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서른 아홉 번째 서평

도스토예프스키의 돌-문영심




문학. 그 아리고 시린 것을 위하여 




영원한 열병. 식지 않는 용광로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버린 서글프고 어리석은 사람들. 그들은 바로 소설가와 시인이 되고 싶은 문학 지망생들이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방송국에 적을 두며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던 문영심의 첫 소설작품집의 제목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이라는 활자로 생명을 부여받았다.

책은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만하다. 작가 문영심과 같이 책속의 주인공 수영 역시 문학을 지망하고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공부하는 학생신분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 자신이 만들어낸 분신 수영을 거울삼아 오래전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옛 시절의 추억과 기억들을 되살려 소설로 풀어내는데 열정을 쏟은 듯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주인공 수영이다. 나를 둘러싼 인물관계는 삼총사로 대표되는 주변 인물들 즉 희수와 수옥이 등장하며 그 외 수영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확인했으나 현실의 벽 앞에 주저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 카페주인인 업선배, 수영을 외따로이 짝사랑하던 석균 등 몇몇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인칭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며 작가적 시선은 차분하면서도 문장에 숨은 힘이 있음을 느꼈다. 유려한 미적 표현이 특별하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은 스토리의 힘이 아닌가 말이다. 스토리를 끌고가는 작가의 힘이 읽는 이에게 지루하지 않고 끝까지 재미나게 잘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왜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인가. 작가 운명심이 왜 굳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을 제목으로 선정했는지 문득 생각할 때 잘 매치가 되지 않는다는 첫 느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제목이 상당히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부터 나는 작가 문영심의 속내를 살짝 들여다보는 듯 흥분감을 맛보았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인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다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인에게로부터 돌멩이 하나를 받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감옥에 갇혀 있는 시기, 그를 가두었던 비좁은 감옥에서부터 한국의 평범한 다큐작가에게 흘러오기까지 이 조그마한 돌멩이의 신비스러운 존재감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나로 집약된다. 그것은 바로 문학에의 열정! 바로 그것이었다. 돌멩이를 소유하고 있는 이에게 창작에너지가 생겨나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다소 신빙성 떨어지는 이 무한의 기대치는 소설 속 주인공에게도 또는 현실세계의 문학을 추구하는 모든 문학도들에게 심심치 않는 자극제로 그 몫을 제대로 해준다는데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소설 속에서 이 돌이 갖고 있는 허망함에 대해 진지하게 토로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노력과 열정이 있는 정신적 열정의 발로일 뿐이며, 그 어떤 매개체도 다 무의미 하다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문학을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선사하는 일종의 작가의 따끔한 충고일지도 모를 일이다.




신입생환영회 때의 기억할만한 인상을 남기는 이미지의 도입은 처음부터 책 속에 집중하는데 좋은 작용을 했다. 전체적으로 대학 4년여 동안의 에피소드와 결혼후의 삶을 통해서 문학적 또는 인간 내면에서의 성장과 고통을 수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반영한다. 저자 문영심은 자신을 닮은 한 인물 수영을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동시에 오랜기간 잊고 있었던, 잊으려 애썼던 자아를 되찾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모름지기 문학이란 반항이고 저항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모든 진부한 것,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심 없이 믿고 있는 가치를, 특히 진부한 모랄과 윤리의식 따위는 다 나의 적이었다”  p32




얼마나 치열한 열정이 느껴지는 멘트인가. 소설 속 수영이만큼은 아니더라도 한때 소설을 쓰고 시를 썼던 시절들을 생각하며 나는 적잖이 재미나고 적잖이 웃으며 혹은 가슴 쓰라리며 이 한권의 책을 읽었는가 싶다.

열정의 가치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감히 누가 가슴속 깊숙이 세포 하나하나 박혔던 그 뜨거운 열정과 치열함을 두고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도 싶다. 어설펐던 열정과 그 열정을 키워줄 자구책이었을 노력도 부족하기 짝이 없었던, 다만 투덜거리기에만 바빴던 이십대 청춘의 시절은 어딘가 소설 속 수영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공교롭게도 폐렴과 기관지염으로 입원한 아이를 끌어안고 입원실 빈자리가 없어 새벽 내내 추위에 떨며 대기 의자에 앉아 읽어야 했던 책이었다.

“한때나마 문학을 가슴에 품었던 이들에게 바치는 책!”이라 했던 문구처럼 나는 스스로 한아름의 선물을 받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춥고 힘들고 지루했던 시간들을 책과 함께 보냈다.

침상 머리맡에 붙어있는 독서등에 의지한 채 나는 아직도 퇴원하지 못한 아이 옆에서 이 글을 쓴다. 조금씩 차오르는 작은 기쁨. 오랜 시간과의 넉넉한 화해. 어쩌면 이제는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키운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비애감에서 오는 자책감 그리고 두려움으로 거의 십여 년을 책을 멀리했다. 책은 외면하고 돌아보지 않았던 내게 이 작은 책이 틈을 벌리고 가버리는 것이다. 비집고 파고들어 오고 갈수 있는 하나의 틈을. 책속에 문장들이 글이 아닌 수학적 물리학적 공식으로 비춰지지 않는 그 순간을 기다렸고 조금씩 나는 내가 만들어놓은 족쇄에서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또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한때 함께 공부했던 십년지기 친구에게 안부문자를 보냈다. 책 보다가 네 생각이 났다고. 보고 싶다고.....

비록 자신이 갖는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질의 부족으로 글을 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에는 그 보다 더 날카로운 인식의 칼을 든 많은 이들이 있음에 문득문득 나는 안도감을 느낀다. 내가 과연 어디쯤에 쥐꼬리라도 잡고 낄 만한 공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모처럼 뜨끔하면서도 재미난 소설을 만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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