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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파보기 전에는 절대 몰랐던 것들 - 인생의 크고 작은 상처에 대처하는 법
안드레아스 잘허 지음, 장혜경 옮김 / 살림 / 2011년 9월
평점 :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일흔번째 서평
내가 아파보기 전에는 절대 몰랐던 것들-안드레아스 잘허
내 상처와 마주보기.
대학 마지막 학기 중에는 쉽게 공부를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스산한 바람이 시치미를 떼고 섣불리 불온한 기운을 몰아와 교정 뒤뜰에 있는 나무의 옷을 모조리 벗겨버리고 어느날 밤에는 가는 나뭇가지 하나를 부러뜨렸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흐느적거리게 제 짝도 아닌 나무 곁에 올려놓았던 그 즈음, 나는 나보다도 나이 어린 동기생과 같이 해가 지고 있던 종로거리를 말 그대로 싸돌아다녔다.
그녀는 지난번 사주카페에서 사주를 봤다고 했다. 나는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낯선 두려움 때문에 그 계절에 불어오는 바람조차 편히 맞아줄 아량을 준비하지 못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우리가 미래의 시간을 미리 알지 못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 한권을 보고나서 그 생각들이 바뀌는가 싶다.
앞날이 어떤 빛깔로 내 앞에 설지, 그것이 푸른빛일지 아니면 어두운 빛일지 두려운 것은 어쩌면 현재의 자아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들이 저희들끼리 줄을 맞춰 정리라는 것을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는 종단에는 현재의 것들이 질척이는 옛 시간의 것들을 들춰낸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는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으며, 좁으면 한없이 좁고 딴은 넓다면 방대한 우리 은하의 크기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드넓은 한 세상에서 모든 것이 공존하는 것은 아닐까.
한때 내가 불안했던 것은 오래전 어떤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 어떤 기억을 상처라 말한다. 모든 인간은 상처로부터 태어나, 상처로부터 단련되는 과정에서 성장이라는 것을 하고, 평생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는가보다. 하지만 저자 안드레아스 잘허의 이야기처럼 상처는 그 사람을 나락으로 주저앉게 하기도 하고, 다시 의연하게 일어서게도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진리를 믿고 있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던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 불편한 진실이 이 책에도 적용되는가 보다.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의도하지 않은 어느 순간조차도 상처에 무방비로 설수 밖에 없다는 현실일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선택이 가져오는 불편한 진실은, 어쩌면 늘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것들이 몰고 오는 파장의 의해 삶의 무게가치가 흑백으로 갈리며 또는 큰 너울에 휩쓸리기까지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선택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개인의 치열하고 강한 의지가 아닐까.
누구나 받는 상처 앞에서 똑같이 좌절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크든 작든, 깊은 상처이든 아니든 간에 상처가 상처로 남지 않게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라고 책이 말하고 있다.
저자는 어린아이로 대표되는 시절의 유아기 시절부터, 성년이 되어 이성과의 관계를 다룬 부부에 대하여, 노인들의 문제까지 각각의 시기에 인간이 마주치는 다양한 상처의 예를 소개하며 함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모두 세 파트로 나뉘는데 ‘무엇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가?’ 이것이 첫 번째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는 ‘어떻게 상처를 다룰 것인가?’ 세 번째 마지막 이야기는 ‘나와 남에게 상처 주지 않는 기술’이라는 소제목 아래 결코 가볍지 않은, 또 설쳐대지 않으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이야기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어떻게 상처를 다룰 것인가?’에서 저자는 영웅의 이야기를 빌려와 이해도를 높이는 노력을 한다. 다양한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이 어떤 식으로 상처를 받아들이고 극복해내는지를 소개하며, 이를 다시 영화 밖 사람들의 현실 속으로 가져온다. 영웅도 사람인지라 처음에는 주저하고, 좌절하며, 멘토를 만나 용기를 얻고 위험을 극복해 간다는 이야기는 그 스토리가 유명세를 떨쳤던 영화라는 이유만으로도 친근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공식화된 스토리에서조차 자신이 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찾아 건져 올린다. 주인공이 난관을 극복하고 상처를 극복해 의연하게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 이 모험 가득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는, 한편으로 우리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축소해 가져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며, 그것을 받아들이지만 결코 상처 속으로 걸어 들어가 문을 닫지 말 것이다. 당당하게 현실로 걸어 나와 나를 인정하고 내가 받은 상처를 인정하는 것, 그래서 상처위에 새살이 돋아나듯 더 든든한 자아를 만들어가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것이 책 ‘내가 아파보기 전에는 절대 몰랐던 것들’의 부드럽지만 강한 메시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옛날이야기를 하자면, 그날 결국 나는 온전한 나의 신과 잠시 타협을 하기로 하고 사주카페에 가 사주를 봤다. 하지만 그다지 신통치도 않은 사주였고, 열심히 봐주지도 않는 눈치여서 동기와 같이 심드렁한 기분으로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대로변에는 한참 공사를 진행하는 건물들과 무언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판들이 차도까지 널브러져있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기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그 당시 내가 서 있던 ‘현재’ 라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나는 상처를 인정하기 두려웠던가. 인정하고 상처의 문을 열어 나오기가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치열했던 이십대의 시간들이 지나고 난후 읽는 심리관련 책의 느낌은 또 다르다.
따뜻한 온기처럼 누군가에게 마음의 의지가 될 수도 있을 법하다. 지금 누군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문을 걸어 잠그고 상처 한가운데 앉아 있다면, 냉냉한 정신과 의사와의 집요한 면담보다는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이 잔잔한 위로로 다가오지 않을까.
가치를 주자면 주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나름대로 부드럽고 유한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