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1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작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그런 이물감이 느껴졌다.10년 전,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으로 첫 번째 장편을 발표한 저자는 조선에서 출발해서 일본에 거주하는 4대에 걸친 재일한국인 가족에 대한 서사시로 다시 한 번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출판사가 책의 표지에 떡하니 박아 놓은 대로 과연 ‘세계적 작가’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부산 영도에서 출발한 김순자 가족의 이야기는 신산하기 짝이 없다. 사실 식민지 시절 한국인들에게 먹고사니즘 만큼 중요한 게 없었으리라.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순자의 아버지 김훈의 삶은 조국을 일본에게 빼앗긴 식민지 백성의 심정을 절절하게 대변하는 문학적 장치에 다름이 아니다. 순자의 어머니는 존경하는 남편을 잃고, 어린 순자를 억척스럽게 키워나간다. 특별한 기술이 없으니 하숙집 주인 노릇을 하며 근근하게 먹고사니즘은 해결해 나간다.

 

외동딸 순자가 그런 어미의 기대대로 잘 자라났으면 좋으련만, 시장통에서 힘깨나 쓰는 부유한 건달 고한수를 만나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유부남이자 오사카에 본부인과 아이를 세 명이나 데리고 있는 한수는 자신의 딸같은 순자와 사랑에 빠져 버린다. 장애 유전이라는 문제점 때문에 딸이 과연 결혼할 수나 있을까 싶던 차에 순자의 어머니는 기가 막히는 상황을 처하게 된다. 시집도 안간 딸이 임신한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언제나 구원의 손길은 있는 법, 평양 출신 멋쟁이 백이삭 목사가 나서면서 순자 모녀의 문제는 일시에 해결된다. 물론 그전에 결핵병으로 죽어가던 이삭 목사를 순자의 어머니가 구해 주면서 백목사에게는 마음의 빚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를 아이를 가진 순자와 결혼해서 형 요셉이 자리를 잡은 오사카로 건너갈 계획을 세운다. 참, 그의 맏형 사무엘은 삼일운동 당시 죽음을 당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어째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기와 무염시태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는가. 조선땅에서 한국인들이 당하는 고통의 역사는 유대인이 이집트땅에서 당한 환난과 그 궤도를 같이 하지 않는가.

 

물론 순자와 이삭의 일본행이 구원의 약속은 아니었다. 오사카 이카이노에 정착한 그들에게 행복의 순간들은 잠깐 뿐이었다. 만주침략으로 시작한 일본 제국주의는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에 뛰어든다. 백씨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 요셉은 다른 가족들을 건사할 깜냥도 되지 않으면서 ‘김치 아줌마’가 되고 싶어하는, 아니 시장에 나가 직접 돈을 벌고 싶어하는 양반집 규수 출신 아내 경희를 억압하는 구시대 남편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 현지에서 차별과 경제적 무능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노아가 태어나고, 이삭이 신사참배 문제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는 행복과 불행이 교차되는 순간도 등장한다. 기이한 점은 이삭의 죽음이 상대적으로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의 소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순자 가족의 일본 고군분투기의 뒷배경에는 노아의 진짜 아버지 한수의 조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한수는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대리인 김창호를 투입해서 순자 가족을 구원한다. 일찍이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당차게 일본행을 선택했지만, 어쩌면 그것조차 한수가 모두 계획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지면서, 미군의 공습이 격화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한 한수의 조언대로 순자 가족들은 한수가 준비한 시골 농장으로 이동한다. 요셉은 가장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나가사키로 향했다가 원폭 피해자가 된다.

 

파친코의 1부 <고향>에서 식민지 조국에서 일본행을 선택한 순자 가족의 고난이 그려진다면 2부 <조국>에서는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인 노아(Noah)와 모자수(Moses)가 주인공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확실히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문득 한국어 번역에서는 구수하고 현란하게 전개되는 순자 아주머니의 부산 사투리가 과연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 지 궁금해졌다.

 

문제적 인간 요셉이 보여주는 캐릭터는 식민지 조선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시민 스타일의 민중에 대한 스케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형 사무엘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할 생각도 없고, 오로지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그는 굽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일제에 협력하거나 부역한 것도 아니다.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 오로지 살기 위해 일본인 고용주 밑에서 일한 것이 부역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아내는 집에서 가장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구시대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가치가 붕괴되고 전도된 전후 일본 사회에서 새로운 세대의 그것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계화라는 점에서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는 캐릭터의 입체화, 내러티브의 전개 등에서 나무랄 데가 없을 것 같다. 확실히 읽는 재미가 있고, 순자 가족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 유발은 탁월했다. 다만, 한국 사람들이 읽는다면 과연 부산 영도에서의 생활과 오사카에서 순자 가족들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가 작가가 묘사한 대로였는지 같은 디테일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재미작가 출신이라는 점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이물감이 독서하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참 글은 잘 썼는데 결핍과 괴리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저자가 소설 <파친코>에서 추구하는 문학적 핍진성이 재일한국인들에게만 벌어질 수 있는 유니크한 설정에서 벗어나, 글로벌리즘에 매몰되어 버리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독자로서 파친코 1부 <고향>은 충분히 흥미진진했다. 이제 다음 세대의 주자들인 노아와 모자수(그의 이름이 모세라는 점을 알기 전까지 도대체 어디서 나온 이름인지 조금은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가 이어받을 2부 <조국>에서 그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뱀다리] 인스타에서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데, 참 표지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잃었다. 꼭 이래야만 했는가.

[뱀다리2] 작가로서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 재니스 Y. K. 리의 두 번째 소설 <국외거주자>의 출간이 궁금해졌다. 왠지 나는 재니스 Y. K. 리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은 그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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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12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표지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인스타를 안 해서 이 책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네요.. ^^;;

레삭매냐 2018-04-12 13:19   좋아요 0 | URL
표지가 책을 살리지 못하고 구리다는
평입니다.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좀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