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 - 대한민국의 가시고기 아버지
장혜민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서른 두 번째 서평

바보 노무현.




현실 너머 꿈을 꾸던 사람. 노무현




IMF후로 짧은기간 동안 자전적 성격이 강한 에세이를 펴내는 것이 유행을 타던 시절이 있었다. 웬만한 재력가라든지 어느정도 직장이나 가정 등 자신이 속한 곳에서 비교적 사회적 기반을 잡아 생활하는 몇몇 이들이, 자신의 삶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에 주저 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변화에 대해 대필가들은 수입을 올리기도 했을법하지만, 그 역시 유행은 유행인지라 그다지 오래 가지는 않는 눈치였다. 어느 책이든지 간에  독자들의 평가로 서점가 내지는 책 시장가에서 걸러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전적 에세이가 홍수처럼 범람하던 시기가 지나간 듯한 현 시점에서 본다고 한다면, 나름대로의 여과작업을 거쳐 조금이라도 다듬어진 양질의 자전적 에세이가 출간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각설하고 ‘바보 노무현’이란 책을 접했다. 평전인가, 전기인가, 추모의 글인가 생각하다가 자전적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미 고인이 된 이후인지라 단순히 자전적 에세이라고만 칭하기는 어색해보이기도 한 부분이 있는 듯하다. 

  정치적 노선이라면 너무 딱딱한 표현이 될듯하다. 여하간에 정치적 생각이 조금은 달랐기 때문인가.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고, 긍정적인 동조를 얹어주지도 못한 듯싶다. 사실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이 정답일 지도 모르겠다.

  책을 통해 한 사람으로의 평범한 노무현을 만났다는 게 첫 번째 가치 있는 일이고, 더불어 당대의 정치현실에 대해 세밀하지는 못하지만 비교적 쉽게 요약하면서 다시 되짚고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이 책을 통해 얻는 두 번째 가치인지도 모른다.

  노동운동을 접하게 되었던 계기와, 늦깎이로 노동의 현장에 뛰어들어 몸을 아끼지 않으며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며 온몸으로 실행에 옮겨왔던, 그의 젊은 시절을 새로 만나는 동안은 누구나 숙연해지지 않을까. 철새마냥 이리 편승하고 저리 편승하는, 고질적인 정치 흐름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행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관철시키는 고집스러움은 그 자신을 지켜주는 또다른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헌정이후 처음이었다고 했다. 대통령 탄핵사건을 접했을 때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어이없어 할 때마다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이런 농을 건다. ‘그러면 그 잃어버린 어이를 찾으면 될 것 아니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역시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이 끌어내리는 꼴이라니, 나라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섰을 때 많은 일들이 있었고,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며, 심히 몹시 앓는 어린아이처럼 온 나라가 시름시름 앓았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은 평범한 한 사내의 노무현을 기억한다. 그의 삶과 정치입문, 정치행로와 대통령으로서, 아니 그 이전 법조계의 한 일원으로서, 다양한 노동계의 부조리를 보고 느끼며 기꺼이 가슴앓이 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선다. 그의 문제의식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그의 문제해결 방식이 현실보다 한층 높은 이상적인 단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를테면 대중이나 현실은 그의 이상을 접수하고 수용할 준비가 채 되어있지 못한 상태였는데 반해, 그가 추구하는 문제해결에 대한 발상의 근원은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향 그 어딘가에 있는 무엇이 아니었을까.  

  툭하면 중얼거리는 인간 각자의 ‘이데아’를  생각한다. 이데올로기의 반목과 그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오는 각자의 이상향, 이데아는 분명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나도 통합하기에는 각각의 것을 먼저 수용하는 일이 먼저일진데 생각해보면, 노란 풍선의 물결을 타고 나타났다가 홀연히 떠나버린 이 사람 노무현은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형상을 우리 곁에 결과물로 내어놓기 이전에, 각각의 것을 수용하다가 시간이 없어 먼저 가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에게 조금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우리 각자는 어떤 생각의 변화를 가져왔을까. 나는 그에게 반대표를 주었으되, 그의 이론에 대해서는 그다지 부정 하지는 않는다.

  가난하기 때문에 불평등 위에 나와 내 자식들이 설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에 ‘이건 아니다’,라고 반기를 들 수 있는 용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그 사람 노무현은 노동의 한 가운데,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웃들 곁에서 머물기를 좋아했으며, 그 하나의 신념으로 이 땅에 변화를 가져오기를 바랐던 실천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정치적 색깔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를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가, 라는 의문을 갖을 필요가 있다.




  다만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이 자서전 에세이를 쓴 저자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저자 장혜민을 검색해보니 몇몇의 자서전 에세이를 출간했으며 그 외 그의 저서가 몇권 더 눈에 들어온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성격의 글을 쓸 때 저자의 자세에 대해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느정도의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는지. 먼저 저자 장혜민은 이번 에세이의 원고를 작성하는 저자의 자리라는 입지적 성격과, 바보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을 추종하는 자리에 선 사람중에 하나라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특성을 보이고 있었다. 

  이 두 가지 특성은 어쩌면 공과 사라는 측면에서처럼 정확하게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생각하기에 다르겠지만 두 가지 특성을 분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수도 있다. 또한 사람에 따라 굳이 분리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이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보편성을 전제로 해서, 각자의 수용하고자 하는 정치적 성격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전자에 이야기했던 두 가지 측면은 나뉘어져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또한 저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사심 없이 바라보고 써야 하는 무심함을 필요로 한다. 이 또한 독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요소이지 않을까 싶다.

  책 중간중간 보이는 작위적이며 인위적인 표현과 미화되는 부분들이 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흠으로 작용한다면, 이는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있는 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굳이 그런 인위적인 표현이 없더라 하더라도 우리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친절한 배려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던 참이다.

  또한 스토리 연계에 있어 시점이 관찰자의 그것에서 주인공의 시점으로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다소 정리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한 권의 책으로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한 걸음 또는 반걸음의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을 접하는 이라면 평범한 사람 노무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지 않을까.

 

 모든 인식에게 고하기를, 서평을 기록하는 이곳에서만이라도 다른 의식에서 벗어나 오롯하게 책 한권에 대한 서평으로서만 기록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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