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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 -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ㅣ 무서운 그림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8월
평점 :
스물다섯번째 서평
무서운 그림-나카노 쿄코
그림, 진실을 알다
무섭다, 라는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포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의 풍경도 비슷하지 않을까. 조그만 소리와 동선조차 느껴지지 않는 배우들의 움직임에도 어떤 이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끼며 온몸을 에워싸는 공포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 하는가하면, 또 다른 어떤 이는 그저 심드렁한 표정으로 커다란 스크린 화면을 응시하지 않던가 말이다.
무서운 그림이라고 해서 정말 심령그림쯤 생각하면 어쩐지 손발이 잘 맞지 않는 느낌이다. 저자 나카노 쿄코가 말하는 무서움이란 그림에서 풍기는 공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림의 분위기는 많은 것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보인다. 무슨 말인가.
저자는 그림을 그렸던 화가의 이야기, 그림이 그려지는 시대적 이야기, 그림의 배경이 되고 모티브가 되었던 현실에서의 사실과 또는 허구라는 측면에서의 신화를 두루 찾아내는 노력을 기울인다. 하나의 미술 작품을 평가함에 있어, 고전이니 르네상스니 따위의 미술계의 흐름을 떠나서라도, 그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요소들이 뒤따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선택적인 문제일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그림을 들여다보는 이의 머릿속에 어떤 씨앗들이 담겨있는가에 따라 싹이 오르는 식물의 풍경은 그만큼 다양하고 이채롭다는 의미일 것이다.
책 속에는 모두 스무 편의 그림과 함께 저자가 풀어놓는 지적호기심이 독자의 눈과 마음을 자극한다. 아작아작 소리가 날만한 그런 자극은 아니다. 다만 조용하게 밀려오지만 와락 안겨버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여기 한편의 그림이 있다. 저자는 그림이 스스로 말하는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인다. 이를테면 구도나 색감, 인물들의 표정과 배경스케치 따위까지 꼼꼼하게 짚고 넘어간다. 또한 한편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드러나지 않았던 뒷이야기까지 찾아내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현실적으로 눈앞에 있는 작품의 가치보다, 그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여러 배경을 이루던 면면들의 가치가 더 커 보이기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무희의 모습을 그린 화가로 유명한 드가의[에드알]이라는 그림 속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이면의 숨은 속내를 저자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아름다고 우아한 무희의 모습 뒤에 들어찬 어두운 이면의 세계. 저자는 그림 자체가 주는 공포보다는 우리가 감지하지 못했던 그 어떤 것들을 들춰냄으로써 이를테면 익숙한 것들 중에 불쑥 낯선 것을 끄집어내는 과정을 통해 생경함에서 오는 이질감, 또한 그 이질감이 끌어들이는 낯선 공포를 꺼내어놓는다.
브뢰겔의[교수대 위이 까치]나, 홀바인의[헨리 8세의 초상], 조르조네의[노파의 초상]등등... 이 책에 소개된 그림들은 다들 엇비슷한 이질감과 공포를 가지고 있다. 아늑함과 발랄함 평온함과 여느 때와 다르지 않는 일상의 안온함 속에 숨겨진 다른 인간의 이중성과 같은 희비가 갈리는 요소를 찾아내는 일은 사뭇 재미나는 일이다. 나는 저자의 이야기를 만나기 전 미리 그림을 한참이나 응시하고 그림이 담고 있는 비밀스런 것이 무엇인가 찾곤 했다. 그림 속 인물의 표정과 눈빛, 배경의 색감 따위를 보면서 저자 나카노 쿄코의 이야기와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견주어보고 비교하는 일 또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재미가 아닐까싶다.
굳이 무서운 공포감에 온 몸과 정신이 포로가 되어 그림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림의 숨은 이야기 앞에서 낯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보존하려는 방어기재가 막 작용하기 시작한 뻣뻣한 내면의 떨림이 더 큰 여운으로 남는 듯한 책이다.
교양의 그릇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한번쯤 그림의 매력에 푹 빠지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경계선상에서 어느 쪽으로 더 기울어짐이 커지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내실 있는 선택을 위해서 한번쯤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예술은 인간에게서 비롯되지 않던가. 글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나, 음악과 영화 속에서나 어디서든지 그 모습은 인간의 삶 모든 것을 담아낸다.
무서움, 섬뜩함으로 나가오는 것의 의미는 아마도 그런 것일 게다. 우리 삶속의 모습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서 오는 당혹스러움. 누군가 내 치부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 나도 모르게 머리카락 몇 올이 올라붙는 느낌을 받는 것 또한 그런 까닭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