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에 등장하는 '초의에게 주는 글' 역시 가는 획에 힘이 없고 미풍에도 흩날릴 것 같다. 단박에 위작이다. 편지는 해서나 행서로 쓰지, 예서로 쓰는 법이 없다. 옛 서체라도 율동감이 있어야 하는데 획들이 너무 가늘고 뻣뻣하다. 이를  두고 유교수는 "글자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어지러운 듯하나 묘하게도 변함의 울림이 일어나 오히려 멋스럽다"고 썼다. 이런 억지 주장은 도처에 있다." (강우방, 「주간 동아」  1151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가 최근 『추사 김정희』를 펴냈어요. 그런데 이 속에 소개된 작품의 절반 이상이 위작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하는 글이 나왔어요. 인용문은 이 글 일부인데, 글쓴이는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 연구원장이에요. 유교수와 강원장 모두 고미술에 대한 안목이 뛰어난 분들로 평가받아요. 그런데 추사의 작품을 놓고 진위(眞僞)와 고하(高下)를 달리하니, 문외한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할지 난감해요. 예술적 안목이란 것이 다분히 주관성이 강하다는 것을 십분 이해한다해도 말이죠.

 

사진은 북송의 서예가이자 서화감식가인 미불(米芾, 1051-1107)의 작품이에요. 초서를 품평한 글로 흔히 「논초서첩(論草書帖)」이라 불려요. 읽고 해석해 볼까요?

 

 

草書若不入晉人格 輒徒成下品 張顛俗子 變亂古法 驚諸凡夫 自有識者 懷素少加平淡 稍到天成 而時代壓之 不能高古 高閑而下 但可懸之酒肆 光尤可憎惡也

 

초서약불입진인격 첩도성하품 장전속자 변란고법 결제범부 자유식자 회소소가평담 초도천성 이시대압지 불능고고 고한이하 단가현지주사 변광우가증오야

 

초서가 진인(晉人)의 경지에 들어서지 못하면 하품이 되고 만다. 장전은 속물이다. 옛 법도를 파괴하여 평범한 감식가들을 놀래켰을 뿐이다. 회소의 작품은 어느정도 평담함이 더해져 천성(天成)의 경지에 이를 가능성이 많았지만 시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끝내 고아한 옛 법도에 이르지 못했다. 고한이하의 작품들은 술집 간판에나 어울릴만한 것들이며, 중에서도 변광의 작품은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미불은 당나라 시대 광초(狂草)를 쓴 작가들의 작품을 혹평하고 있어요. 초성(草聖)으로까지 불린 장욱을 속물이라고 평하는가 하면 고한 등의 작품은 술집 간판 정도의 품격밖에 안되며 변광의 작품은 혐오스럽다고까지 말하고 있어요.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한 회소의 작품조차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했어요. 미불이 저명한 서화감식가였던 점을 생각하면 그의 품평에 섣불리 딴지를 걸기 어려워요.

 

그런데 미불 못지않은 서예가이자 서화감식가였던 동시대 인물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장욱과 회소에 대해 이렇게 평했어요: "이 두 사람은 한 시대 초서의 으뜸이다(此二人者 一代草書之冠冕也)" 장욱과 회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면 고한이하의 인물이나 변광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을거라 짐작할 수 있어요. 앞서 유교수와 강원장의 극단적 평가 때문에 난감했던 것처럼 미불과 황정견의 극단적 평가에서도 어느 견해를 따라야 할 지 난감해요.

 

