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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영혼의 약상자 - 어느 시인이 사유의 언어로 쓴 365개의 처방전
이경임 지음 / 열림원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여든 세 번째 서평
마음을 치유하는 영혼의 약상자-이경임 지음
사유. 인간의 힘
아포리즘의 사전적 의미는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나 글, 격언, 금언, 잠언, 경구 따위를 이른다’고 되어있다.
이경임의 책 ‘영혼의 약상자’를 아포리즘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인이었으나 시의 세계에서 멀리 떠나있었다고 했다. 세간의 이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소개문에 나와 있는 문구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문학의 본질로부터 멀찍이 괴리된 문학적 삶과 소비지향의 문단 풍토에 대해 거부와 회의를 드러낸다’는 문구가 그것이다. 문학의 본질과 괴리된 문학적 삶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무엇이 그토록 괴리감으로 점철되었기에 이경임 그녀가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문장으로 인해 문득 한권의 책이 품고 있는 분위기라고 할지, 사상이라고 해야 할지,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힘든 부분이겠지만, 책과 작가 이경임이 갖고 있는 그녀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순수한 날것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볼 때 표지 날개에 적혀있던 출판사의 소개문이 꽤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또 무슨 사심이 담긴 어정쩡한 발언인가. 책은 모두 열두 가지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제목이 ‘마음을 치유하는 영혼의 약상자’이기에 열두 가지의 이야기 역시 제목과 비슷하게 ‘마음을 치유하는 처방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전체적으로 주제를 잡고 글을 분류하고 있긴 하지만, 크게 봐서 그 구분이 모호하다. 이를테면 각각의 주제 안의 내용들이 다른 주제 안으로도 편입 가능할 수 있을 만큼의 자잘한 연계성을 지니고 있어 보인다.
책의 전반부는 그 내용에 있어 비유로 들자면 비교적 색체가 어둡다. 그녀는 회의론자인가 아니면 무신론자인가. 라는 낙서를 휘갈겨 적는다. 또는 개인적 사유가 대중의 공감대를 얼마나 확보 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적어놓기도 했다. 문득 그녀가 회의론자가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내 자신이 지나치게 비판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책은 저자가 사유하고 기억하는 삶의 진리와 지혜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중간에 역대 철학자나 유명한 작가들의 명언이 실린 글을 부분 발췌해 인용을 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글과 인용글이 어떤 규칙성 없이 자유자재로 뒤섞여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때문에 글을 읽다보면 이글이 저자의 것인지, 인용의 글인지 확인을 하려는 버릇이 새로 생기는 듯하다.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깐깐한 고집이 고개를 뻗어 내미는 걸 느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불쑥불쑥 실어놓은 인용문구의 차원이 아니었다.
아주 문득 갑자기 생각하기를 각각의 인용구에 새로이 생명을 불어넣어준 소제목에 시선이 꽂혔던 것이다. 저자 이경임이 하나씩 명명한 제목은 그냥 평범한 제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 한가지의 주제를 잡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수행자의 시간 같은 긴 흐름이 가져다준 결과물들이 아닐까. 시각적으로 간단명료하지만, 각각의 주제에 맞게 선별한 깊이감이 살아있는 제목들이다. 상징과 비유로 때로는 요약으로 제목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축축 늘어지는 것을 마냥 싫어할 것 같은 저자가 마지막까지 애정을 쏟으며 붙잡고 있었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책 안에서 ‘거리감’을 강조한다. 거리두기. 그것은 나와 내 자아 사이의 일상이나 감정 부분에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일과 더불어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거리감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요약 가능하다.
책 한 귀퉁이에 주변의 시선, 개인의 감정 다스림과 피드백 효과라는 낙서를 해본다. 거리감을 일정부분 확보하고 있으면 어쩌면 객관적인 결과로 피드백 기능의 긍정적 효과와 그 결과물을 접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삐딱선을 타고 있는 나는 영혼의 약상자라는 표현이 한걸음 더 들어간 비유라는 생각이다. 비유에도 단계가 있다고 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너무 깊이 들어간 비유라고 감히 말하려던 참이다.
회의적이면서도 냉정함과 냉철함이 서려있는 비판의식이 날카롭게 살아있다는 것이, 내가 만난 이경임의 책이 갖는 총체적 이미지라는 생각을 한다.
책에 대한 기록을 마무리 할 시기에 문득 내 자신과 저자 이경임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구 하나가 생각난다.
‘너희가 문학의 진정한 순수와 참여를 알아. 혼돈의 시간은 잠깐 지나갈 뿐이다.’
김동리 선생이 생전에 남긴 이 이야기가 지금 이 순간에 얼마나 적절하게 어울릴지는 미지수다. 다만, 내가 처한 환경의 분위기나 색을 떠나서, 이 짧은 문구 하나가 던져주는 의미에 저마다 일정부분 적당한 힘을 얻는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