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에 등장하는 '초의에게 주는 글' 역시 가는 획에 힘이 없고 미풍에도 흩날릴 것 같다. 단박에 위작이다. 편지는 해서나 행서로 쓰지, 예서로 쓰는 법이 없다. 옛 서체라도 율동감이 있어야 하는데 획들이 너무 가늘고 뻣뻣하다. 이를  두고 유교수는 "글자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어지러운 듯하나 묘하게도 변함의 울림이 일어나 오히려 멋스럽다"고 썼다. 이런 억지 주장은 도처에 있다." (강우방, 「주간 동아」  1151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가 최근 『추사 김정희』를 펴냈어요. 그런데 이 속에 소개된 작품의 절반 이상이 위작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하는 글이 나왔어요. 인용문은 이 글 일부인데, 글쓴이는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 연구원장이에요. 유교수와 강원장 모두 고미술에 대한 안목이 뛰어난 분들로 평가받아요. 그런데 추사의 작품을 놓고 진위(眞僞)와 고하(高下)를 달리하니, 문외한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할지 난감해요. 예술적 안목이란 것이 다분히 주관성이 강하다는 것을 십분 이해한다해도 말이죠.

 

사진은 북송의 서예가이자 서화감식가인 미불(米芾, 1051-1107)의 작품이에요. 초서를 품평한 글로 흔히 「논초서첩(論草書帖)」이라 불려요. 읽고 해석해 볼까요?

 

 

草書若不入晉人格 輒徒成下品 張顛俗子 變亂古法 驚諸凡夫 自有識者 懷素少加平淡 稍到天成 而時代壓之 不能高古 高閑而下 但可懸之酒肆 光尤可憎惡也

 

초서약불입진인격 첩도성하품 장전속자 변란고법 결제범부 자유식자 회소소가평담 초도천성 이시대압지 불능고고 고한이하 단가현지주사 변광우가증오야

 

초서가 진인(晉人)의 경지에 들어서지 못하면 하품이 되고 만다. 장전은 속물이다. 옛 법도를 파괴하여 평범한 감식가들을 놀래켰을 뿐이다. 회소의 작품은 어느정도 평담함이 더해져 천성(天成)의 경지에 이를 가능성이 많았지만 시대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끝내 고아한 옛 법도에 이르지 못했다. 고한이하의 작품들은 술집 간판에나 어울릴만한 것들이며, 중에서도 변광의 작품은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미불은 당나라 시대 광초(狂草)를 쓴 작가들의 작품을 혹평하고 있어요. 초성(草聖)으로까지 불린 장욱을 속물이라고 평하는가 하면 고한 등의 작품은 술집 간판 정도의 품격밖에 안되며 변광의 작품은 혐오스럽다고까지 말하고 있어요.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한 회소의 작품조차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했어요. 미불이 저명한 서화감식가였던 점을 생각하면 그의 품평에 섣불리 딴지를 걸기 어려워요.

 

그런데 미불 못지않은 서예가이자 서화감식가였던 동시대 인물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장욱과 회소에 대해 이렇게 평했어요: "이 두 사람은 한 시대 초서의 으뜸이다(此二人者 一代草書之冠冕也)" 장욱과 회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면 고한이하의 인물이나 변광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을거라 짐작할 수 있어요. 앞서 유교수와 강원장의 극단적 평가 때문에 난감했던 것처럼 미불과 황정견의 극단적 평가에서도 어느 견해를 따라야 할 지 난감해요.

 

