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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치세어록 - 난세를 사는 이 땅의 리더들을 위한 정조의 통치의 수사학 ㅣ 푸르메 어록
안대회 지음 / 푸르메 / 2011년 11월
평점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여든 일곱 번째 서평
정조 치세어록-안대회
말로써 다스리다
얼마 전 모 연예인의 어록이 유행을 타던 때가 있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는 사실 얼굴이 잘난 편은 아니다. 그런데 그의 입담만은 유려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것이 비단 세태를 풍자하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은 아닌듯하다. 사람들의 생각이 미처 가 닿지 않는 그 어떤 부분까지 벅벅 긁어주면서 마지막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능글맞을 정도로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만의 능수능란한 언변 때문이겠지. 그의 유쾌한 달변은 진정 어록이라는 표현을 붙여줄만 하지 않은지. 정조의 어록을 들여다보면서 격식에 맞지는 않지만 나는 유독 그 사람을 생각했던가 보다.
제목이 ‘정조 치세어록’이다. 말 그대로 풀어보면 정조임금이 자신의 재위기간에 남긴 기록할만한 표현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을 접하면서 정조라는 인물과 또 한 사람 바로 이 책을 집필한 저자 안대회 선생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안대회 선생을 알게 된 것은 ‘고전산문 산책’이라는 그의 책 한권에서부터다. 일전에 작가 김탁환의 에세이를 통해 다시 안대회 선생의 함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역시 역사 소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었다. 어쩐지 친근하다. 그리고 안선생의 글이라면 자잘한 의혹 없이 믿고 읽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책은 비교적 얇다. 모두 8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장 마다 제목을 달아 주제에 맞게 분류하고 있는데, 저자는 각종 역사적 사료와 다양한 자료에 있는 문서들을 각각의 주제에 맞게 분류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목차만 들여다봐도 전체적인 책의 구성과 그 내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분위기다. 내용 구성을 보면 가장 먼저 원문을 한글로 번역해 싣고, 그 다음 원문을 가져오는 순서를 밟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 작가가 원문 각각의 내용을 알기 쉽게 풀이해 놓고 있는 대목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볼 것은 이 부분일 것이다. 사실 ‘정조의 치세어록’의 가치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오로지 정조의 관한 것일 게다. 책 속에 등장하는 정조는 조선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또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노력하고, 공부하고 부하들을 독려하는 부지런한 군상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조선의 역대 임금 중에서 가장 많이 공부한 임금이라고 했던가. 그렇다 하더라도 정조의 이미지는 책만 좋아해서 책 속에서만 사는 일개서생의 기질과는 또 다른 어떤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정조는 실전에서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실리원칙을 따르는 현명함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의 가치 첫 번째는 정조가 지니는 임금으로서의 자질확인이다. 또 다른 가치를 이야기할 때 혹시 기획의도와도 비슷한 부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 안대회는 정조의 정치적 행보와 당대의 흐름을 현대의 것과 자주 비교 분석하며 또 비판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그가 이 한권의 책 속에 담아내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정조어록에 관한 기록의 가치일까. 아니면 사회적 비판의식의 또 다른 작가적 표출일수도 있지 않을까. 책 한권 안에 두루두루 작가 안대회의 현실 비판의식이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두 번째 가치로 봐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획 의도에 있어서 어떤 부분에 더 많이 중점을 두었는지는 사실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저 정조의 애민사상과 당대 치국에 있어, 이지적인 동시에 인간애가 담긴 정조 그만의 치세 노하우에 흠뻑 매혹된다 하더라도 누가 뭐라 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알고 있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또는 영조등과 같이 책 속의 주인공 정조를 둘러싼 이미지들은 크고 단단하게 느껴진다. 당파와 당파의 갈등 속에서 현명한 군주로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스스로 단련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사심 하나가 자리를 잡는다.
각설하고, 조선의 역사가 왜 그다지도 정조를 대왕의 자리에 오르게 했는지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었음에는 분명하다. 더불어 작가의 현실적 비판의식이 가져오는 과거와 현대사회의 조화 역시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던 것 같아 읽는 내내 유쾌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표현에 있어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아 읽는 이로 하여금 빠르게 잘 읽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