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예술을 찾아서
이병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네 번째 서평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예술을 찾아서)-이병훈
삶 속으로 끌어올린 이상(理想)
도스또예프스끼. 불행하게도 나는 그의 책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문고판 서적으로 접한 ‘가난한 사람들’은 대학에 다닐 무렵 흔들리는 버스에서 곧잘 들여다보곤 했지만 끝까지 읽어내지는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 평론가들의 이야기는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적 문체(서간체 소설)가 친근하게 다가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왜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을까. 그것은 어쩌면 작가가 만들어놓은 이를테면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장벽을 내가 넘어가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어찌보면 사변적이고, 어찌보면 기복이 드러나지 않고 평이하다는 느낌. 그것이 거의 이십여년 전 내가 접한 도스또예프스끼의 처녀작에 대한 감흥이다.
유명한 ‘죄와 벌’,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도스또예프스끼는 가까이 하기에는 조금은 먼 작가였던가. 그의 문학적 업적과 작가적 역량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다가서지 못했던 까닭에 대해 어떻게 변명해야할지 고민한다.
이병훈이 펴낸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한권의 책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문학 그리고 당대 정치 사회의 전반적인 것들을 한데 어우르는 포괄적인 시각에서 쓰여진 이를테면 전기적 성향의 평전이라고 볼 수 있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1부 시작과 좌절’, ‘2부 방황과 모색’, ‘3부 절정과 죽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보자. 책 속에는 도스또에프스끼의 출생, 가족과 유년 시절, 사춘기 시절을 보낸 공병학교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성년 이후의 작가적 위치를 구축해가는 과도기적인 인물상의 도스또예프스키가 등장한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삶 속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가까이 접해볼 수 있다. 깊이 침잠해있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시작으로 가족애, 사랑, 연민, 애착과 같은 개인사적인 요소와 함께 문학계를 포함한 정치와 사회적 기반에서 그만의 입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 책을 펴낸 이병훈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다. 이병훈의 시선은 객관적으로 관찰자의 입장에 서 있다. 그는 도스또예프스키의 행적을 쫒아 러시아 곳곳 작가가 남기고 간 숨결을 찾아나서며 오랜 시간 저편에 살다간 대 문호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작가가 살았던 옛 집에 대한 사진이 여러 번 눈에 띈다. 특히나 삼면 내지는 사면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특징을 가진 ‘모퉁이 집’에 집착했던 러시아 작가의 심오하고 딴은 복잡한 내면 심리를 쉽게 풀어내고 있기도 하다.
이병훈은 우선적으로 러시아 대문호의 인간적 측면을 깊이감 있게 들여다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두 번째로 작가가 세상에 내놓은 문학 작품에 대한 이병훈만의 해석 및 연구와 이병훈이 지닌 시선에 주목하게 된다. 이병훈은 도스또예프스키의 전 생애와 그의 작품을 동일한 연계선상 위로 가져와 해서하고 있다. 도스또예프스키 그가 이십대 때 떠나야 했던 시베리아 유형, 당대 혼란스러웠던 러시아의 정치 사회적 흐름, 문학계의 혼란과 이념의 따른 분리와 같은 전반적인 시대상에서 작품의 창작배경과 작가의 의지를 찾아내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라는 한 인물에 대해서 아니면 작품에 대해서만 제각각 간행되는 서적과는 분명 차별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간에 출간된 이 러시아 작가에 대한 책을 통달해보지는 못한 관계로 이병훈의 책을 최고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책을 통해서 작가에 대한 연민과 존경 내지는 존중감은 분명 당대를 함께 했던 톨스토이에게 갖는 느낌과는 또 다른 어떤 것이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한가지 이병훈의 안내로 다시금 재등장한 작가 도스또예프스끼가 이병훈이 펼쳐낸 자리에서만 안주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하나를 건져 올린다. 이병훈의 시선이 가져오는 이미지 또한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책 속에 한두 번쯤 이병훈 그만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꼬장꼬장하게도(딴지 하나를 걸고 있는 중이다)그 이미지에조차 날개를 달아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그러나 이번 이병훈의 노고에 의해 도스또예프스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것도 그 어떤 강직한 형식과 겉멋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보다 친근하게 인간적으로 다가설 수 있었던 기회였음은 분명하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깔린 감정과 욕구(기실 그것은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것을 추슬러, 소돔과 고모라 같은 거친 삶 속으로 끌어올려 힘껏 내던져준 것을, 가장 도스또예프스끼 다운 작가적 행보였다고 나는 믿는다. 해방직후 우리 문학계의 순수문학과 카프문학의 흐름을 생각하게 했던 혼돈의 러시아 문학. 그 한 시점에서 확고하게 신념을 지켰던 작가 도스또예프스키의 이야기는 정치적 요소와 예술 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작가적 고뇌를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으로 다가온다. 양장본으로 출간된다면 다시 구입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