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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메랄다 산에서 인디고 섬까지 ㅣ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2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공나리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마흔 다섯 번째 서평
에스메랄다 산에서 인디고 섬까지-프랑수아 플라스
환상 속에서 더 빛나는 인간미 2.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의 두 번 째 책이다.
전체적인 분위는 1권에서의 그것과 비슷하다. 모두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실렸고, 특이하게 공간적 배경이 추운 지방을 하고 있는 소설이 등장하고 있다. ‘에스메랄다 산’, ‘얼음 나라’, ‘거인들의 섬’, ‘웅갈릴들의 나라’, ‘인디고 섬’ 이야기까지 비교적 길지 않으면서 에피소드 위주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도 오르배 섬 사람들 시리즈가 지니는 매력은 문장이 지니는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오래전 영화에서 나왔던 어느 인디언의 이름이 생각난다. ‘주먹 쥐고 일어서’, 아니면 ‘헤픈 웃음’ 이었던가. 그런가하면 일전에 인터넷상에서 급작스럽게 유행을 했던 인디언식 이름 짓기에 맞게 찾아냈던 내 이름이 자연스럽게 입술에 걸려든다. 흰말이라는 표현보다 조금은 부드럽게 하얀 말로 바꿔 놓고 보니 이름이 멋있어 보이더란 말이다. ‘하얀 말의 그림자’ 이 얼마나 분위기 있고, 그윽한 센시티브의 바람이 풀풀 날리는 이름일까하는 거다.
책 속에는 묘한 매력으로 시선을 붙잡은 표현들이 보인다. ‘꿈을 여는 풀’ ‘걸어서 하늘까지’ ‘잠의 방’과 같은 어휘적 표현들은 있는 그대로를 풀어서 명명하는 것이기에 글자 그대로만 본다면 색다른 느낌은 없다. 다만 화려하고 눈부신 겉치레에 둘러싸인 그 무엇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듯한 것만큼은 이 모든 순수함을 대표하는 표현들의 숭고하고 독특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객관적으로 기승전결의 탄탄한 스토리가 이어지는 작품은 드물다. 특별하게 주제를 상기하면서 뜯어보기보다는 신비스럽다거나, 익숙하지 않은데서 오는 낯설음이 가져오는 설레임 따위를 생각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좋을 듯한 이야기 같다.
1권과 2권을 동시에 볼 때, 책은 부족과 부족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듯한 감이 있다. 싸움과 투쟁 혹은 조화라는 차원에서 해석 가능한 문제일까. 또 한편으로는 대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그려내는 듯한 작품도 있어 보인다. 무속신앙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이 공존하는 사회의 이야기 구성은 1권과 2권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찌보면 이러한 작품의 배경 안에서 주인공들의 선택 내지는 행동의 결과에 더 중점을 주고 읽게 되는가 싶기도 한데, 1. 2권을 접하고 나서 느끼는 프랑수아 플라스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이 추구하는 성향은 언뜻 보기에 양자간의 특성을 골고루 지니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자연에 순응하는 인간상에 더 가깝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화 같은 이야기에서 풍겨져 나오는 비현실감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에 결국 인간으로서, 인간만이 추구하고자하는,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찾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가 싶다.
개인적으로 ‘H. 웅갈릴들의 나라’ 와 ‘I. 인디고 섬’이 기억에 남는다. 전자는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스토리의 전개이긴 하지만 순간만을 위한 환상보다는 현실적인 리얼리티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엿보이는 듯 해 정감이 간다고 중얼거리는 중이다. 또한 ‘인디고 섬’은 이를테면 열린 결말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전체적인 구성에서 본다면 이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결국 앞으로 계속 이어지게 될 이야기들에 대한 암시를 품고 있다는 면에서 ‘인디고 섬’은 열릴 결말인 동시에 후기작에 대한 예고편이라고 볼 수 있다.
자.. 이제 더 솔직해볼 일이다.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시리즈는 분명하게도 독특한 개성과 특성을 지닌 좋은 책이다. 그렇긴 한데 1.2권을 접한 지금에서 나는 책이 지니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뜯어본다면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주제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소소하게는 인물의 심리변화까지도 놓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쯤되면 딜레마에 빠지는 걸 느낀다.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내가 보고 싶은 것과 느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들이 늘어난다.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더 매달려야 할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가슴이 뛸 만한, 정말이지 먼 우주에서부터 지구로 떨어지는, 이글이글 붉게 타들어가는 운석 하나쯤 맨 가슴으로 받아내고 싶은 정도로 그런 무엇인가를 그런 자극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욕심일까. 이런 허망함이라니... 감각이란 것에 너무 심한 오염의 흔적이 가해진 탓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