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묘 18현 - 조선 선비의 거울
신봉승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른 번째 서평

조선선비의 거울 문묘18현-신봉승 지음




 열린 세상의 문을 찾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문학작품에서 시대적 현실반영에 대한 타당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그 즈음 큰 이슈가 되었던 정치 또는 사회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을 했던 이들의 의견은 물론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결론은 현실반영의 수위조절 정도에 따라 점수를 달리 주고 있었다. 

소설이나 시가 아니더라도, 가끔은 책을 쓴 이의 집필의도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책을 만나곤 한다. 때로는 너무나 명료하기까지 한 그들의 솔직함 앞에서 난처해지는 것은 오히려 독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내게 된 동기에 대해 담담하게 피력하고 있는 저자 신봉승의 이야기 앞에서 나는 고전과 현대의 소통과 조화 속에서 또 다른 교화(敎化)의 이미지를 찾는 중이었다.

각설하고 쉽게 말하면 이 책의 주제 따위를 따로 고민하지 않아서 좋을 법하기도 한 이치이다. 하지만 모든 책을 앞에 두고 주제를 따지고 소재와 줄거리를 생각한다면 책 읽는 시간이 즐거움이 아닌 노동의 의미로 전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신봉승의 문묘 18현은 저자의 집필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났던 책이었지만, 거부감 없이 잘 수용하면서 읽어갈 수 있었던 책이었다. 저자의 편안한 문체는 안정감이 있고,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를 향한 배려가 담긴 표현(긴 인용으로 인한 읽는 이의 부담감을 걱정함과 더불어 소설 형식을 빌려온 이야기 전개형식 따위)이 역시 눈에 띄는 대목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다소 어려운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 오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기실 이 책의 이야기는 이미 우리가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제목으로만 보면 조선선비의 거울, 문묘18현이라 했고, 사약으로 죽어 천년을 산다는... 문구로 시선을 붙잡는다.

조선의 선비라 하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한두 명 정도는 그 이름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역사시간이 그렇게 따분하고 졸릴 수가 없었노라고 토로하던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 한번이라도 몰입했던 이라면 문득 그때의 감흥을 되살려, 지나가는 호기심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사약을 받지는 않는다. 그렇게 본다면 일단 오류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비단 사약을 받지 않은 이들에게도 사약만큼 두렵고 견디기 힘든, 시절들을 극복해야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 시발점이 되는 곳부터 이야기하면 아마 접근이 쉽지 않을까. 지금의 성균관대학이 있는 곳은 말 그대로 조선의 성균관이 있던 자리이다. 그곳에는 아직까지도 옛 선조들이 사용해왔던 고풍스러우면서도 자연에 가까운 투박함을 자랑하는 오래된 건물들이 있으며, 여전히 긴 세월을 살아온 은행나무도 자리하고 있다. 조선의 선비들을 지방에서 시험을 통과하고 서울의 성균관으로 들어오면서 만나게 되는 장소가 문묘이다.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조에 살았던 이들. 그들은 긴 시간의 역사에 위에 선 이들이다. 충직한 신하, 나라와 임금에게 충성한 신하. 젊은 선비들은 문묘에 배향된 선조들을 보며 자신만의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은 문묘에 배향된 이들을 소개하는 형식을 갖고 있다. 크게 연대순으로 순차를 정한 듯했으며, 한 인물에 대해 출생과 성장배경을 소개하며 정계에 입문 후 왕과의 관계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주제는 강직한 신하이다. 목숨이 위태로워도 직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 가득하다.

사약을 받은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성리학과 더불어 현인의 경지에 오른 이황과 이이, 또한 이들을 따르는 후세의 또 다른 현인들, 중국의 주자학을 도입해 조선의 예학의 시초가 된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제목처럼 18명의 현자들의 이야기가 시대적 배경과 함께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는 과정을 쉽게 풀어쓰고 있다. 4부로 나뉘었으며 주제별로 구분지어 놓았으나 어찌보면 한 사람의 제자, 그리고 또 그 사람의 제자 그 아들, 또 다음 세대의 순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우매한 임금이라기보다는, 간신들이 많은 시기에 혼란한 시기를 버거워하던 위태로운 임금을 위해 명확한 사리분별을 필두로 냉철하게 써나갔던 상소를 접하는 것은 또 다른 백미였다.

그중에서도 문원공 이언적의 상소는 세부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요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섬세하며 꼼꼼한 지적으로 왕의 바른 길을 안내하고 있으며, 문성공 이이의 상소와 함께 숙종에게 올렸던 문순공 박세채의 상소 역시 많은 생각을 갖게 했던 대목이었다.




어리석은 왕은 직언을 올린 신하에게 벌을 내리기도 하지만, 그 뜻을 깊이 이해하는 왕은 그들을 늘 가까이 두려고 노력해왔다. 듣지 않으면 아무리 강직한 뜻이라 하더라도 빛을 보지 못하기 마련이다.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아무런 미련 없이 고향으로 낙향하는 대쪽 같은 의지는 또 무엇일까. 불러도 대답이 없고, 다시 임금의 곁에 와 달라고 애원을 해도 결코 마음을 바꾸지 않는 그 당찬 기세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저자의 의도를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는다하더라도, 이 책이 현실 반영의 수위를 어느 정도 조절한 것이 사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까지야 숨길 수가 없어 보인다.

새롭게 기호학파, 영남학파, 서인과 동인 내지는 노론과 소론에 대해 다시 알고 가는 시간이었다. 다만 역사적 결과물을 떠나서 동인, 남인에 비해 서인(서인에 속한 문묘 18현들의 수가 더 많은 관계일 듯싶다)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설명하는 것과 더불어, 숙종시대의 남인과 서인의 관계에 있어 정치적 성격을 떠나 숙종 개인의 사랑놀음이라 했던 부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크게 동조하지 못했던 점도 있었던 것 같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였고

나라를 내 집처럼 근심하였네

해가 아래 세상을 굽어보니

붉은 충정을 밝게 비추어 주리“

                                   -----문정공 조광조                




사약을 앞에 두고 남긴 조광조의 시를 옮겨본다. 각설하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어진 임금과 그 임금보다도 더 어진 현명한 신하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항상 서로간의 의지가 되며, 믿음과 신임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열린 통로. 서로간의 열린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10년 우리는 어느 곳에서, 그 열린 세상의 문을 만날 수 있을까. 책 한권 읽으면서 그 속에 수천가지 생각이 들어차는 것은 또 왜일지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