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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의 문제 ㅣ 진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스물 다섯 번 빼 서평
순서의 문제-도진기
트릭과 스토리?
434페이지 분량의 꽤 두툼하지만 고맙게도 가벼운 무게감으로 손에서 늘 머물던 책이다. 추리소설은 꽤 오랜만인 듯하다. 특별나게 외면하는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닌데 굳이 이유를 들자면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 판이다.
여름인가. 유월 하순이다. 아무래도 여름인가보다. 연일 낮기온이 30도가 넘나든다. 그래서인지 더울 때는 뭔가 원초적으로 자극이 될만한 무언가에 대한 끌림이 작용하는가 싶다.
이쯤되면 소설은 추리소설이 제격이고 공포물도 한 몫 제대로 하는 듯한데, 황송하게도 우연인지 행운인지 할 일 많은 아줌마 역시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을 접했다.
도진기. 저자의 이름이다. 그의 이력에 시선이 꽂힌다. 특이함을 너머 모 개그맨이 주구장창 부르짖던 표현대로 조금 애매하기까지 하다.
오래전 시를 쓰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생의 업으로 하는 어느 누군가를 본적이 있는데 아나운서가 그에게 물었던 질문은 처음부터 다소 호전적? 냄새를 풍겼던 것을 기억한다.
“직업이 시인이세요? 아니면 변호사세요?”
분침이 몇 번의 원을 그리면서 돌아가고 나서 나는 그의 말 한마디에 저이는 멋진 시인이라고 믿게 된 듯하다. 그런데 느긋하면서도 침착하게 응대하던 그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판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매일같이 사건사고를 접하는 게 일상이고 직업인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 속에 별스런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검사는 죄를 묻기 위해 일하고, 변호사는 억울함을 밝혀주기 위해 일한다면, 판사가 지니는 직업에 대한 근원적인 목적과 목표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어쩌면 공정함 내지는 자유와 평등을 수직이 아닌 수평적 위치(제자리)로 늘 옮겨놓기 위한 부단한 작업의 노동자라고 할 수도 있을까.
도진기의 책 <순서의 문제>는 모두 7가지의 짧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주인공은 진구와 해미이며 둘 사이의 관계를 연인 사이인 듯 보인다. 물론 사건에 직접 개입해서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인물은 법대를 중퇴하고 고시원과 밑바닥 생활을 전전긍긍 살아가는 진구라는 인물이다. 그 옆에서 해미는 어찌보면 사건을 진구에게 소개해주는(가져오는) 매니저 같으면서도, 때론 사건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 몇 가지 이미지를 갖는 인물로 보인다.
도진기의 소설을 딱 한권 접했다. 따라서 그의 소설이 갖는 특이성이나 형식면에서 성급하게 일반화를 끌어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순서의 문제>만을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이런 것들이다.
그 첫번째는 형식과 구성면에서 모험보다는 안정성을 택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유명한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홈즈와 그의 절친 왓슨이 등장하는 것처럼, 이번 소설 역시 기존의 추리소설에서 익숙한 패턴으로 등장인물을 배치하고 그들의 성격을 나누어 설정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교대상이 셜록 홈즈 하나뿐이어서 개인적인 주장에 대한 근거가 많이 미흡하기는 하다.
물론 애거서 크리스티에 등장하는 배불뚝이 아저씨 포와로는 혼자서도 충분하게도 의연히 사건을 잘 해결했다는 것도 기억해보자. 그 외 어렸을 때 봐왔던 몇 권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던 해결사들은 한명 내지는 두 세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문제를 해결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다양한 내용과 등장인물 그리고 사건을 소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들의 흐름이 엇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왜일까. 인물 배치와 구성은 다양성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추리소설이 갖는 정해진 틀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편협한 사고일 수도 있다. 이 분야를 더 탐독해야 답이 나오지 않을까.
각설하고 인물구조는 안정성을 확보하고 출발한다는 데까지 일단락을 지어본다. 그런데 추리소설의 특징을 논할 때 어디에 더 점수를 주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를테면 사건과 사건의 트릭, 또는 얽히고설킨 과정에서 독자를 끌어당기는 추리의 묘미? 아니면 으레 소설작품에서 보는 스토리의 자연스러운 연계성과 사건과 주인공들의 절묘한 어우러짐과 같은 점에 더 우위를 두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7편의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 트릭과 스토리라는 전제로 구분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티켓다방의 죽음’과 ‘뮤즈의 계시’라는 작품에 스토리라는 글씨를 적었다. 이야기 전개가 그나마 뚝뚝 끊어지는 감 없이 이어지면서 사건이 시작되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트릭과 추리 그리고 부수적으로 스토리의 맛이 살아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외 굳이 딱딱하게 토를 달아 분리를 하자면 타이틀로 정해진 작품 ‘순서의 문제’와 ‘ 대모산을 너무 멀다’ ‘환기통’은 트릭 면에서 기억에 남고, ‘신(新)노란 방의 비밀’은 범죄 의학과 심리학 측면에서 바라봤던 이야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에 따라서 개인적으로 주인공들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 시작점에 대해 너무 작위적이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이야기가 진구와 해미와의 개입선상에서 시작되고 나아가고 있는데 그 점이 조금 어색해보인다. 해미의 큰 아버지의 직장 이야기, 해미의 먼 친척뻘 아저씨와 그 부인 이야기, 해미가 다니는 보육원 원아의 이야기, 해미의 직장 언니와 동거남의 이야기. 어딘지 모르게 선택의 폭이라고 할까. 극히 제한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진구는 해미가 아니면 풀어야 할 사건도 없을 뻔 했다는 말이 되는 것일까.
소설 속에서 인물은 완벽했을까. 저자는 특별한 일 없이 처음 범죄에 얽히는 계기(순서의 문제)를 삼아 사건을 해결해 간다는 설정으로 진구를 그려가고 있다. 그렇기는 한데 한때 익혔던 문 따는 솜씨?로 실력을 발휘해 무단침입을 하며 사건을 조사하는 행위, 3년간의 법대 생활을 경험했다는 조건하에 저자는 진구라는 인물에게 법이 정하는 정당함의 한계를 넘나드는 많은 혜택을 기꺼이 선사한다. 그의 가족사와 주변환경, 진구라는 인물이 감추고 있는 내면의 세계와는 달리 저자는 진구에게 무한의 언변과, 사건해결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추리력을 심어주고 적극 후원하고 있는 셈이다.
문득 문득 책속에서 나는 진구를 통해 빙의된 작가 도진기의 변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어딘지 한 사람이 처한 주변요소에서 기인하는 진구라는 인물이 갖는 느낌과, 스토리 전개상 주인공의 활약에서 받는 진구의 느낌이 불일치 한다는 생각은 혼자 생각이긴 하다. 욕심 같아서는 진구라는 인물의 기본적인 주변설정을 지금보다는 살짝 더 업그레이드 해주고 싶어진다. 아 그런데.. 욕심이 너무 과한 것일까. 지나친 사심일 수도 있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