예술적 안목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선천적 재능과 후천적 노력이 결합되어 성숙하죠. 그러나 그 성숙된 정도가 어느 경지인지는 고수들만 알뿐 문외한은 가늠하기 어려워요. 문외한은 그저 경외 반 질투 반의 심정으로 그들간의 논쟁을 지켜볼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게 '싸움'하고 '불구경'이라고 했던가요? 고수들의 안목 싸움도 예외는 아니겠죠? 미불과 황정견의 품평 논쟁은 두 분 다 고인(故人)이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지만 유교수와 강원장의 엇갈린 안목 싸움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자못 궁금해요. 필시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될 거예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顛은 頁(머리 혈)과 真(참 진, 眞과 동일)의 합자예요. 머리란 뜻이에요. 頁로 뜻을 나타냈어요. 真은 음(진→전)을 담당해요. 미치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사진의 내용에서 顛은 미치다란 뜻으로 사용됐어요. 장욱과 회소는 글씨를 쓸 때 술에 취하여 미친듯이 썼다 하여 장전광소(張顛狂素, 미치광이 장욱과 회소)란 별칭으로 불렸어요. 머리 전. 미칠 전. 顚으로 표기하기도 해요. 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顛倒(전도), 顛末(전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變은 강제로 바꾼다란 뜻이에요. 攵(칠 복)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나머지는 음(란→변)을 담당해요. 고칠 변. 변할 변. 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變法(변법), 變化(변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亂은 양 손으로 얽힌 실타래를 푸는 모습을 그린 거예요. 얼힌 실타래에 중점을 두어 '어지럽다'란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푸는 모습에 중점을 두어 '다스리다'란 뜻으로 사용하기도 해요. 어지러울 란. 다스릴 란. 亂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混亂(혼란), 亂民(난민, 국법을 어지럽히는 백성 혹은 백성을 다스리다란 뜻)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驚은 馬(말 마)와 敬(공경 경)의 합자예요. 말이 의심스런 상황에 놀라다란 뜻이에요. 놀랄 경. 馬로 뜻을 표현했고 敬으로 음을 표현했어요. 驚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驚氣(경기), 驚愕(경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稍는 禾(벼 화)와 肖(닮을 초)의 합자예요. 볏줄기의 끝 부분이란 뜻이에요. 禾로 뜻을 나타냈어요. 肖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볏줄기 본체와 닮은 것이 볏줄기 끝이란 의미로요. 끝 초. '점점'이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본체에서 점점 멀어진 것이 끝 부분이란 의미로 사용한 것이죠. 점점 초. 稍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稍稍(초초, 점점. 차차로), 稍事(초사, 작은 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壓은 土(흙 토)와 厭(싫어할 염)의 합자예요. 누르다란 뜻이에요. 土로 뜻을 표현했어요. 厭은 음(염→압)을 담당해요. 누를 압. 壓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壓迫(압박), 壓力(압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懸은 心(마음 심)과 縣(고을 현)의 합자예요. 윗 사람에게 매여있다란 뜻이에요. 心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縣은 음을 담당해요. 매달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매달 현. 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懸河之辯(현하지변, 거침없이 잘하는 말), 懸板(현판)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肆는 镸(長의 고자, 길 장)과 聿(逮의 약자, 미칠 체)의 합자예요. 늘어놓다란 뜻이에요. 镸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聿는 음(체→사)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한 쪽에서 다른 쪽에 이르로록 배열한 것이 늘어놓은 것이란 의미로요. 늘어놓을 사. 가게라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가게 사. 肆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放肆(방사, 제멋대로 행동하며 거리끼고 어려워하는 데가 없음), 藥肆(약사, 약가게)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광초는 서예술이 정점에 이른 글씨라 할 수 있어요. 글씨쓰는 이의 취향이 최대한 반영되어 글씨인지 그림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하면, 글자 본래의 목적인 정보 전달이라는 객관적 실용성은 최소로 떨어뜨리고 작가의 취향 전달이라는 주관적 예술성은 최대로 끌어 올린 것이 광초라고 할 수 있어요. 미불이 장욱 등의 광초를 싫어한 것은 이런 정점에 이른 편향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봐요. 반면, 진대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던 건 객관적 실용성과 주관적 예술성이 최고의 조화를 이루었다고 보았기 때문은 아닐지? 미불이 살던 시대가 송나라 때이고 송나라는 사대부의 나라였으며 사대부는 중용(中庸)의 가치를 중시했기에 그런 평가를 했다고 보는거예요(물론 같은 사대부라도 황정견은 미불과 견해를 달리했지만요). 아래 장욱의 광초 한 점을 소개해요(미불과 장욱의 작품 사진은 인터넷에서 구했고, 작품 원본은 각각 대만의 고궁박물관과 중국의 요녕성박물관에 있다고 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