예술적 안목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선천적 재능과 후천적 노력이 결합되어 성숙하죠. 그러나 그 성숙된 정도가 어느 경지인지는 고수들만 알뿐 문외한은 가늠하기 어려워요. 문외한은 그저 경외 반 질투 반의 심정으로 그들간의 논쟁을 지켜볼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게 '싸움'하고 '불구경'이라고 했던가요? 고수들의 안목 싸움도 예외는 아니겠죠? 미불과 황정견의 품평 논쟁은 두 분 다 고인(故人)이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지만 유교수와 강원장의 엇갈린 안목 싸움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자못 궁금해요. 필시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될 거예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顛은 頁(머리 혈)과 真(참 진, 眞과 동일)의 합자예요. 머리란 뜻이에요. 頁로 뜻을 나타냈어요. 真은 음(진→전)을 담당해요. 미치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사진의 내용에서 顛은 미치다란 뜻으로 사용됐어요. 장욱과 회소는 글씨를 쓸 때 술에 취하여 미친듯이 썼다 하여 장전광소(張顛狂素, 미치광이 장욱과 회소)란 별칭으로 불렸어요. 머리 전. 미칠 전. 顚으로 표기하기도 해요. 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顛倒(전도), 顛末(전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變은 강제로 바꾼다란 뜻이에요. 攵(칠 복)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나머지는 음(란→변)을 담당해요. 고칠 변. 변할 변. 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變法(변법), 變化(변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亂은 양 손으로 얽힌 실타래를 푸는 모습을 그린 거예요. 얼힌 실타래에 중점을 두어 '어지럽다'란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푸는 모습에 중점을 두어 '다스리다'란 뜻으로 사용하기도 해요. 어지러울 란. 다스릴 란. 亂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混亂(혼란), 亂民(난민, 국법을 어지럽히는 백성 혹은 백성을 다스리다란 뜻)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驚은 馬(말 마)와 敬(공경 경)의 합자예요. 말이 의심스런 상황에 놀라다란 뜻이에요. 놀랄 경. 馬로 뜻을 표현했고 敬으로 음을 표현했어요. 驚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驚氣(경기), 驚愕(경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稍는 禾(벼 화)와 肖(닮을 초)의 합자예요. 볏줄기의 끝 부분이란 뜻이에요. 禾로 뜻을 나타냈어요. 肖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볏줄기 본체와 닮은 것이 볏줄기 끝이란 의미로요. 끝 초. '점점'이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본체에서 점점 멀어진 것이 끝 부분이란 의미로 사용한 것이죠. 점점 초. 稍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稍稍(초초, 점점. 차차로), 稍事(초사, 작은 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壓은 土(흙 토)와 厭(싫어할 염)의 합자예요. 누르다란 뜻이에요. 土로 뜻을 표현했어요. 厭은 음(염→압)을 담당해요. 누를 압. 壓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壓迫(압박), 壓力(압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懸은 心(마음 심)과 縣(고을 현)의 합자예요. 윗 사람에게 매여있다란 뜻이에요. 心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縣은 음을 담당해요. 매달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매달 현. 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懸河之辯(현하지변, 거침없이 잘하는 말), 懸板(현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肆는 镸(長의 고자, 길 장)과 聿(逮의 약자, 미칠 체)의 합자예요. 늘어놓다란 뜻이에요. 镸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聿는 음(체→사)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한 쪽에서 다른 쪽에 이르로록 배열한 것이 늘어놓은 것이란 의미로요. 늘어놓을 사. 가게라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가게 사. 肆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放肆(방사, 제멋대로 행동하며 거리끼고 어려워하는 데가 없음), 藥肆(약사, 약가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광초는 서예술이 정점에 이른 글씨라 할 수 있어요. 글씨쓰는 이의 취향이 최대한 반영되어 글씨인지 그림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하면, 글자 본래의 목적인 정보 전달이라는 객관적 실용성은 최소로 떨어뜨리고 작가의 취향 전달이라는 주관적 예술성은 최대로 끌어 올린 것이 광초라고 할 수 있어요. 미불이 장욱 등의 광초를 싫어한 것은 이런 정점에 이른 편향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봐요. 반면, 진대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던 건 객관적 실용성과 주관적 예술성이 최고의 조화를 이루었다고 보았기 때문은 아닐지? 미불이 살던 시대가 송나라 때이고 송나라는 사대부의 나라였으며 사대부는 중용(中庸)의 가치를 중시했기에 그런 평가를 했다고 보는거예요(물론 같은 사대부라도 황정견은 미불과 견해를 달리했지만요). 아래 장욱의 광초 한 점을 소개해요(미불과 장욱의 작품 사진은 인터넷에서 구했고, 작품 원본은 각각 대만의 고궁박물관과 중국의 요녕성박물관에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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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시겠어요?"

 

"살아보세요!"

 

작년 여름 지인 몇과 충주호에 갔어요. 근처 한 식당에 들러 점심을 시키며 지인 한 사람이 주인에게 수인사 겸 덕담을 건넸는데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어요. 주인은 답변 끝에 한마디 더 덧붙였어요. "물만 보면 지겨워요."

 

산수의 아름다움을 그린 시를 '산수시'라고 해요. 산수 자체를 그린 시도 있고, 산수를 그리면서 자신의 흥취를 덧붙인 시도 있어요. 그런데, 다른 시도 마찬가지지만, 성공적인 산수시가 되려면 독자에게 감동을 줘야 해요. 그렇지 못하면 제 아무리 훌륭한 표현을 동원하여 산수시를 지었다 해도 성공한 작품이 될 수 없어요. 그건 흡사 경치좋은 곳에 살길래 행복한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저 음식점 주인의 경우와 같아요.

 

겉모습과 실상이 다른 음식점 주인과 그와 흡사한 실패한 산수시 작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진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음식점 주인은 경치좋은 곳에서 그저 돈 벌 생각만 하기에 좋은 경치를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고, 실패한 산수시의 작자는 산수의 미감을 손쉽게 상투적인 표현으로 그려냈기에 독자에게 감동을 전달하지 못하는 거예요. 진정성이 있다면 좋은 경치를 탓하거나 독자에게 감동을 전달하는데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사진은 안축(安軸 1287-1348)의 경포범주(鏡浦泛舟, 경포 호수에 배를 띄우고)란 산수시예요. 경포대를 노래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외면상으로 보면 나무랄데 없는 훌륭한 시예요. 우선 읽어 볼까요?

