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매진. 오늘 영업 끝났습니다."


어제 지인의 초대로 홍성군 홍동면에 갔어요. 한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고 약간의 한담을 나누다 나왔는데 식당 앞 입간판에 저 문구가 써있더군요. "아니 벌써 오늘 영업 끝난 겨! 야, 장사 할 만 하겄다!" 동행한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어요. 토요일인데다 면내엔, 소규모지만, 임시 장터가 열려 사람들이 제법 많았어요. 음식점 주인도 진즉에 이 상황을 알았으렸만 어째서 돈 벌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인지 의아스럽더군요. 그런데 지인에게 물어보니 이런 영업 행태가 어제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배짱좋게(?) 영업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더군요.


그 이유는 바로 사진의 '로컬푸드' 때문이었어요. 홍동면은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푸드의 정착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긴밀하기 때문에 손익 분기점이 거의 일정하다고 해요. 그러니 일부러 무리하여 장사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외부 손님들이 많이 와야 이익을 낼 수 있는 일반 식당과는 운영 틀 자체가 다른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즉 언제나 준비한 식재료는 다 매진된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그런지, 식당 메뉴도 다양하더군요. 청국장, 추어탕, 돈까스, 비빔밥, 한우 곰탕. 장사가 안돼서 이런 저런 메뉴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즐겨 찾는 메뉴이기에 마련한 거였어요. 후식으로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요구르트를 주더군요.


"우리나라 로컬푸드는 중소규모 생산자에게 새로운 판로를 제공하는 '농산물 제값받기'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그러나 생산자 주도 직거래는 상품 구색 갖춤이 부족하여 소매업에서는 대부분 실패하였다. 1980년대 이후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교육하며 조직한 생협이 농산물 직거래를 주도하면서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관계 구축을 전제로 지속적인 거래로 정착하였다. 로컬푸드는 생협의 성과를 바탕으로 대량생산, 대량유통이 주도하는 유통구조를 지역에서 생산과 소비를 완결하며 지역 내 유통 구조를 복원하는 운동으로 실현되고 있다." (정은미 외 2인,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로컬푸드 추진 전략과 정책과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88쪽)


인용문은 우리나라 로컬푸드의 기원과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주로 '경제'적인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런데 홍동면의 로컬푸드는 이런 관점과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아, 사진은 음식점에서 찍은 거예요) 홍동면의 로컬푸드는 '환경과 생태'에 우선 방점을 두고 있거든요. 이는 이 지역의 센터 역할을 하는 풀무고등농업기술학교와 관련성이 깊어 보여요. 이 학교는 환경과 생태를 중시하는 농업 교육을 하고 있고, 이 곳 졸업생들이 이 지역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홍동면의 유명한 오리농법 쌀도 이 학교 출신 주형로 씨가 처음 시작했죠.


많은 이들이 농업의 미래를 암울하게 보는데 이곳 홍동면에서는 미래의 희망으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로컬푸드는 그 희망의 일단인 듯 싶구요.


사진의 한자는 '지산지소(地産地消)'라고 읽어요.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한다'란 뜻이에요. 로컬푸드의 한문식 표기인데 로컬푸드보다 그 의미가 한결 더 분명해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니고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이더군요. 로컬푸드가 활성화 될수록 이 말도 많이 활성화될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은 두 말 다 외래어라는 점이에요. 좋은 우리 말 표현이 만들어져 유행했으면 좋겠어요.


消가 좀 낯설죠? 자세히 살펴 볼까요? 消는 氵(水의 변형, 물 수)와 肖(削의 약자, 깎을 삭)의 합자예요. 물이 다 말라버렸다는 뜻이에요. 氵로 뜻을 표현했어요. 肖은 음(삭→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나무가 깎여 나가듯 물이 점점 줄어 다 말라버렸다는 의미로요. 다할(꺼질) 소. 消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消盡(소진), 消防(소방) 등을 들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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