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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우리 동네 도서관의 도서 수급능력은 정말 알아 주어야 한다니깐 그래. 20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을 줄이야. 나보다 먼저 빌려간 사람이 있어 바로 예약을 걸었고, 딩동하고 어제 문자가 도착했다. 책이 도착해 있으니 냉큼 와서 가져가란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했다.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는 우선 순위가 좀 밀렸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이 소설의 작가가 진정 할머니 킬러가 등장하는 <파과>를 쓴 사람이란 말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다. 확실히 최근 트렌드를 저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문득 작가의 역량 혹은 임무 같은 추상적인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름지기 작가란 동시대의 무언가를 자신의 글을 담아야 하는 걸까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는 난민 이야기도 좀 다루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또 엉뚱한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 오른다.
<네 이웃의 식탁>은 실패를 전제로 한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일단의 사람들의 육아실험이 주를 이룬 소설이다. 국가에서 변변찮은 비용을 들여 만든 전세 난민들을 위한 주거지가 있다고 한다. 한자락하는 사연을 품은 이들이 부나방처럼 공동주택으로 모여 든다. 문제는 아이 셋을 기본적으로 낳아야 한다는 거다. 하나도 버거운 판에 셋이라고? 정말 출산지도 같은 탁상행정의 전형이 아니던가. 부부 사이에도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갈등이 끊이지 않는 판에, 서로 전혀 다른 이해관계와 삶의 방식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의 툭툭 튀어 오르는 분노와 개성을 고이 접어 두고 오직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빤히 보이는 갈등을 봉합할 수 있을 거라는 설정 자체가 문제였다.
육아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인 홍단희 아줌마는 아들 둘을 둔 전투형 투사로서 공동육아의 지침과 계획, 실행을 도맡아 처리한다. 잘 나가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그녀의 남편 신재강 씨는 포드 자동차를 몰며, 차고장 핑계로 카풀을 하면서 새로 입주한 요진 씨에게 교묘한 방식으로 집적거린다. 신재장 아저씨가 사다준 명품 브런치백에 들어있는 맛난 요리가 주는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유혹에 그만 깜빡할 뻔하기도 한다. 약국 카운터에서 일하는 그녀의 남편 전은오 씨는 영화판에서 입봉을 기다리는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 지망생으로 가계엔느 젬병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하러 출근한 아내 대신 육아와 살림을 잘 하냐면 물론 그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잉여 같은 존재로 속병을 유발시키는 존재다.
이제 나머지 두 집이 남았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 전념하면서도 프리랜서 동화작가로 일을 그만 두지 못하는 조효내 씨는 처음부터 공동육아 집단에 이질적인 존재였다. 리더 홍단힁 아줌마와 요리 전담 강교원 아줌마에게 공공의 적으로 찍힌 지 오래다. 그리고 보니 그녀의 남편 상낙 씨야말로 소설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나.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계약 조건 대로 충실하게 세 번째 아이까지 임신한 교원 씨는 속칭 맘충이(이런 표현을 하시는 걸 용서해 주시길)로 없는 살림에 아나바다하며 어떻게든 가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하지만, 어느날 공동육아 집단을 떠들썩하게 하는 격한 전투 끝에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한다. 뭐 그 정도야. 우리 윗집에서는 매일 같이 피튀기는 전투와 고성이 오가기도 했는데. 그리고 보니 공동주택에서 전투는 가급적이면 사양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전투를 치러야 한다면 수면 시간 전인 7시나 8시에 일찌감치 시작해서 두어시간 하시고 마쳐 주시면 정말 고맙겠다. 아니면 오밤중에 이슈에 대해 상호간에 토론배틀과 묵상 끝에 전투력이 급상승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뭐 소설은 처음 기대했던 궤도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공동육아 실험이라고 했던가. 실험은 자고로 실패하기 마련이다. 다만 어떤 식으로 그것이 이루어질 것인가가 문제일 뿐.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런 실험의 실패는 이미 전제된 조건이 아닌가. 요진 씨가 이웃의 경계를 살짝살짝 넘나드는 신재강 아저씨의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지 못했던 것처럼, 가족도 돌파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공동육아라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뭉친 이웃들에게 기대하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다.

<네 이웃의 식탁>에는 정말 요즘 핫한 다양한 이슈들이 성찬으로 잘 차려진 느낌이다. 전세 난민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심각한 거주 문제부터 시작해서, 무엇보다 가정생활에 활액을 제공하는 경제 문제들. 누가 돈을 벌며, 양육과 가사의 노동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임신과 출산으로 자아를 죽이며 사는 엄마빠들의 고민들이 그대로 녹아져 있다. 최소한 아이를 키워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어쩌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하긴 우리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여기에 도달할 수가 있었지. 올챙인 개구리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다. 결국 내 새끼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일까. 서구 사회에서 국가가 아이들을 책임지고 키워 준다는 판타지에는 열광하면서, 지금 당장 소주 한 병값 만큼 담배 한 갑 만큼 혹은 별다방 라때 한 잔 만큼 건강보험료를 올리고 증세해서 복지재원을 마련하자는 말에는 입에 거품을 물고 세금폭탄이라며 반대하지 않는가 우리는.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하는가 보다. 고만 떠들고, 애나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