 

 

雨晴秋氣滿江城  우청추기만강성     비 개인 강 언덕 가을 기운 가득한데

來泛扁舟放野情  래범편주방야정     조각배 띄우고 서늘한 마음 푸노라

地入壺中塵不到  지입호중진부도     병 속에 든 듯 티끌 하나 이르지 않아

人遊鏡裏畵難成  인유경리화난성     거울 속에 노는듯하니 이 어찌 그림으로 그리나

煙波白鳥時時過  연파백조시시과     물안개 피는데 갈매기는 때때로 오가고

沙路靑驢緩緩行  사로청려완완행     백사장엔 푸른 나귀 느릿느릿 걸어가네

爲報長年休疾棹  위보장년휴질도     사공아, 노 빨리 젓지 마소

待看孤月夜深明  대간고월야심명     한밤중 외로운 달 밝은 것을 보려니

 

 

그런데 이 시를 되풀이 읽어보면, 이상하게,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아요.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 봤어요. 가장 큰 원인은 산수에 대한 '진정성'이 없는데 있어요. 진정성이 없기에 독자인 제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 거예요. 그러나 이런 독단적인 언사만으로 이 시를 평가한다면 설득력이 없겠죠? 하여 나름의 근거를 제시해 보려 해요.

 

산수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보니 이 시가 보여주는 색채의 미감은 '백색'으로 표현됐어요. '비 개임' '가을 기운' '티끌 이르지 않음' '거울 속' '물안개' '갈매기' '백사장' '달 밝음'이 보여주는 색채는 모두 백색이죠. 이 시에는 물론 청색(靑驢)과 흑색(夜深)이 등장하지만 주조색인 백색을 압도하진 못해요. 시의 주조색은 백색이라해도 무방하죠. 그런데 백색은 무엇을 상징하던가요? 깨끗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죽음' '공포' '고독'을 주로 상징하지 않던가요? 시인이 산수에 대한 진정성이 있었다면 결코 백색으로 시 전체의 색감을 도배하진 않았을 거예요. 백색으로 도배된 산수시에서 감흥을 느끼기란 쉽지 않죠.

 

그런데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어요. "산수시의 색조가 백색이면 무조건 감흥이 없는거냐?" 물론 그렇진 않을 거예요. 진정성이 없는 무미건조한 백색이기에 감흥이 없는 거지요.

 

그렇다면 시인은 어쩌다 무미건조한 백색으로 시를 도배한 걸까요? 그건 이 시의 표현 내용과 관련이 있어요. 이 시의 제목을 가리고 내용을 읽어보면 이 시가 꼭 경포호를 그린 거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다시 말하면 그냥 범범한 표현으로 경포호를 그렸다는 거예요. 호수의 풍경을 그릴 때 물안개와 갈매기를 등장시키거나 호수를 거울에 비유하는 것은 흔한 표현법이죠. 호수 밖 풍경을 그릴 때 백사장을 지나는 나귀를 그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구요. 경포호에 대한 진솔한 감정이 없기에 상투적인 표현을 빌어 경포호를 그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백색이 주조를 이루는 무미건조한 산수시를 지은 거예요.

 

그런데 또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어요. "한시에서 상투적인 표현은 흔한 것 아니냐? 상투적인 표현을 써서 무미건조한 시가 됐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이 역시, 앞서와 마찬가지로, 꼭 그렇진 않다고 말할 수 있어요. 문제는 상투적 표현을 너무 손쉽게 사용한다는데 있어요. 고심 끝에 어쩔 수 없어 상투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 하고 손쉽게 상투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죠. 전자는 독자에게 감흥을 줄 수 있지만, 후자는 식상함만 안겨주죠. 안축의 산수시는 후자라고 볼 수 있어요. 하여 감흥을 주지 못하는 거예요.

 

문학 작품의 감상은 아무리 객관적 기준을 제시한다 해도 상대를 설득하는데는 한계가 있어요. 안축의 산수시를 나름대로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비판해 봤지만 사실 그 근거 자체도 어찌보면 주관적인 근거라 설득력에는 한계가 있어요. 안축의 산수시를 좋게 보는 이들도 분명 많을 거예요. 그래서 널리 회자됐고 저렇게 시비(詩碑)까지 세운 거겠지요(사진은 인터넷에서 얻었어요. 경포호 주변 한시 공원에 이 시비가 있다고 해요). 혹 안축의 작품에 호감을 가진 분들은 저의 마뜩잖은 평가에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 '이렇게 이 시를 볼 수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작품에 나온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晴은 본래 夝으로 표기했어요. 夝은 夕(저녁 석)과 生(星의 약자, 별 성)의 합자예요. 비가 개어 밤 하늘에 별이 보인다는 의미예요. 갤 청. 晴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晴明(청명), 晴天霹靂(청천벽력, 급격한 변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泛은 氵(물 수)와 乏(살가림 핍)의 합자예요. 뜨다라는 의미예요.  氵로 의미를 나타냈어요. 乏은 음(핍→범)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물에 뜰 때는 화살에 맞는 것을 가리는 나무판(乏)같은 것에 의지해 뜬다는 의미로요. 뜰 범. 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泛舟(범주)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넓다라는 의미로도 사용해요. 泛稱(범칭, 넓은 범위로 쓰는 명칭).

