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의 루브르
박제 지음 / 이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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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일흔아홉 번째 서평

오후 네 시의 루브르-박제




루브르 속에 숨겨진 인간군상




그림을 많이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구경하는 것은 좋아하나보다. 말 그대로 그냥 구경   말이다. 그림과 관련된 책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는 듯하다.

시기별로 유행을 하던 총체적인 예술(미술)사조는 비단 미술에서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묘한 끌림이 작용한다. 모든 예술이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는 것은 이미 느껴왔지만 특히나 이번에 접하게 된 책 ‘오후 네시의 루브르’를 통해서 다시 확인했던 부분이다. 미술사에서 드러나는 작품들이 당대를 살았던 인간군상과 각각의 존재론적 삶의 방식에 대해, 구체적 형식(그림 속에 담긴 풍자와 비판)을 빌려 현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 같다. 어쩌면 미술사조를 알고, 화가의 이름을 아는 것보다도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참 많은 화가와 작품들이 등장한다. 대충대충 읽으면 이 사람이 그 사람 같고, 그 사람의 작품이 이 사람의 작품처럼 혼돈이 와 갈피를 잡지 못할 듯하다. 책은 이를테면 독특한 양식에 의해 구별되었던가? 아니면 시대적 흐름에 의해 구별되었던가? 물론 이 양자의 구분에 의한 구별방법도 같이 동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자 박제의 이야기 흐름이 ‘명확한 주제의식’에 의해 구분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독자가 책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그림과 화가, 다양한 사조를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단지 저자가 마련해놓은 각각의 특색 있는 방으로만 발을 들여다 놓으면 될 일이다. 그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역시나 부담 느낄 필요가 없다. 까닭인 즉, 동그랗게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단 한가지 꼭 한가지 덧붙일 것은 눈을 뜨고 귀를 여는데서 그치지 말고 가슴을 열어두라는 점이다.

그림은 비단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보는 장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 한권의 책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 바로 눈과 가슴으로 읽어내는 미술세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루브르에서 만난 그림들을 다섯가지 테마로 구분한다. 그 첫 번째가 초(肖)다. 즉 초상화다. 그리고 차례대로 속(俗), 풍(風), 성(性), 성(聖)이 뒤따른다. 풀이를 하자면 세속적인 부분, 세파와 관련된 풍속화 부분, 남녀 간의 성을 다룬 부분과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차원에서 다룬 부분으로 나눈다. 이 다섯가지의 주제는 저자 박제에 의해 임의로 구분된 주제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관조할 때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포함되는 요소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우리들 인간의 삶은 화폭에 담겨지는 무한 색조의 그것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총천연색으로 그려지는 하나의 작품이다.




화가는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던가. 나는 불쑥 그런 생각을 해본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 그림이라 생각했던 좁은 소견일랑 버려야 할까보다. 적어도 책을 통해 저자 박제가 소개하는 화가들을 접하면서 나는 화가라는 표현이 지니는 사전적 의미에 다른 이미지를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가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서 사건과 사건, 반목과 화해, 불규칙적이며 예상하거나 혹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인간존재의 수많은 감정들을 담아내는 숙련된 기술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거친 세상을 그리다’라는 부제목 아래 풀어나간 저자의 험한 세상과 인간의 적응도를 이야기하는 곳에서 집중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실존이다. 숨기고 있으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안에 잠재하는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는 대목이다. “사기도박꾼”에 대한 스토리는 이미 언론에서 여러 번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매번 들여다봐도 흥미 있는 부분이다. 같은 맥락 안에로 묶여진 [점쟁이]라는 작품과 [술 마시는 여자] 역시 시선을 오래 붙잡는다. 일상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억측이기는 하겠지만 삶에서 드러나는 속고 속이는 리얼한 인간의 속내를 접하는 일은, 그림이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뒷받침해준다는 생각을 재차 확인하게 되는 부분이다.

[피터르 더 호흐]의 “술 마시는 여자”는 술집 잡부를 그린 작품이다. 손님이 건네는 술을 받아마시는 여인의 모습은 자포자기라는 느낌을 풍긴다. 그림에서 한없는 연민의 감정이 흐른다. 참 사는 게 피곤하다는 말,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 그림 한 장에 여가없이 녹아드는 듯하다.




저자 박제는 달변가다. 무엇보다도 감각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性)“저항할 수 없는 유혹을 그리다” 편에서 드러나는 그의 표현력은 뭐라고 할까. 묘한 매력이 도사리는 듯하다.

책은 구체적이며 사실성 있는 묘사와 설명이 이어지는 동시에, 작품과 생존했던 화가의 생몰연대, 그들의 작품과 시대적 흐름과 미술사적 연대기까지 서로 비교하며 분석하는 저자의 성실한 해설이 미술에 문외한인 나 같은 이들에게는 무한 정보의 보고처럼 보인다.




다만, 모든 예술은 정답이 정해져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본다. 예술은 언제나 재창조될 수 있으며, 다양성과 개방성이 함께 뒤따라야 가치가 살아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한편의 예술작품에 대한 견해는 다양해야 한다는 투정을 부리고만 싶어진다.




그가 책 어딘 가에도 밝힌바 있듯이 하나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어떤 관점에서 판단하는가에 따라 전혀 색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데 요점이 있다.

친절한 그의 설명에는 백프로 전염성이 존재한다. 매혹적인 전염성이다. 하지만 이 전염성이 갖는 위험수위를 넘어, 내 시선에서 내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내가 느끼고 이해하는 작품이 분명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각설하고 생에 있어 루브르를 갈수 있을지는 미지수겠지만, 직접 보지 못하는데서 오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책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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