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목소리
대니얼 고틀립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예순 한번째 서평

가족의 목소리-대니얼 고틀립 지음-정신아 옮김




사랑하고 사랑받고 다시 나누고.




엄밀히 말하면 나는 지금 충실히 공부하지 못한 수험생이다. 그것은 내 철칙과도 같은 일에서 살짝 비켜 벗어난 일 같기도 하다. 열심히 공부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한권의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그 일이 네게 무엇을 주는가?

책과 함께하는 시간이 내게 어떤 물질적인 선물을 주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나는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몰입하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을 만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휴가를 가기 위한 첫 번째 준비는 서둘러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내 책읽기 속도는 하염없이 느리지 않은가 말이다. 마음속으로는 늘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 이번 책은 정독하기 좋은 책이군.




가족 심리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담긴 책 ‘가족의 목소리’는 사뭇 진중함을 잃지 않는 분위기를 이어간다. 때문에 나는 깊은 신뢰감을 갖고 끈질기게 책과의 씨름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우연도 아니고 필연도 아니겠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책을 통해 위로 받고 싶다는 얄팍한 심리적 요인을 품었던 것도 인정해야할 부분이다.

아이 때문에 첫 문을 열었던 클리닉 상담은 부모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내 앞에까지 나무문의 둥근 손잡이를 돌리게 했다. 나는 정신과 전문의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보내기를 두어 번 했었다. 그 과정에서 나누었던 주된 이야기들이 바로 책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말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그것이 정말이지 불만으로 가득 찬 결과로 다가올지라도 인정하라는 말에 짧은 불쾌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것보다도 많은 것을 공감하며 새로 인지하고 깨달아 가는 시간을 기꺼이 맞이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한번 갈 때마다 내는 3만원의 가치보다 책 한권의 가치가 더 낫다는 생각도 역시 가족의 목소리라는 책 한권에게 갖는 믿음을 드러내는 부분일 것이다.

심리관련 책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보아왔던 책들은 일정부분 구분을 짓고 획을 그은 어떤 구역 내에서 들여다보는 심리서적들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가족의 목소리는 그 모든 것들을 한 아름에 품어내고 있다. 책은 크게 4부로 구분된다. 부모의 목소리, 배우자의 목소리, 아이의 목소리, 나 자신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글쓰기의 배경을 가족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에 담아놓고 있기 때문에 가족과 연계된 다양한 모습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거론하고 있지만, 사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회와 대중이라는 집단과 집단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 역시 따지고 보면 가족이라는 틀에서 부터 그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아간다. 때문에 심리적 갈등의 동기와 풀이를 위한 여정을 가족에서부터 출발시키는 이번 ‘가족의 목소리’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은 어떤 전문성에서 묻어나는 형식적인 겉치레나, 직업적 우월성에 절어버려 찐득거리는 매너리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몇몇 정신과 의사들의 태도와는 달리 진솔하고 겸손하며 다정다감하게 다가온다. 여기서 굳이 그의 이력을 들춰낼 필요는 없겠지만 어쩌면 그 역시 상처받고 그 상처로부터 주저하면서 다시 일어난 한 개인이라는 특이한 상황이 적용됐기 때문은 아닐까. 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그는 내담자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문득문득 자신의 자아와 마주하며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함께 만난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단순한 정신과 의사가 아닌 심리치료사이기 때문이기에 접할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다.




각설하고 책의 핵심은 단 한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그것은 '나를 인정하기', ‘내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정도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나를 찾아오는 유쾌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들을 거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깨달음이 생긴다는 생각과 많은 의미들. 어찌보면 이 책이 갖는 전체적인 의미와 분위기는 동양사상과도 관계가 있어보인다.




외과의사는 메스를 들고 상처를 열어 종괴를 제거하고 봉합하며 치료를 한다. 그러나 마음에 감기가 찾아와 잠시 주저하는 사람들을 위한 치료는, 좋은 말을 해주면서 내담자를 안정시켜주는 일이 아니라 지금 경험하고 있는 또 겪어내야 할 앞으로의 감정과 일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내가 ‘가족의 목소리’ 라는 책을 통해 얻어낸 가치 있는 결과물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본의 느낌과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고 끝까지 잘 이끌어낸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번역가 정신아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본다.

단순한 번역의 느낌이 아닌 사려깊은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게 있어 이번 책의 번역은 참 고마웠던 부분이다.

 

나는 인정한다. 언제 문득 심적인 갈등이나 우울감이라는 감정이 다시 찾아오리라는 것을 말이다. 설사 그렇다 한들 아니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도 없지만 책이 있기에 언제든지 다시금 본연의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여름 해가 지기 전에... 나도 휴가라는 걸 다녀와야 할까보다. 사랑하는 내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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