 

扁은 戶(지게문 호, 한짝 문)와 冊(책 책)의 합자예요. 문 위나 옆에 붙인 현판(冊)이란 의미예요. 현판 편. 본뜻에서 연역하여 작다라는 의미로도 사용해요. 작을 편. 扁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扁額(편액), 扁舟(편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塵은 본래 鹿(사슴 록)과 土(흙 토)의 합자예요. 사슴들이 뛰어가면서 일으킨 흙먼지라는 의미예요. 티끌 진. 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塵埃(진애), 粉塵(분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驢는 馬(말 마)와 盧(밥그릇 노)의 합자예요. 나귀라는 의미예요. 馬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盧는 음(노→려)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색깔이 거무스름하며 조악한 밥그릇(盧)처럼 말[馬] 비슷하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나귀란 의미로요. 나귀 려. 驢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驢輦(여련, 나귀가 끄는 수레), 驢鳴犬吠(여명견폐, 나귀가 울고 개가 짖다. 졸렬한 문장이란 의미)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緩은 糸(실 사)와 爰(이에 원)의 합자예요. 느슨하다, 느리다란 의미예요. 糸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爰은 음(원→완)을 담당해요. 느슨할(느릴) 완. 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緩急(완급), 弛緩(이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疾은 疒(병 력)과 矢(화살 시)의 합자예요. 화살처럼 빠르게 퍼지는 질환이란 의미예요. 병 질. 빠를 질. 疾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疾病(질병), 疾走(질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안축하면 떠오르는 건 경기체가인 '죽계별곡'과 '관동별곡'이에요. 경기체가는 무미건조한 시가예요. 여러 대상을 나열하고 끝에 가서 '이 모습 어떠합니까?'라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이 경기체가거든요. 국문학사에서는 여말 신흥 사대부의 정서 - 심(心)보다 물(物)을 중시하는 - 를 반영하는 시가라고 평가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이는 시가라기 보다는 무미건조한 승경의 나열에 불과한 짧은 산문에 가까워요. 이런 경기체가를 지은 안축이다보니 산수시도 위와 같은 무미건조한 작품을 지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물론 이 결론은 무리가 있어요. 그의 작품 전모를 읽어보고 내린 결론이 아니고 침소봉대하여 내린 결론이니까요. 후일 그의 작품 전모를 읽을 기회가 생겨 이런 생각이 맞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가늠해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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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9-08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시는 좋은 반례로서 인용되었네요.
그냥 읽고 넘어가기 아까운 글들을 매번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맘 먹고 한편 한편 공부해볼까 결심을 부르는 내용들이어요.

찔레꽃 2018-09-08 20: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

무심이병욱 2018-09-15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을 다해 쓴 설명에 감복합니다. 한시도 감동을 주곤 하는데 찔레꽃 님이 분석했듯이 안축의 한시는 감동 주지 못하네요. 사실 한시의 도구인 한자가 뜻글자로서 ‘시어‘로서는 아주 좋지요. 한시에 쓰인 한자들이 시각적 이미지라든가 청각적 이미지를 일으키는 역할로는 그만한 게 없지요. 나아가서는 공감적 이미지까지 일으키는데 무심은 경탄을 금하기 어려웠던 기억입니다. 물론 교직에 있었을 때 국어 시간에, 이백이나 두보의 작품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다가 겪었던 일입니다.

알라딘 창작 블로그 시절, 찔레꽃 님과 무심의 글이 수시로 함께 게재되곤 했는데 -----추억이 되었나 봅니다.


찔레꽃 2018-09-16 19:38   좋아요 0 | URL
˝정성을 다해 쓴 설명에 감복합니다.˝ 무심 선생님의 말씀에 저 또한 감복합니다. 무심 선생님은 글 배면을 꿰뚫어 보는 맑고 밝은 눈을 가지신 듯 합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건강이 안좋으셔서 병원에 가셨던 듯 싶은데....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요즘 일교차가 커서 감기 걸리기 쉬운듯 합니다. 유의하셔요~

선생님의 글을 늘 읽고 있습니다만 섣불리 댓글 달기가 어려워 - 어설픈 댓글로 결례만 범할 것 같아 - 그저 보고만 나오고 있습니다. ^ ^

무심이병욱 2018-09-1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염려 덕에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어떤 댓글도 저는 반갑습니다. 제 글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찔레꽃 님처럼 글에 정성을 다하는 분의 댓글이야 더 말 할 게 있습니까!

저는 요즈음 내년초에 발간 예정인 ‘작품집 2편‘ 준비로 소설 쓰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기분 전환 겸 밭에 가서 농사도 짓습니다.
찔레꽃 님의 변함없는 건필을 기원합니다.
 

 

<인용 출처: http://100.daum.net/multimedia/entry/14XXE0072943>

 

 

"..."

 

점심 때. 식탁에 늦게 갔더니 아이들이 먼저 밥을 먹고 있었어요. 제자리엔 딸이 앉아 먹고 있었는데, 제게 자리를 비켜주거나 식사하시란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밥만 먹고 있었어요. 아들 아이 역시 자기 자리에 앉아 밥만 먹을 뿐, 식사를 하시라거나 늦으셨다란 말 한마디 하지 않았어요.

 

평소 같으면 "어유, 늦었네. 밥 줘~"라며 약간의 너스레를 피웠을텐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기분이 좀 우울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아들 옆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어요. 그런데 속으로 몹시 서운한 생각이 들었어요. '애비 자리를 양보하지도 않고 식사하시라는 말도 하지 않다니, 이건 아닌데….'

 

아버지의 권위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요. 그러면 거기에 걸맞게 변화해야 하는데, 무의식중에 아버지의 권위를 부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런 충동이 일어나면 괴로운 것은 나 뿐이고, 개선될 여지는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지요. 우리 세대가 자라면서 보고 배운 귄위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그분을 대했던 행동과 습관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일 거예요.

