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도 - 이해인 시집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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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일흔 두 번째 서평

작은 기도-이해인 시집




이제는 거울 앞에서...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비를 만나는 일은 일상이지만, 유독 가을에 내리는 비만큼은 느낌이 다르다. 가을에 제격인 것이 또 뭐가 있을까.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접하면서 비와 더불어 가을에 잘 어울리는 것은 어쩌면 시집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잠긴다.

와병 중에 있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에 접한 걸 기억한다. 시집을 보고 시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그녀의 시집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수필집을 통해 인연을 만들고 나서 시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떤 사유에서 사람들이 그녀의 시를 좋아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뭐랄까 한때 나는 치열한 의식이 깔린 실존과 이데아가 품어내는 그림자에 심취했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속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좌절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모든 순간순간의 모습을 쫒으며 공감하기를 좋아했었던가. 참 무겁고, 냉정하고, 치열했으나 그들 모두가 상처받았고 힘들어하는 과정에서 창작된 작품을 좋아했나보다.




이제는 거울 앞에 서서...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읽으면서 문득 서정주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린다. ‘거울 앞에 선 누이’라는 문구가 나오는 ‘국화 옆에서’라는 시의 느낌이 새록새록 묻어난다고 생각했다. 세상살이의 고단함에 한없이 돌고 돌아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수긍하는 존재. 자아를 투영하는 깨끗한 거울을 통해 겸허하게 자신을 바라본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이해인 수녀의 시집의 느낌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 마흔을 조금씩 숫자로 헤아리며 기다리면서,  마흔이 넘어가면 시를 쓰기에는 감수성이 떨어진다 했던, 어느 교수의 말을 한쪽 가슴이 시리게 떠올린다. 그러나 그것이 차마 어려운 일이라 한다면 시를 통해, 시인의 마음을 통해, 부단하게 어지러웠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각자의 거울 앞에 서 볼 수는 있지 않은가.

순수했지만 조금은 아리고 쓰라렸다면 상처로 남았을 시간을 뒤로 한 채, 시인 서정주가 그랬고, 구도자인 동시에 시인인 이해인이 그러했듯이 시를 읽는 이들이 저마다 각자의 자아와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녀의 시는 순수하고, 순진하며, 곱다. 참 곱다. 겉치레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표현으로  예쁘게 시를 썼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 대해여, 별과 달에 대하여, 화병에 꽂아둔 꽃들과 들판에 이름 모를 작은 풀들에 대하여, 이른 아침 창가에서 지저귀는 새들에 대하여, 바닷가에 일렁이는 파도에 까지 시인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전체적으로 기쁨과 만족 행복감 속에 조금씩 깊숙한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인간적인 고뇌와 불안감을 엿보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누구든 죽음과 마지막 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담대할 수 있는 이는 드물지 않을까. 평생을 신께 의지하고, 믿음으로 지켜왔을지라 하더라도, 예수가 그의 아버지께 가능하다면 그 순간을 비껴가게 해달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 앞에서의 두려움을 극복하기는 어려운 일이지 싶다. 그러나 이해인 수녀가 내보이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슬프거나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다만 육신의 고통에서 비롯되는 현실에서의 인간적인 고충이 드러남에 시를 읽는 동안 마음이 숙연지더란 말이다.




신에 대한 사랑을 이웃에게.....




시집에는 신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 그리고 사랑이, 또 한편으로는 지극히 인간적인 여러 모습과 비밀스럽고도 내밀한 감정들이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어렵지 않은 표현으로 잔잔한 미풍의 향연처럼 그렇게 누구에게나 좋은 느낌으로 다가설 듯한 시집이다. 가을에는 시집 한권 선물하면 참 좋겠다.

끝으로 이해인 수녀만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많은 시들 중에서도 이를테면 아주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시 하나를 적어본다. 삶의 모든 것이 기도이며 고해성사였던 이에게는 타인으로 행했던 모든 사랑마저도, 딴은 한쪽으로만 치우쳐진 스스로의 힘겨운 자의식의 발로였음을 고백하는 듯하다.




어떤 후회




물건이든

마음이든

무조건 주는 걸 좋아했고

남에게 주는 기쁨 모여야만

행복이 된다고 생각했어




어느 날 곰곰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더라구




주지 않고는 못 견디는

그 습성이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자신을 구속하고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함을

부끄럽게 깨달았어




주는 일에 숨어 따르는

허영과 자만심을

경계하라던 그대의 말을

다시 기억했어




남을 떠먹이는 일에

밤낮으로 바쁘기 전에

자신도 떠먹일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지녀야 한다던 그대의 말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기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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