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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만든 여자 1
신봉승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월
평점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아흔 아홉 번째 서평
왕을 만든 여자-신봉승
시대(時代)와 여인
역사소설이다. ‘왕을 만든 여자’라는 제목만 본다면 여성을 한 축으로 그려낸 역사소설처럼 보인다. 세조의 며느리인 인수대비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앳된 여인의 모습이 강렬한 카리스마를 품어내듯 시선을 붙잡는다. 가채를 올리고 궁중예복인 당의를 걸친 여인의 모습을 유독 전면에 배치하고 있는 까닭과 그 뒤에 그림자처럼 흐물거리는 왕의 대조적인 모습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한 궤에 묶어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라 볼 수 있을까. 책이 주는 첫 느낌은 여성성이 돋보이는 유연함이다. 또한 그와 동시에 강렬한 카리스마가 품어내는 보이지 않는 힘의 조화가 은근히 긴 파장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저자의 이력도 가볍지가 않다. 33년생이니 올해로 여든 안팎의 이라는 숫자를 헤아려야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노련한 작가의 번뜩이는 눈빛이 연상되곤 했던 까닭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의 이력은 그가 살아온 삶의 경험만큼이나 묵직하다. 역사와 관련해 다양한 소설을 집필하고, tv드라마와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해왔다는 신봉승. 그를 만난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소설작품을 접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보다.
책은 1부 2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권마다 대략 400페이지 정도의 결코 가볍지 않은 두께감을 자랑한다. 내용은 어떨까. 사실 표지에 여성을 등장시키면서까지 이번 책의 핵심인물이 여성이며 인수대비라는 것을 은연중에 어필하고는 있지만 신봉승의 책이 처음부터 세조의 며느리 인수대비인 한씨에게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단도직입의 힘을 빌리면 그렇다는 말이다. 인수대비를 논하기 위해서 역사의 흐름을 밝히기 위한 작업이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했던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세종과 문종의 시대 이후 역사가 간직해야 했던 절절한 사연을 흐름에 맞게 한눈에 펼쳐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용했음은 분명한 일이다.
‘왕을 만든 여자’의 스토리는 단종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세종의 장자 문종, 문종의 아들 단종과 세조 사이에서 벌어지는 왕위찬탈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를 다루는 매체에서 여러 번 소재로 가져 올만큼 이미 익숙한 내용이다. 책 내용을 요약하자면 전대왕에 대한 이야기를 기본으로 한 이후 세조시대와 덕종, 예종, 성종에 이르기까지 여러 왕대를 거론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거두절미하고 베일에 가려진 듯하면서도 숨은 자리에서 강렬한 절대군주와 같은 힘을 발휘하는 이번 책의 진정한 주인공 인수대비를 등장시키기 위한 작가의 꼼꼼하고 딴은 깐깐한 배려가 아닌가. 역사 이야기는 익히 잘 알려진 부분이기에 잠시 접어두자.
소설 작품으로만 봤을 때 신봉승의 소설은 읽는 재미가 있다. 속도감이 느껴질 정도로 빠른 전개와 문장의 흐름은 인물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장면이 갖는 분위기를 충분히 살려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갖는 단 하나의 문제점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전지적 작가시점이 갖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인물과 사건 그리고 배경까지 이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작가인데, 그중 전지적 작가시점이 갖는 작가적 힘은 다른 시점에서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된다. 쉽게 말해서 모든 것을 작가가 움직이게 하는데서 오는 이를테면 월권행위의? 노출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점에 대해서 약간의 불만을 갖고 있는가보다. 작가는 일정부분 독자에게 그들만의 몫을 남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따금 전지적 작가시점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지는 부분까지 밀고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 한 인물의 행동을 두고 평가를 할 때마저 독자의 느낌까지 지나치게 관여해서 결과적으로 독자의 맥이 풀려버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는 작가 입장에서 이런 문제점을 거론하는 것 자체는 오히려 일정부분 흡족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소설이 갖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쩐지 작가에게 끌려가는 독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궤변이라면 궤변이고, 말 같지 않은 딴지라면 또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각설하고 독자의 몫이라는 그 한계점은 지켜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어찌보면 작가가 만들어놓은 놀이기구에 탑승해서 신나게 정신없이 한바탕 놀다 내려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객관적으로 볼 때 시대적 흐름을 순차적으로 기술했다고는 하나, 지극히 작가적 의도에 의해 배제된 부분 역시 알 수 있다.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어차피 뺄건 빼고 더할 건 더하는 것이 구성의 묘미가 아닌가. 그것만큼은 작가의 고유한 영역이 아닌가 말이다. 단종이 혜빈과 헤어진 이후 죽기 직전의 마지막 절정의 순간이라든지, 정인지의 심리적 변화에 대한 추이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후반부에 들어서 연산군이 갖는 폭정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자극적이었던 반면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비교적 적었던 것은 아니었나 개인적인 사심이 늘어 간다.
책에서 자주 반복되는 표현 ‘히히힐...’ 은 한명회의 웃음소리다. 히히힐이라는 표현만으로 한명회라는 인물의 특징을 대변해주는 장치로 쓰이고는 있지만 작가가 자주 썼던 표현 ‘통렬~~’이라는 표현만큼이나 너무 자주 등장하고 있어서 한명회가 갖는 이미지의 폭이 좁아진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책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생각을 끄집어낸다고 믿는다. 인수대비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읽어냈다면 이번 책은 인수대비의 파란만장한 서사로 볼 수 있다. 반면 역사의 전체적 흐름에 중심을 잡아 읽어나간다면 비단 인수대비라는 한 여인의 인생역정으로 한정지을만할 내용은 아닌 듯싶다.
각설하고 조금은 딱딱하고 건조한 역사평론으로 대하는 것보다 심리전을 방불케 하는 소설로 만나는 역사 이야기는 그만큼의 메리트를 충분히 갖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