 

사진은 정조의 '시국제입장제생(示菊製入場諸生, 중양절에 열린 과거에 참여했던 수험생들에게)'이란 글이에요. 9월9일 중양절에 성균관에서 정조 자신이 글제를 내려 시험을 치뤘는데 수험생의 성적이 좋지 않아 훈계하는 내용이에요. 읽어 볼까요? 내용이 길으니 단락별로 나눠서 읽어보도록 하죠.

 

① 이등상사생야 독서다문 기비년천사학생 이고왕금래 타백어어제지거 이등증혹문지호 황소게자 비난지자 다사지노망 즉여지치 차소이환급초기 별유이등야(爾等上舍生也 讀書多聞 豈比年淺四學生 而古往今來 拖白於御題之擧 爾等曾或聞之乎 況所揭者 非難知者 多士之魯莾 卽予之耻 此所以還給草記 別諭爾等也)

 

② 상문촉사기야 언인군경수사기 이례솔신공 즉수정공불언 묘당지정 자무불수 어시호기덕지감교지행 이저응어외자 홍곡장장 이민이영가탄미지 유왈 포촉불언 묘당기수 홍곡장장 유민가지 차관자지언야(嘗聞蜀祠器也 言人君敬守祠器 以禮率臣工 則雖靜拱不言 廟堂之政 自無不修 於是乎其德之感敎之行 而著應於外者 鴻鵠鏘鏘 而民以詠歌嘆美之 有曰 抱蜀不言 廟堂旣修 鴻鵠鏘鏘 維民歌之 此管子之言也)

 

③ 여매삼복시언 적인국제 청안기상 신필서하 조지이등여피고루 즉이지불난해지구어 하근이불게시호 과신이등 인위필효 치차불긴수응어작일노심지여 심가탄야(予每三復是言 適因菊製 聽鴈起想 信筆書下 蚤知爾等如彼固陋 則易知不難解之句語 何靳而不揭示乎 過信爾等 認謂必曉 致此不緊酬應於昨日勞心之餘 甚可嘆也)

 

④ 율부제진 우치야심 이과부근체응시 위엄하뢰 행차구차지거 이사체극불성설 한삼일 수기제하제진 소속금일지죄 소설금일지치(律賦製進 尤致夜深 以科賦近體應試 爲掩瑕纇 行此苟且之擧 而事體極不成說 限三日 隨其題下製進 少贖今日之罪 少雪今日之耻)

 

뜻을 알아 볼까요?

 

① 그대들은 상사(생원 진사) 출신의 유생으로 독서를 많이 했으리니 어찌 햇수가 적은 사학 유생들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혹 들어들 보았는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어제(御題, 임금이 내린 글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백지 답안을 냈다는 말을. 게다가 내준 글제가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대들의 노둔함과 몽매함은 곧 나의 수치로다! 이에 대략 나의 생각을 써서 그대들에게 내리노라.

 

② 듣건대, 촉은 제기라 하였다. (글제에 나온 '포촉불언 홍곡장장(抱蜀不言 鴻鵠鏘鏘)'은) 임금이 제기를 공경스레 지키며 예로써 신하들을 통솔하면 비록 임금이 조용히 팔짱을 끼고 앉아 아무 말 하지 않더라도 조정의 정사가 잘 닦여질 것이며 그러면 그 덕교(德敎)의 감화가 밖으로 크게 드러나 큰 기러기가 높이 날며 큰 소리를 내는 것과 같아 백성들이 이를 찬미할 것이다, 란 말이다. "제기를 안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정사가 닦여지니 큰 기러기 높이 날며 큰 소리 내는 것과 같아 백성이 그 덕을 노래하네"란 말이 있지 않더냐. 이 말은 관자의 말이다.

 

③ 내 매번 이 말을 여러 번 되풀이 음미하다 마침 국제(菊題, 중양절에 치르는 시험)를 맞이해 기러기 울음소리를 듣고 생각이 나 붓 가는대로 써서 내린 것인데, 내 일찍 그대들이 그토록 고루한 줄 알았다면 좀 더 쉬운 글제를 내렸을 것이다. 그대들이 이 글제를 쉬 이해하여 어제 시험볼 때와 같은 노심초사를 겪지 않을 것이라 과신했던 것이 심히 통탄스럽도다.

 

④ 율부(律賦, 장편 산문시)로 지어내라 하면 밤이 더욱 깊어지겠기에 과부(科賦, 과거 시험용 운문)인 근체시로 응시하게 했던 것인데 또 그대들의 하자를 덮어주기 위해 이런 구차한 가르침까지 내리게 됐으니 일이 참으로 말이 아니로다. 내 삼일의 기한을 줄 터이니 글제에 따라 답안을 제출하여 오늘의 죄와 수치를 조금이라도 용서받고 씻을 수 있도록 하라!

 

* 번역은 이완우 씨의 '정조어필과 군신정의' 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 부분을 참고 했어요.

 

정조의 장황한 훈계를 짧게 요약하면 이런 말일 거예요. "실망이야~ 다시 해!" 정조의 훈계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전형을 보여줘요. 이 말은 본시 군과 사와 부를 동일한 존중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정조에겐 약간 다른 의미로 적용해야 할 거예요. 임금은 백성의 스승이자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요. 이런 점에서 정조의 훈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그대들의 노둔함과 몽매함은 곧 나의 수치로다!"란 대목이에요. 수험생(자식)의 부족함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전형적인 선생(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는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있던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될 거예요. 자식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 정조의 훈계를 권위와 책임중 권위의 측면으로만 보는 건 단견일 거예요.

