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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상점 - 100년 혹은 오랜 역사를 지닌 상점들의 私的 이야기
김예림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2년 2월
평점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세 번째 서평
파리상점(100년 혹은 역사를 지닌 상점들의 私的 이야기 -김예림
오래된 시간과 만나다
268페이지를 담고 있는 책은 그다지 무겁지 않아서 들고 보기에도 부담이 없다. 파리 시내의 옛 정취가 한가득 실렸다고 할까. 파리라고 하면 예술가의 도시라는 명패가 붙은 곳이라는 생각이 농후한데, 이번 김예림의 책은 하나로 굳어진 이미지에 약간의 기분 좋은 수정을 요하고 있었다.
몽마르트 언덕, 에펠탑, 예술과 낭만은 어쩌면 파리 시내를 크게 에돌아 싸고 있는 문화적 장막 같은 건지도 모른다. 그 장막을 저자 김예림은 직접 다리품을 팔아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걷어낸다. 이 책은 만남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것들과의 만남 말이다.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고풍스런 상점들이 그들 조우의 대상이다. 모두 스물 한 곳의 상점을 이야기하는 책은 각각의 상점들이 판매하는 주된 품목과 100년 혹은 200년 가까이 이어온 상점의 유래와 전통에 대해 비교적 세밀하게 소개하고 있다. 책속에서 만나게 되는 상점들은 음식과 관련해 초콜릿, 차, 식료품 등을 비롯해서 장갑과 모자 우산 같은 실생활용품과 각종 요리도구를 판매하는 곳까지 다양하다. 독자는 김예림을 통해 이들 상점이 지니고 있는 역사와 더불어 전문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셈이다.
책이 갖는 매력 포인트 중 단연코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바로 책 한권에 넘치도록 들어차있는 많은 사진들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역시 김예림과 그의 언니가 직접 찍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태엽은 아무런 방어벽 없이 자연스럽게 과거로 흘러들어간다. 90년의 시간이 흐르기 전의 낡은 흑백 사진과 꼭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이후 현대의 사진이 위아래로 편집되어 실렸다. 사진 속에서 나를 쳐다보는 남녀의 눈빛에 잠시 생각이 멈춘다. 섬뜩한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모를 흡입력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듯하다.
어쨌든 사진으로 인해 책은 더욱 풍성해졌다. 주로 상점의 전면과 내부, 전시된 다양한 물품과 상점의 주인인 인물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느 사이엔가 책상 앞에서 파리의 좁은 거리 한가운데 자리한 한 상점 안으로 막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저자가 유독 오래된 것들을 매개로 해서 파리속의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상점 이야기를 꺼내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자고나면 유행의 흐름이 바뀌는 최첨단의 초단위로 분절되는 문명과 유독 대조되는 그 어떤 것들의 만남.
책은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은은하고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옛것과 현대의 것이 공존하는 이곳 파리 상점가. 그들은 각자 전통을 고수하고 그들만의 것을 지키기 위해 100년 전 혹은 그 보다 더 오래된 그들만의 약속을 지금까지 지켜내고 있다. 물론 특성에 따라 현대의 흐름에 맞게 조화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소개된 스물 한곳의 상점은 상황에 따라 후손이 대를 잇기로 하지만 타인에 의해 인수되어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꼭 후손이 대를 이어야 한다는 혈연중심의 문화는 아니라는 말이 되는 것인가.
저자 김예림은 프랑스의 옛 상점을 지키는 이들에게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를테면 상점을 지켜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언인가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사실 그들의 대답은 약간의 다양성과 동시에 한결같은 대답으로 점철된다. 저마다의 특성과 다양성을 한데 어우르면서도 그들이 모두 입을 모아 중요시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먼 시간대 오래된 누군가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어지게 될 그들만의 자부심을 유지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은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함께 둘러보면 좋을 곳을 소개하는 코너가 눈에 띈다. ‘근처에 가볼만한 곳’이라는 타이틀로 소개하고 있으며 상점 주변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그리고 소극장 식물원 파리시청등 다양한 곳을 보여준다. 한가지 불어 표기로 된 지도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불어를 읽어내기도 그렇지만 글씨 크기도 작아서 지도를 천천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금 소개하는 부분이 어디쯤인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은 부록인 셈인데 부록을 가지고 운운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소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알아보기 쉬운 지도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까지 어이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