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집 - 책들이 탄생한 매혹의 공간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 지음, 이세진 옮김, 에리카 레너드 사진 / 윌북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스물여덟 번째 서평




작가의 집-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 지음




그들만의 집-치열한 삶의 애착을 담다




작가는 상상력을 원동력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그 분야가 소설이든, 시든 혹은 희곡이나 시나리오라 할지라도 현실에서의 경험만으로 대중의 숨은 상처까지 들춰내 다시 치유하는 것은 부족하기에, 경험을 받쳐주는 상상력의 가치가 필요조건에 속한다는 말이다.

아침부터 꽤나 딱딱한 분위기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론상 공책을 펼쳤을 때 하는 이야기이다. 사실 한편의 문학작품을 대할 때 독자는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어디까지가 허구일지를 먼저 따지지 않는다. 그저 그 작품 깊숙이 자신을 함께 싣고 가는 데 자기만족과 희열을 느끼지 않을까싶다.




작가의 집이라는 책 한권이 있다. 무심코 책을 선정한 까닭은 누구나 그렇듯이 들여다보기에 대한 호기심 내지는 신비감 때문임에 분명한듯하다. 하지만 혹자가 가졌을 그런 호기심만을 채워주기 위해 책이 생겨났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책이 지닌 이야기는 보이는 것 이외에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양의 내적가치를 품고 있다. 마치 어린 사내아이의 양쪽 주머니 속에 감춰진 구슬 조각을 셈할 때의 기분처럼 직접 꺼내기 전에 상상하는 설렘과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책에 대한 이미지는 상반될지도 모르겠다. 독자의 생각과 입장에 따라 그 가치가 다르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모든 책이 독자와의 관계성을 생각한다면 다들 비슷비슷한 운명을 이어가긴 하겠지만, 특히나 이 책은 에세이와 비슷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면서(엄밀히 따지면 에세이는 아닌듯하다) ‘들여다보기’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문학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책을 감싸고 있는 나름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을법하다. 그러나 작가들의 뒷모습과 그들의 삶이 오롯하게 그려져 있는 하나의 매개체인 집이라는 것을 소개하고는 있으나, 다소 가벼운 생각이 드는 까닭을 굳이 고백하자면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한명의 작가와 작품 그리고 그의 생애와 그 모든 것을 어우르는 존재인 집을 이야기하기에 지면은 많은 양을 다 할애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 바람결에 따라 흘러가는 아카시아 냄새처럼, 늦봄 냇가에 맥없이 떠있는 개구리 알의 무더기처럼 다만 표면위에서 살랑살랑 거리다 흩어져가는 무엇과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은 위험하게도 이놈의 느낌은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환기해야 한다. 어떻게 느끼는가는 어디까지나 독자의 영역이기 때문이기에.

깊이감을 원했다면 책을 읽고나서 각각의 작가와 작품을 다시 만나면 좋을 듯하다. 깊이 있는 재회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싶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들처럼 부담 없이 다가서기를 원했던 이들이라면,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쯤 산보하는 기분으로 읽어가도 무방할 듯 보이는 책이다. 책에 대한 느낌은 자유로워야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20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주된 이야기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집이라는 공간에 집약된다. 그들의 삶에 있어 집은 단순히 거주를 의미하는 집의 의미에서 한정되지 않는다. 집은 삶의 공간인 동시에 작업실이며, 상상의 나래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또는 뒤죽박죽 공장의 일터로서 정의 내린다. 어쩌면 이 정의는 작가 스스로가 원하던 의미가 아니었을까. 집에 대한 애착을 작품에 그대로 승화되어 구체화되기도 하는 예를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왔던 작가들을 포함해서 미국, 노르웨이, 이탈리아등 지역과 나라의 한계를 넘어 책은 오로지 작가와 작품이 탄생한 집에 고집스럽게 매달려 그 가치에 빛을 발하고 있다. 정원을 가꾸는 이도 있었으며, 작품 인세를 받아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집을 수리하는 작가의 모습도 엿보인다.

책은 삶에 대한 강한 애착, 그리고 작가로서의 끊임없는 자기존재의 확인에서 오는 고통과 희열의 얼룩이 번지는 집과 그 집에서 탄생한 빛나는 작품들의 소개가 잔잔하게 들어차있다. 특히나 카렌브릭센, 버지니아 울프, 비타 색빌웨스트 등과 같은 여류 작가들을 새롭게 접할 수 있는 기회 역시 신선했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과 그리움으로 들어찬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가슴에 새겨진 어느 훈장의 느낌처럼 책 속에 담겨진 작가의 생전 흑백사진과 함께 처연하면서도 아담한 그들이 사랑했던 옛집의 사진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인도차이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 ‘연인’의 원작자인 마르크리트 뒤라스가 남긴 말을 마지막으로 기록한다.

“노플 집의 고독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고독이었다는 점이다. 나를 위해 만든 고독, 오로지 이 집에서만 나는 혼자였다”




작가에게 고독은 현실적인 저항인 동시에 정신적인 지주였을 법하다. 의도된 고독을 견디는 고된 시간을 함께 해온 것은,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고 안식을 원했던 그들 ‘작가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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