 

앞서 아버지의 권위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에 대한 푸념 비슷한 것을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푸념할 것이 아니라 되려 고마워해야 할 것이 아닌지 모르겠어요. 무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더 이상 자식이나 학생의 잘못을 자신과 동일시할 필요 없고, 그들의 잘못은 그들의 잘못 그 자체로 인식하는 분리 의식을 가져도 무방할 거예요.

 

그렇다면 아버지의 권위가 없는 시대, 아버지의 권위는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겠죠! 다만 무한 책임을 벗어나는 것 뿐이지, 기르고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 있는데 어찌 권위가 필요 없겠어요. 그렇다면 귄위없는 시대의 권위는 어떻게 세워야 할까요? 그건 바로 정기(正己, 자신을 바로함)가 아닌가 싶어요. 자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모본을 보일 뿐 책망이나 훈계는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귄위없는 시대의 권위 세우기가 아닐런지요?

 

낯선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爾는 본래 화려한 창틀의 모양을 그린 거예요. 冂은 틀을, 乂은 창살을 그린 거예요.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후에 2인칭 대명사로 사용하게 됐는데, 동음을 빌미로 뜻을 가탁한 거예요. 너 이. 爾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爾等(이등, 너희들), 吾與爾(오여이, 나와 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拖는 拕의 속자예요 拕는 扌(손 수)와 它(다를 타)의 합자예요. 끌다란 의미예요.  扌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它는 음을 담당해요. 끌 타. 拖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拖白(타백, 과거 볼 때 답안지를 백지로 내는 일을 이르던 말), 拖帶(타대, 옛 벼슬아치가 웃옷에 띠던, 끌리도록 넉넉하게 만든 큰 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魯는 白(말할 백)과 魚(물고기 어)의 합자예요. 어리석다란 의미예요. 어리석은 이는 그의 말과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白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魚는 음(어→노)을 담당해요. 노둔할 노. 魯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魯鈍(노둔), 魯質(노질, 둔한 자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魯는 나라이름으로도 많이 사용하죠. 나라이름 노.

 

莾은 莽의 속자예요. 莽은 犬(개 견)과 艹(풀 초)의 합자예요. 개가 풀숲 사이로 토끼를 쫓는다란 의미예요. 후일 우거진 풀숲이란 의미로만 쓰이게 되었어요. 우거질 망. 莽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草莽之臣(초망지신,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지내는 사람)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우거지다란 의미에서 연역되어 거칠다란 의미로도 사용해요. 정조의 훈계에서는 이 의미로 사용되었죠. 魯莽(노망, 둔하고 거침).

 

諭는 言(말씀 언)과 兪(마상이 유)의 합자예요. 깨우쳐준다는 의미예요. 言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兪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마상이(통나무 배)가 사람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네주듯, 모르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 이동시켜주는 것이 깨우쳐주는 것이란 의미로요. 깨우칠 유. 諭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諭示(유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또는 관에서 백성에게 타일러 가르침), 曉諭(효유, 가르쳐 깨우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祠는 示(神의 약자, 귀신 신)과 司(詞, 말씀 사)의 합자예요. 봄철 신에게 드리는 제사란 의미예요. 示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司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봄철 제사엔 제물은 많이 차리지 않고 기원의 말만 많이 한다는 의미로요. 제사 사. 제사를 드리는 사당이란 의미로도 사용해요. 사당 사. 祠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祠堂(사당), 祠器(사기, 제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鏘은 金(쇠 금)과 將(장수 장)의 합자예요. 쇠나 옥에서 나는 소리란 의미예요. 金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將은 음을 담당해요. 금옥소리 장. 鏘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鏘(장장, 옥 또는 방울이 울리는 소리), 鏗鏘(갱장, 금옥의 소리. 악기의 소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靳은 革(가죽 혁)과 斤(도끼 근)의 합자예요. 말 가슴에 걸어 안장에 대는 가죽끈이란 의미예요. 革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斤은 음을 담당해요. 가슴걸이 근. 靳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靳靷(근인, 가슴걸이), 笞靳(태근, 매질하여 욕보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아끼다란 의미로도 사용해요. 위 글에서는 이 의미로 사용됐죠. 아낄 근. 靳固(근고, 아껴 숨김).

