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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마흔 두 번째 서평
선방일기-지허스님
동안거, 깊고도 긴 내면을 들여다보다
연 삼일 째 혹한이다. 외부와 정면으로 마주서고 있는 통 큰 베란다의 알루미늄 손잡이에 얇은 잠자리 날개 같은 살얼음이 새로 얇게 드러누웠다. 무심코 손을 가져다 대었을 때의 느낌은 진공상태에서 순식간에 열린 구멍으로 생겨나는 흡입력 같은 거였을까. 다섯 개의 손가락들이 일순간 베란다 창틀에 차르르 소리가 나게 들러붙는다. 차가웠던가. 아니면 뜨거웠던가. 계절은 거룩하게도 완연한 한 겨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재채기를 해대며 넘겨보던 책은 일기 같은 에세이라고 해야할까보다.
115페이지 분량의 얇은 책이었지만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이었던 것 같다. 책 안에서 하나 둘씩 오롯하게 솟아오르는 심오하면서도 무한의 깨달음을 주는 생각들이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었던가. 그것을 철학적 논지로 단정 짓기에 범위가 광범위한 것이기에 수월하지 않았으며, 비단 종교적인 것으로 치부하기에도 생각할 거리의 깊이감은 상당히 깊고 아련했던 까닭이다.
선방일기는 긴 겨울동안 일정기간 칩거라는 사회적 공간적 제약을 스님들의 자의적 선택을 통해 결정하며 스스로 고독해지는 방법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의 모음집이라고 볼 수 있다. 산문출입을 금한 채 수도에 전력하는 동안거는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 이어진다고 소개하고 있다. 동안거를 위해 선방을 결정하면서 불제자의 겨울 고행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기나긴 시간들, 춥고 어두운 산사의 겨울. 그들만의 결제(동안거의 시작)를 기점으로 스님들의 겨울 불심에서 자아 찾기 여정의 분초가 흘러가기 시작한다. 책은 전체적으로 불교에 대한 근원적인 철학적 자문과 스스로가 판단해서 내리는 답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으며 구조적 시선에서 보여지는 선방의 생태와 수행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포살 이야기 또는 선방의 풍속과 같은 일상의 모습이 담겨진 동안거 기간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스스로의 해탈을 위한 몸부림은 이어지고 쉬어가다가는 다시 또 이어졌다.
왜였을까. 무슨 이유로 처음 출간되었던 삼십여 년 전의 옛 시간에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대중들에게 끊이지 않은 호감과 정감을 받아왔던 것일까를 생각한다. 이름 있는 이들의 책상에는 한권씩 꽂혀 있더라는 말에 나는 살짝 비위가 상했다. 장식품도 아닌 것을. 겉멋이 들었던 것일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끙끙거리며 혹은 양미간에 힘을 주면서 정독했던 내가 생각한 것은 이 얇고 연약해보이기는 한권의 책이 발산하는 거대한 에너지에 대한 것이었다.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은 불교에 대한 것이었지만 글과 글을 헤집고 들어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들은 불교의 틀에서 훌쩍 뛰어넘는 그 어떤 것이었다. 그것이었겠지. 선방일기가 갖고 있는 힘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을 버리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알아가며 깨달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문득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나를 잠시 잊어두고 화두에 몰입해 부처의 가르침에 매진하는 일도 결국 좁은 범주에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려 본다. 세상의 온갖 잡다한 유혹을 멀리하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은 자세로 미세하게 흔들리는 심상의 기운마저 멀리하는 일이 밥을 먹는 일이나 잠을 자는 일처럼 결코 유연하거나 쉬운 일은 아닌 일이었을 법하다. 그러니 이런 말까지 생각나는 것이 아닐까. 머리 깎고 절에 가서 중이나 되라고 하던 그 말은 정말 무서운 말이 되어 버렸다. 누가 그 말을 함부로 했던가 말이다.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실상을 알고는 그다지도 쉽게 입술 주변에 담아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뭇사람들이 모르고 살아가는 게 진정 다행스러운 일인가도 싶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영원하다. 물질의 형태에서 보면 영원성은 부정되고 물질의 본성에서 보면 영원성이 긍정된다. 영원성을 부인함은 인간의 한계상황 때문이요, 영원성을 시인함은 인간의 가능상황 때문이다. 영원성을 불신함은 중생의 고집 때문이요, 영원성을 확신함은 불타(佛陀)의 열반(涅槃)때문이다”
모든 종교가 엇비슷하겠지만 하나의 결론은 다 같다고 믿고 있다. 결국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 어떤 존재나 신을 의지하는 과정에서 자성과 같은 스스로의 노력여하에 따라 이전보다는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는 이야기로 정리될 수 있을까. 영원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꼬집어 들춰내는 동시에 그것을 열반이라는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어느 최초의 또는 최후의 지점으로 끌어올리는 이야기는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대목이었다. 더불어 육체와 정신에 이야기를 바탕에 두고 이어지는 숙명과 운명에 대하나 이야기는 책을 읽는 동안 개인적인 화두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논리적이면서도 철학적이며 깊이 있는 사색의 묘미를 불교적 색채 안에서 흠씬 느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말이다.
한해의 것은 한해의 것으로 돌려주라고 책이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 달력장을 미련 없이 뜯어버리고 새 달력장을 거는 용기를 가지라고도 했다. 인간이란 과거의 사실만을 위해 서있는 망두석이 아니라 내일을 살려고 어느 제의 짐을 내려놓으려는 자세가 있기에 비로소 인간이라고도 했다.
책 한권을 다 접고 나니 소소한 생각들이 물밀듯 그저 흘러내리기만 한다. 사람들의 책장위에 앉아 쉬고 있다는 이 한권의 책은 작고 얇지만 그 품은 의미는 무한한 것이었나 보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중순께의 시간이다. 개인적으로 사소한 화두 내지는 깨달음을 선정하기는 어설픈 개념만 남아 무리수라는 생각이 많기에 다만, 두고두고 읽어보면 때마나 날마다 매 시간마다 뭔가 다른 깊이감을 새로이 얻게 되는 책이라는 생각만 하고 싶어진다. 이제 내가 지닌 어제의 낡은 짐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는가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