛’을 리디아에게서 발견할 걸까. 모호한 대화 속에 진심들이 가끔씩 드러나는 대화가 왜 이렇게 불편한 걸까.
리디아와 함께 들어간 카페에서 동물조련사 세뇨르 갈바를 만나게 된다. 분홍색으로 염색된 푸들과 침팬지가 파소도블레를 추는 공연을 미셸은 역겨워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데카당스한 쇼를 좋아하는 모양이지. 늘상 어색한 만남에서 어디선가 만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마 라스베이거스라고 했었지. 유혹과 각종 환락이 넘실거리는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 죽음이라는 공통 과제를 가진 남녀에게 달나라만큼이나 먼 듯한 이야기일 따름이다. 그런데 로맹 가리는 왜 느닷없이 세뇨르 갈바를 등장시킨 걸까. 결국 세뇨르 갈바도 소설의 막바지에 죽음을 맞게 된다. 침팬지와 푸들의 파소도블레 공연이 벌어지는 가운데 말이다. 별 인연이 없던 미셸은 자신의 여행가방을 챙겨 무심하게 죽음의 현장을 떠나 버린다.
특별한 이벤트가 벌어지지 않고, 소설은 주인공들의 내면 심리에 초점이 맞춰진 가운데 그럭저럭 굴러간다.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은 미셸이 리디아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시어머니가 주최한 리셉션 장에서 일어난다. 처음에 죽었다던 남편 알랭은 죽은 게 아니라, 거의 식물인간 같은 존재가 되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되뇌인다. 그에 장단을 맞추든 ‘유대인식 유머’를 동원해서 미셸은 맞장구를 치는 장면. 죽은 아내가 있는 곳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절대 ‘여자의 빛’이 필요하다며, 리디아를 데리고 나선 배짱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자신의 누나에게 이러면 안되었다며 항의하는 처남에게, 자신은 어쨌거나 행복을 추구하겠다며 응대하는 미셸의 모습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로맹 가리 자신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이혼한 아내 진 세버그가 죽었어도, 난 계속해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홀아비의 비양심적인 선언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면에서 항상 듣는 말인, 산 사람은 살아야지 뭐 그런 말이 연상되기도 했다.
미셸과 함께 애욕의 사막을 건넌 리디아가 한동안 멀리 떠나겠다는 말에 미셸이 그녀에게 충분히 감정을 다스리고 충전의 시간을 가진 다음에 돌아오라는 말을 했을 땐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새로운 ‘여자의 빛’을 찾기 전까지는 말이다.
짧은 소설이었지만 스러져가는 노년을 맞고 있던 로맹 가리의 씁쓸한 회한 같은 것들이 느껴진 그런 작품으로,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아니 여성성에 대한 극진한 예찬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바람둥이 작가의 숨길 수 없는 로망으로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어쨌든 <별을 먹는 사람들>이나 <레이디 L> 같이 강렬한 한 방도 부족했던 것 같고. 어쨌든 로맹 가리의 전작읽기의 가도에서 만난 책이라 완독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독서였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