 

酬는 酉(酒의 약자, 술 주)와 州(고을 주)의 합자예요. 두 번째 술 마시기를 권하다란 의미예요. 酉로 뜻을 표현했어요. 州는 음을 담당해요(주→수). 잔돌릴 수. 원의미에서 뜻을 연역하여 갚는다란 의미로도 사용해요. 갚을 수. 酬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酬唱(수창, 시문을 주고 받음), 酬應(수응, 응대. 술잔을 도로 내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瑕는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叚(빌 가)의 합자예요. 구슬에 생긴 흠결이란 의미예요. 王으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叚는 음(가→하)을 담당해요. 티 하. 瑕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瑕疵(하자), 瑕累(하루, 결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纇는 실이 두두룩하게 뭉친 부분이란 의미예요. 糸(실사)로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는 음(뢰)을 담당해요. 마디 뢰. 본의미에서 뜻을 연역하여 흠, 잘못이란 의미로도 사용해요. 마디 뢰. 흠(잘못) 뢰. 纇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纇(하뢰, 흠. 잘못), 結纇(결뢰, 뭉침. 갈등)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贖은 貝(조개 패)와 賣(팔 매)의 합자예요. 물물 교환을 한다는 의미예요. 貝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賣는 음을 담당해요(매→속). 바꿀 속. 본의미에서 뜻을 연역하여 속바치다(금품을 내고 죄를 면함)란 의미로도 사용해요. 지금은 대부분 이 의미로 사용하죠.  속바칠 속. 贖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贖免(속면, 금품을 바치고 죄를 면함), 贖罪(속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그날 점심 때 아이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먹은 것은 권위없는 시대 권위를 지키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었어요. 역시 이렇게 말하며 서운해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아유, 아빠가 늦었네(아이들을 향해).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아내를 향해)!"

 

왠지 정조 임금도 지금 되살아 나신다면,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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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영화 '최종병기 활'>

 

 

"사(射, 활쏘기)란 역(繹, 찾음. 끌어냄)이란 의미이다. 혹은 사(舍, 머묾)라고도 할 수 있다. 역이란 각기 자신의 뜻을 찾는다는 의미이다. 마음이 화평하고 몸이 반듯해야 활과 화살을 잡음이 심고(審固, 격식에 맞고 견고함)할 수 있다. 활과 화살을 잡음이 심고하면 쏘아 맞출 수 있다. 아비된 자는 아비됨의 도리를 자신의 과녁으로 삼고, 자식된 자는 자식됨의 도리를 자신의 과녁으로 삼고, 임금된 자는 임금됨의 도리를 자신의 과녁으로 삼고, 신하된 자는 신하됨의 도리를 자신의 과녁으로 삼는다. 활을 쏜다는 것은 각각 자신의 과녁을 쏘는 것이다." (『예기』, 「사의」)

 

과거 활쏘기는 단순한 활쏘기가 아니라 인격수양의 일환이었어요. 인용문은 이런 활쏘기의 면모를 잘 말해주고 있지요. 활쏘기에 관한 내용이건만 활쏘는 기술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심신의 올바른 가짐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인용문이 사례(射禮, 활 쏘는 예절)에 관한 것이기에 그런 기술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라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전쟁 도구 중에서 유독 활의 사용에 대해 인격수양을 강조한 것을 보면 활쏘기는 전쟁 도구로의 사용 이전에 인격수양의 일환으로 우선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공자 교단의 커리큘럼(예악사어서수)중에 활쏘기가 있었던 것 또한 활쏘기가 인격수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볼 수 있지요.

 

사진은 '전추태산 발여호미(前推泰山 發如虎尾)'라고 읽어요. '앞은 태산을 밀듯이, 쏘는 뒤는 호랑이 꼬리를 잡은 듯이'라고 풀이해요. 척계광의 『기효신서』에 나오는 '전추태산 발여후악호미(前推泰山 發如後握虎尾)'를 압축해 표현한 것으로, 활과 시위를 강한 힘과 절실함으로 밀고 당겨야 한다는 의미예요.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주인공 박해일이 갖고 있는 활에 씌여진 글귀예요.

 

글 내용은 얼핏보면 활쏘기 기술만 표현한 것으로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심신의 올바른 가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어요. 심신의 올바른 가짐없이는 결코 태산을 밀듯 호랑이 꼬리를 잡은 듯 활과 시위를 밀고 당길 수 없지요. 만일 심신의 올바른 가짐없이 활과 시위를 밀고 당긴다면 밀고 당기기도 어려울 뿐더러 명중시키기도 어려울 거예요. 이 구절은 비록 적을 살상하기 위해선 활을 어떻게 쏘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한 것이지만 그 경우에도 우선해야 하는 것은 심신의 올바른 가짐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推는 扌(手의 변형, 손 수)와 隹(새 추)의 합자예요. 밀어서 열다란 뜻이에요. 扌로 뜻을 표현했어요. 隹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새가 바깥을 향해 날아가듯 외부로 밀어 열어젖힌다는 의미로요. 밀 추. '밀 퇴'로도 읽어요(퇴는 원음, 추는 속음). 推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推理(추리), 推敲(퇴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發은 弓(활 궁)과 癹(짓밟을 발)의 합자예요. 풀을 밟아 길을 평탄하게 하듯 활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쏜다는 의미예요. 쏠 발. 發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發射(발사), 發動(발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尾는 尸(皮의 생략형, 가죽 피)와 毛(털 모)의 합자예요. 꼬리라는 뜻이에요. 尾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後尾(후미), 尾行(미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최종병기 활' 마지막 장면에서 박해일은 누이동생 자인을 볼모로 앞세운 상대 쥬신타를 향해 활을 쏘며 이런 말을 하죠.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화살은 볼모로 앞세운 누이동생을 비껴 쥬시타의 목을 꿰뚫죠. 박해일의 대사도 활쏘기는 물리적 기술 이전에 심신의 올바름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전통적 활쏘기론을 반영한 대사라고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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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8-19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하게 여름 잘 보내고 계신가요?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어디서 봤는데 활은 쏘는 것이 아니라 놓는 거라더군요. 활시위를 놓다 . 놔주다 .. 뭔가 와닿던데 ... ㅎㅎㅎ

