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개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내가 로맹 가리의 책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건 아니어서 어떤 책들은 또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고 있다. 오늘도 세 권의 책을 빌려 왔다. <흰 개>는 지난 주말에 빌려온 책인데, 어제(7월 19일)부터 읽기 시작했다. 1968년 1월 30일 베트남에서는 테트 공세로 주월 미군이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전투에는 승리했지만 결국 전쟁에 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4월 4일에는 미국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했다. 당연히 극한의 폭력이 분출했고, 문명사회는 들썩였다. 바로 이 시점에 로맹 가리는 아마 미국에 아내 진 세버그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에게 다른 사회적 이슈들보다도 심각한 당면 과제는 흑인만 보면 잔혹한 공격성을 내보이는 “흰 개”였다.

 

그가 바트카(러시아 어로 ‘키 작은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라는 뜻이라고 한다)라고 이름 회색 셰퍼드는 백인들이 주는 밥만 먹었다. 나중에 그 개에 대한 이력이 드러나는데, 남부에서 키워지면서 흑인만 공격하게 체포하게 훈련받은 경찰견이었다. 개 사육장에서 로맹 가리는 그런 개들을 ‘흰 개’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 이런 극심한 인종주의의 부산물이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바트카의 원래 주인이 등장해서 그들이 인종주의 온상 앨라배마 출신이며, 수대째 보안관과 경찰관직을 역임해 왔다는 말에 로맹 가리는 대놓고 면박을 준다.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들이기에 이런 악랄한 방식으로 ‘흰 개’를 길렀단 말인가. 개 사육장에 있는 로맹 가리의 지인들이 바트카가 재교육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앨라배마 출신 노인 역시 리셋이 불가능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무래도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으니 말이다.

 

68세대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정치적 대립이 계속되고 있던 1968년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라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할 것 같다. 미국 배우 출신으로 타국 프랑스의 연인이 되고, 블랙 팬서단의 온정적인 태도를 유지했던 휴머니스트 진 세버그를 FBI국장 에드가 후버는 블랙리스트에 올리고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모략질을 일삼았다. 일국의 정보국장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어린 처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진 세버그의 고향 아이오와 주의 마셜타운으로 향한다. 장례식에서 역시나 미국내 뿌리 깊은 인종주의의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과연 분리차별정책(segregation) 밖에는 답이 없다는 걸까. 그리고 마틴 루터 킹 암살로 온 미국이 들끓는 가운데 흑인 친구 아니 ‘소울 브라더’ 레드를 찾아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흑인 인권운동의 방식을 전해 듣게 된다.

 

베트남 전쟁에 소총수나 탄약수 등으로 동원된 흑인 전사들이 훗날 미국내 무장투쟁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거란 레드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로맹 가리는 그들보다 다섯 배나 많은 수의 백인 전사들이 있노라고 대꾸한다. 정말 드골 주의자다운 대꾸가 아닐 수 없다. 레드의 아들 필립은 베트남 전에 장교로 참전해서 또 하나의 영웅이 되고자 하고, 다른 아들 발라드는 프랑스 여자와 사랑에 빠져 탈영을 감행한다. 그리고 대선 레이스 중인 밥 케네디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나는 어디선가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읽기는 하고 있는 건가? 단순하게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작가의 시선을 추적하는 것 같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프랑스는 미국 이전에 안남(베트남) 혹은 코친차이나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이 아니었던가. 그 다음에는 알제리에서 빨치산들의 독립투쟁에 맞서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른 나라가 아니었던가.

 

페미니즘과 동물보호를 옹호하면서도 우파 보수주의자로서의 면모를 포기하지 않는 이방인 로맹 가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내 진 세버그는 열렬하게 흑인 민권운동가들을 후원하지만, 정작 그들에겐 흰둥이 개○일 따름이었다. 말론 브란도를 위시한 일단의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인사들이 모여서 후원 모금하는 장면도 역시 레지스탕스 영웅에겐 하나의 개짓거리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자유프랑스군의 일원으로 로렌 십자가를 앞세우고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하겠다는 모습도 68혁명의 대의와는 정말 거리가 있는 모습이 아닌가.

 

그리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 보니 흰 개 바트카는 백인을 공격하는 검은개가 되어 있더라는 결말에서는 정말, 이 작가가 <흰 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뭐였나 하는 혼란에 빠져 버렸다. 굳이 역자 후기는 읽고 싶지가 않았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미완성으로 나의 독서를 남겨 두어야 하나 싶다.

 

이제 로맹 가리 읽기가 중반을 넘어섰다. 앞으로 남은 책은 모두 열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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