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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6월
평점 :
이나가키 에미코가 다시 돌아왔다. 지난 번에는 동일본 원전사고 이래, 에너지 자원을 아끼는 차원에서 냉난방과 냉장고를 포기하는 쾌거를 보여 주었다면 이번 타깃은 먹거리다. 저자는 누구 못지 않게, 각박한 현대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해 왔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남보다 좋은 학교, 그리고 많은 월급을 주는 회사에 다니며 성공가도를 달려 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저자에게 행복을 담보했던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저자는 적은 비용을 들여 사는 미니멀 라이프를 사방에 적용한다. 냉난방를 줄이는데 성공한 저자는 싸고 빠르고 맛있게라는 신념 아래, 채소절임(쯔게모노)이 풍요료운 삶을 담보할 수도 있다는 간략하지만, 피부에 와 닿은 진실을 독자에게 설파하기 시작한다.
요즘 방송을 보면, 한물 가긴 했지만 갖은 양념과 비법으로 무장한 셰프들이 현란한 기술을 동원해서 시청자들의 침샘과 식욕을 자극한다. 저녁 시간대를 장악한 먹방 방송은 또 어떤가. 프랑스 요릿집을 냉면가게로 착각한 어느 PD가 홍보를 전제로 부가세 포함한 770만원에 방송을 타게 해주겠다고 제안하는 시대가 아닌가. 무언가 남보다 맛있고, 미각을 자극하는 플레이팅된 요리를 먹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진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아냐, 아냐 그게 아니야라고 에미코 씨는 외친다. 그런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말고, 냉장고도 없던 에도시대 스타일의 소박한 밥상으로 돌아가라고 목놓아 외치고 직접 실행에 옮긴다. 아, 책을 읽는 순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장과 실천은 원래 별 개의 문제가 아니었던가.
싸고 빠르고 맛있게 먹고 살자
역시 혼밥의 기본은 밥이다. 사흘 마다 밥을 한 번씩 한다는 이나가키 씨는 그야말로 밥 예찬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에도시대로 돌아가, 그 좋다는 일제 코끼리 밥솥도 아닌 나무 밥통에 밥을 담아 둔다니 놀랄 노자가 아닐 수 없다. 저자가 그렇게 주창해 마지 않는 미니멀 라이프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나가키 씨에게 요리의 재료는 그야말로 사방에 널렸다. 도심에서 나는 민들레마저 생포하다가 나물로 만들어 먹는다는 이야기에서는 쫌 꺼려졌지만 말이다. 아니 배기가스에 오염된 민들레를! 아직도 난 미니멀 라이프하고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거의 만능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쌀겨된장으로 만든 쌀겨절임 이야기는 또 어떤가. 물론 허연 곰팡이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겠지만, 마치 무슨 아이 키우듯 애지중지하며 냉장고에서 내와 싱크대 밑으로 이사간 쌀겨된장이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 너무 좋더라는 이야기에서는 정말 웃음이 빵빵 터졌다. 이 양반 정말 자신의 삶에 애착을 느끼시는구나. 그리고 중간에 삽입된 저자의 먹거리 사진은 멋졌다. 역시 심플한 게, 좋은 걸까?
퇴사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우리 삶을 편하게 만들어준 이기들을 떨쳐낸 이나가키 씨는 어려운 걸 독자에게 주문하는 게 아니다. 사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주[삶의 문제]에 이은 식[먹거리]이야말로 사람들의 또다른 관심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호화로운 그리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음식은 가끔 외식으로 처리하고 평소에는 저자가 구사하는 그런 간편 조리식을 먹는 게 어떨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 먹다 보면 오장육부가 건강한 ‘대장여인’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고 한다.
기존에 우리가 요리를 위해 마련한 온갖 조미료들과 요리책 그리고 다양하지만 잘 쓸 일이 없는 요리기구들도 죄다 치우라고 한다. 물론, 모든 게 일인 가구에 맞춘 게 아니냐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을 것도 같다. 아이도 하나 없는 싱글 여성의 라이프가 아니던가. 가족 구성원 중에 아이 하나만 추가되더라고, 그런 미니멀 라이프의 환상은 바로 깨질 텐데 말이다.
어쨌건 저자의 메씨지를 확실하게 알아 들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나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단순명료하게 살자 뭐 그런 게 아닌가. 나의 경우를 보면, 당장 책부터 정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많은 책들을 다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가. 나의 미니멀 라이프 실천은 책을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이번 후반기에는 혹독한 책장 다이어트에 돌입해 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