찔레꽃 2018-08-19 10:27   좋아요 1 | URL
오랜만입니다. ^ ^ ‘쏘‘다와 ‘놓‘다, 글자 한 자 차이인데 의미 차이는 상당하군요. 이 역시 마음 자세와 관련한 언급이 아닐런지.... 그장소 님, 글쓰기 여전하시죠? 저는 요즈음 활력을 잃어 힘들답니다 ㅠㅠ

[그장소] 2018-08-26 16:34   좋아요 0 | URL
아... 찔레꽃님 ! 저 역시 활력이 이전 같지 못한걸요 . 여전하다 말씀드리고 싶은데 보시다시피 ... 살기가 만만찮아요 . ㅎㅎㅎ 마음 자세를 아직도 이 나이에 날마다 새로 배워요 . 사는 게 그렇죠 ㅎㅎㅎ
 

 

 

"일은 옛 사람의 절반만 해도 그 공효(功效)는 옛 사람이 거둔 성과의 배가 될 것이다."

 

 

맹자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당대의 강국 제나라를 생각할 때 마다 아쉬움이 많았어요. 어느 날 제나라 출신의 제자 공손추에게 이런 말을 해요. "제나라를 가지고 천하의 왕자(王者) 되기는 손바닥을 뒤집기 보다 쉽다." 공손추가 의아해 질문하죠. "문왕같이 위대한 분도 생전에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들인 무왕과 주공대에 이르러 자신의 뜻을 이뤘는데, 그만 훨씬 못한 제나라 왕이 천하의 왕자 되기가 손바닥 뒤집기 보다 쉽다니요?" 맹자가 말하죠. "문왕 당대에 그가 소유한 땅은 사방 백리가 못됐고, 당시 은의 주왕이 비록 폭군이었다 하나 천하의 인심 또한 그에게서 완전히 떠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제나라의 상황은 어떠하냐. 땅은 사방 천리가 되고, 각국의 백성은 전란에 시달려 선한 정치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이 때 제나라 왕이 왕도정치를 편다면 그 누가 제나라 왕을 상대할 수 있겠느냐." 이 말 끝에 첫 머리 인용구의 말을 덧붙여요.

 

 

맹자의 말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일방 갸우뚱해져요. 논리적으론 맞는 말이지만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이런 경우와 같다고나 할까요? "지금처럼 효도하기 쉬운 때가 어디 있는가. 일은 옛 사람의 절반만 해도 그가 얻을 칭송과 보람은 옛 사람의 배가 될 것이다."

 

 

사진은 '명품철정(名品鐵鼎)'이라고 읽어요. '명품 쇠솥'이란 뜻이에요. 전기 밥솥 광고문인데, 예전 가마솥 밥맛을 낸다는 의미로 붙인 것 같아요. 예전 가마솥 밥을 해본 적도 먹어본 적도 있는 제게 아담한 전기 밥솥은 정말, 맹자의 말대로, 일은 절반밖에 안하면서도 그 효과는 배가 되는 신기한 물건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전기 밥솥이 있어도 밥을 제대로 안 해먹는다는 것이죠. 논리적으로만 보면 분명히 옛날보다 훨씬 더 잘 해먹어야 하는데 말이죠.

 

 

전기 밥솥 광고문에서 맹자의 이상적이고 보수적인 일면을 읽어 봤어요. 너무 견강부회한 걸까요?

 

 

사진의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鐵은 쇠란 뜻이에요. 金(쇠 금)으로 뜻을 표현했고, 나머지는 음을 담당해요. 쇠 철. 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鐵橋(철교), 鐵鋼(철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鼎은 솥을 그린 거예요. 가운데 目은 솥 본체를, 나머지는 쪼갠 나무[장작]를 그린 거예요. 나무로 불을 때서 음식을 조리하는 기구란 뜻을 표현했어요. 다르게 설명하기도 해요. 가운데 目은 솥 본체를, 나머지 부분은 양 손잡이와 다리를 그린 것이라고요. 솥 정. 鼎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鼎立(정립, 3자 대결 구도의 모습), 鼎俎(정조, 솥에서 삶기고 도마 위에서 잘린다는 뜻으로, 대단히 위험한 지경에 다다른 경우를 비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鼎은 음식을 해먹는 도구의 의미보다 권위의 상징으로 많이 사용됐어요. 하나라 우왕이 구주(九州)에서 조공받은 쇠로 만들었다는 구정(九, 아홉개의 정)이 그 대표적인 예이죠. 전기 밥솥 광고문에서 '정'을 사용한 것은 적절치 않아 보여요. '부(釜, 가마솥 부)'를 사용하는게 어떨지…. 파부침선(破釜沈船)이란 말이 있어요. 밥 해먹는 솥을 깨트리고 타고 온 배를 침수시키다란 뜻인데, 여기서 밥 해먹는 솥의 의미인 '부'가 전기 밥솥의 '밥솥'과 어울리는 단어일 듯 싶어요. 파부침선은 항우가 진나라와의 거록 전투를 앞두고 벌인 행동으로,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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