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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 호스피스 의사가 먼저 떠난 이들에게 받은 인생 수업
김여환 지음 / 청림출판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서른 번째 서평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김여환
마주 볼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죽음 앞에서 의연해질 수 있을까. 죽음과 관련해서 호스피스와 환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책을 통해서 나는 배운다. 죽음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죽음의 과정은 두렵거나 고통스럽거나 서러운 것이 아닌, 평온하고 따뜻하며 부드러운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그 길은 특정한 이들만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나 역시 걸어가게 될 단 하나의 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의 인식에 남겨져 있는 죽음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회색빛이다. 두려움 그 자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모든 것이 멈춘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호스피스 의사인 김여환의 책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를 읽는 내내 나는 아주 많은 생각 속에서 헤매야 했다. 저자가 아무리 조곤조곤 부드러운 음성으로 죽음이 갖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었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도 역시 마지막 순간이 분명히 올 것이며 그 순간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를 이따금 생각한다.
이 책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났던 많은 인연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저자는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은 누구나 공통적이라는 말을 남긴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고비고비를 넘기고 나면 정말 의연해 질 수 있을까.
김여환의 노력에 의해 호스피스의 정의 내지는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가 있기를 희망한다. 말기 암 환자들이 찾아가게 되는 곳 호스피스는 단순히 죽어가는 이들이 마지막 터를 잡기 위해 찾는 곳이 아니다. 호스피스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육체적 통증과 정신적 상처 속에서도 여전히 존중받아야 하는 이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곳이다. 적어도 내가 김여환의 책을 읽고 내린 호스피스의 정의는 그러하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낌은 온화하고 따뜻한 위로 그 자체로 가득했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음정을 연주하는 피아노처럼 죽음의 의미를 부드럽고 온화하며 평안하다고 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한편으로 깊이 공감하면서 눈물도 흘렸건만 또 한편으로는 무언지 모를 작은 분노가 꿈틀댔다. 왜 모두 좋다고, 좋은 거라고만 하는 걸까. 왜 자꾸 미화시키려고 하는 걸까.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 좋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건 분명한 반감이다. 어쩌자고 나는 이런 반감을 품었을까. 세상 인심이 각박해서 딴은 인식이란 것이 너무 건조해서 나 같은 반감을 들이대는 사람이 많은 까닭에 김여환 그녀가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싶다.
작고 소박한 에피소드 모음과도 같은 이 책이 갖는 힘은 진정성일 것이다.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혹은 죽음 너머의 그 무엇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어느 순간 나타날 죽음의 실체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나눠주는 듯하다. 누구나, 나 또는 우리가 모두 마주하게 되는 그 순간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하나의 작은 이야기가 끝나가는 마무리에 저자의 속 깊은 철학이 담긴 내면의 이야기가 실렸다. 이야기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그녀만의 성찰이 가득 담겼다.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둘려 책을 외면하고 멀리 도망을 다녀야 했다. 어쩌면 스스로 너무 근접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나는 여전히 두렵다. 부드러운 손길로 어김없이 위로하고 달래주는 책을 앞에 두고서도 속 좁은 나는 여전히 어렵다. 무엇이 그렇게도 어려운 걸까. 법구경에 호희품 2장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착하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걱정이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또한 걱정이기에.]
예전부터 이 문구를 좋아했던 나는 회의론자인지도 모른다. 인연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의 종착지가 바로 죽음이다. 사실상 인연을 맺지 않는다하더라도 죽음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렇긴한데 인연이 없다면 더 홀가분하지 않을까, 라는 삐딱하면서도 회의주의적인 내 사고에 저자 김여환은 절대 그렇지 않다, 고 이야기한다. 인연이 만들어주는 사랑과 애정이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거대하고도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어내는지 저자는 그녀 스스로가 봐왔던 많은 순간들을 증거로 확인해주고 있었다.
시종일관 차분한 저자의 책에서 위로와 용기를 서로 나누어 주는 귀한 시간을 많은 이들이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