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영화 '최종병기 활'>

 

 

"사(射, 활쏘기)란 역(繹, 찾음. 끌어냄)이란 의미이다. 혹은 사(舍, 머묾)라고도 할 수 있다. 역이란 각기 자신의 뜻을 찾는다는 의미이다. 마음이 화평하고 몸이 반듯해야 활과 화살을 잡음이 심고(審固, 격식에 맞고 견고함)할 수 있다. 활과 화살을 잡음이 심고하면 쏘아 맞출 수 있다. 아비된 자는 아비됨의 도리를 자신의 과녁으로 삼고, 자식된 자는 자식됨의 도리를 자신의 과녁으로 삼고, 임금된 자는 임금됨의 도리를 자신의 과녁으로 삼고, 신하된 자는 신하됨의 도리를 자신의 과녁으로 삼는다. 활을 쏜다는 것은 각각 자신의 과녁을 쏘는 것이다." (『예기』, 「사의」)

 

과거 활쏘기는 단순한 활쏘기가 아니라 인격수양의 일환이었어요. 인용문은 이런 활쏘기의 면모를 잘 말해주고 있지요. 활쏘기에 관한 내용이건만 활쏘는 기술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심신의 올바른 가짐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인용문이 사례(射禮, 활 쏘는 예절)에 관한 것이기에 그런 기술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라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전쟁 도구 중에서 유독 활의 사용에 대해 인격수양을 강조한 것을 보면 활쏘기는 전쟁 도구로의 사용 이전에 인격수양의 일환으로 우선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공자 교단의 커리큘럼(예악사어서수)중에 활쏘기가 있었던 것 또한 활쏘기가 인격수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볼 수 있지요.

 

사진은 '전추태산 발여호미(前推泰山 發如虎尾)'라고 읽어요. '앞은 태산을 밀듯이, 쏘는 뒤는 호랑이 꼬리를 잡은 듯이'라고 풀이해요. 척계광의 『기효신서』에 나오는 '전추태산 발여후악호미(前推泰山 發如後握虎尾)'를 압축해 표현한 것으로, 활과 시위를 강한 힘과 절실함으로 밀고 당겨야 한다는 의미예요.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주인공 박해일이 갖고 있는 활에 씌여진 글귀예요.

 

글 내용은 얼핏보면 활쏘기 기술만 표현한 것으로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심신의 올바른 가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어요. 심신의 올바른 가짐없이는 결코 태산을 밀듯 호랑이 꼬리를 잡은 듯 활과 시위를 밀고 당길 수 없지요. 만일 심신의 올바른 가짐없이 활과 시위를 밀고 당긴다면 밀고 당기기도 어려울 뿐더러 명중시키기도 어려울 거예요. 이 구절은 비록 적을 살상하기 위해선 활을 어떻게 쏘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한 것이지만 그 경우에도 우선해야 하는 것은 심신의 올바른 가짐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推는 扌(手의 변형, 손 수)와 隹(새 추)의 합자예요. 밀어서 열다란 뜻이에요. 扌로 뜻을 표현했어요. 隹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새가 바깥을 향해 날아가듯 외부로 밀어 열어젖힌다는 의미로요. 밀 추. '밀 퇴'로도 읽어요(퇴는 원음, 추는 속음). 推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推理(추리), 推敲(퇴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發은 弓(활 궁)과 癹(짓밟을 발)의 합자예요. 풀을 밟아 길을 평탄하게 하듯 활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쏜다는 의미예요. 쏠 발. 發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發射(발사), 發動(발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尾는 尸(皮의 생략형, 가죽 피)와 毛(털 모)의 합자예요. 꼬리라는 뜻이에요. 尾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後尾(후미), 尾行(미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최종병기 활' 마지막 장면에서 박해일은 누이동생 자인을 볼모로 앞세운 상대 쥬신타를 향해 활을 쏘며 이런 말을 하죠.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화살은 볼모로 앞세운 누이동생을 비껴 쥬시타의 목을 꿰뚫죠. 박해일의 대사도 활쏘기는 물리적 기술 이전에 심신의 올바름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전통적 활쏘기론을 반영한 대사라고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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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8-19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하게 여름 잘 보내고 계신가요?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어디서 봤는데 활은 쏘는 것이 아니라 놓는 거라더군요. 활시위를 놓다 . 놔주다 .. 뭔가 와닿던데 ... ㅎㅎㅎ

찔레꽃 2018-08-19 10:27   좋아요 1 | URL
오랜만입니다. ^ ^ ‘쏘‘다와 ‘놓‘다, 글자 한 자 차이인데 의미 차이는 상당하군요. 이 역시 마음 자세와 관련한 언급이 아닐런지.... 그장소 님, 글쓰기 여전하시죠? 저는 요즈음 활력을 잃어 힘들답니다 ㅠㅠ

[그장소] 2018-08-26 16:34   좋아요 0 | URL
아... 찔레꽃님 ! 저 역시 활력이 이전 같지 못한걸요 . 여전하다 말씀드리고 싶은데 보시다시피 ... 살기가 만만찮아요 . ㅎㅎㅎ 마음 자세를 아직도 이 나이에 날마다 새로 배워요 . 사는 게 그렇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