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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김보경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평점 :
쉰 일곱 번째 서평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영원한 꿈의 비상, 모든 것을 동경하다.
종일 끄물끄물한 하늘이 무거워 보이더니 새벽이 돼서야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소리만 들어보면 꼭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보라가 거세게 몰아칠 것 같은 기세다. 마른 바람이 먼지처럼 눈꺼풀에 들러붙을 것 같은 건조한 사막에 이 비가 내린다면 어떨까. 문득 사막 한가운데서 비가 내리는 것을 상상한다.
그동안 너무 어린왕자와 여우만을 사랑했었나보다. 생텍쥐페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그가 비행기 조종사였다는 사실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였다는 사실만이 각인되고 있었을 뿐,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만한 기회를 접할 기회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가 조종사라는 직업보다 작가라는 직업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무한한 애정을 그려갔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왔었다. 물론 작가로서 그의 삶 역시 소중했겠지만 책을 통해 보았던 그는 작가라는 직업, 글을 쓰는 자긍심 보다는 역시 비행기를 조종하는 일에 만족감을 더 크게 품고 살았던 인물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는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제한된 조건에(연령제한에 걸린 듯하다)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군대에 편입해 들어가 다시 비행기 조종사라는 위치 한 가운데 자신을 서게 한다.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 그에게 있어 조종사라는 존재감은 자존감과 더불어 애국심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에 모든 정신적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시공사에서 빛을 보게 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는 작가가 소년기에서부터 청년기에 이르는 시기동안 어머니와 누이들 ,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서간집이다. 이 책이 갖는 첫 번째 의미는 작가 앙투안의 인간적이면서도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는 작가적 영향력일 것이다. 편지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그의 이미지는 부드러움과 강한 이지적인 면이 동시에 깔려져있는 고독과 안정감일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애정, 그리고 가족들에게 보내는 진솔한 이야기와 친구에게 보내는 글 속에서 그는 작가라는 또는 조종사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뒤로 하고 평범한 한 사람, 정 많고 따뜻한 어느 누군가의 아들, 다저한 오빠, 믿음직스러운 좋은 친구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시종일관 어머니에게 보내는 작가 앙투안의 따뜻한 내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좋은 글은 보이지 않는 어떤 ‘전염성’을 갖는 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어서 간과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기까지 한 어머니의 사랑과 슬픔, 고뇌와 견딤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책은 앙투안의 어머니가 오랜시간 아들과 교감하며 나누었던 편지와, 그가 실종된 뒤 일년이 지나서 마지막으로 받게 된 편지까지 어머니라는 한 여인의 가슴에 담아 간직해왔던 모든 추억에서부터 출발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절절한 가슴앓이의 근원은 앙투안도, 그가 남긴 편지들도 아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 싶지만 볼 수 없음에서 비롯되는 안타까움과 애절함이 밑바탕에 깔린 모성애가 아닐까. 이 책에서 기실.. 우리는 작가 앙투안 생텍쥐페리와 그의 어머니를 함께 만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원한 꿈을 꾸고 대자연을 동경하는 어린왕자처럼 그만의 미지의 세계로 떠나버린 앙투안.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 책은 작가 생텍쥐페리와 그 주변의 지인들의 교감 속에서 작가의 인간적인 면모, 비행기 조종사라는 직업과 작가라는 직업에서 순수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노력하며 살아간 한 사람의 모습을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활동사진처럼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온다.
작가로서뿐 아니라 어떤 온전한 인간성을 향한 그의 치열한 사유도 책을 읽는 과정에서 매력적인 부분으로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직접 먼 곳까지 날아가 다리품을 팔아가며 작가의 정신적 실체까지 스케치하려 노력했던 옮긴이 김보경씨의 부단한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본다. 책의 뒷부분에 진정성이 녹아드는 ‘옮긴이의 말’ 또한 앙투안의 편지와 더불어 읽어볼만 하다. 앙투안의 편지만 읽었다고 서둘러 책을 덮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앙투안 생텍쥐페리가 늘 간직하고 있는 진정한 그 무언가에 대한 생각과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이 담긴 부분을 적어보자.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떠난 이 착한 아들은 그토록 정신적으로 존경하며 사랑하는 어머니와 서로 너무나 닮아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두 편의 인용을 통해 두 사람이 동시에 지니고 있는 그 무언가에 대한 느낌을 받는다. 그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사고를 제외한 모든 것을 단련시킵니다. 글을 쓰고, 노래하고, 말을 잘 하고, 감동하는 법까지도 배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에 따라 움직이는데, 말은 감성까지도 속입니다. 하지만 전 책에서 얻은 이론만을 따르는 그가 아니라, 인간적인 그를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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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추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말을 이어 나가는 단계를 거쳐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말이 모든 것을 왜곡해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말을 신임하기 때문입니다.”
1924년, 파리...P271
1945년 부활절
예수님이 부활하시던 날 새벽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막달라 마리아 묘석 옆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기도문을 외루고, 또 외웁니다.
“주여, 제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셨나요?”
여기로 저기로, 제 제 아이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던 날,
전 울부짖었습니다. 그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하려고,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울부짖습니다.
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서,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무덤조차도 저는 모습니다.
하지만 “너무 빛을 갈망한 나머지 그만
하늘로 올라가버린 거라며,” 별들의 순례자님
하늘의 순례자님, 제 아이가 왔었나요?
하느님의 항로 표지를 보았군요?
아아! 그 사실을 제가 알았더라면,
미사포 아래서 그토록 울지는 않았을 것을.
옮긴이의 말 중에서....p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