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금강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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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번째 서평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금강 스님




미황사. 그 아름다운 이야기




“보살님, 초파일 앞두고 행사가 있으니 꼭 오세요.”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다. 그러나 낯선 이방인인 내게 앳된 얼굴의 비구니 스님은 합장을 했다. 얼떨결에 들고 있던 작은 생수병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설픈 모양으로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던 나는 그 순간 저 낯선 스님이 내 맘을 꿰뚫고 가는가 싶어 묘한 기분에 싸여 얼굴이 달아올랐던 기억이 있다. 왜 내게 말을 걸었을까. 그러나 무심하고 또 무심했던가 보다. 스님은 작은 전단지 하나를 건네며 촘촘히 보폭 작은 잰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갔다.

그 무렵 생각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까닭에 나는 매일같이 산에 올랐다. 산이라고 해봤자 한 시간 정도면 임의로 정한 나만의 반환점을 돌아 하산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고, 꼭 그 만큼의 거리였기에 그다지 험한 길은 아니었다. 그 어중간한 산 중턱에도 작은 사찰 서너 개가 자리했던 터라 종교의 의미를 불문하고 사찰 안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워낙 작은 규모의 사찰인지라 일주문 비슷한 나무문 바로 앞에 커다란 돌계단을 헐떡이며 올라서면 바로 대웅전이었다. 대웅전 앞마당 한 귀퉁이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을 즐겼던가. 내가 선 곳에서 더 높은 곳으로 뻗어나가는 거대한 산의 등줄기를 보는 일은 부드러운 힘의 기운을 느끼는 일이었다.




  대웅전을 등에 지고 바라보던 그 산이 내품었던 포근함 앞에서 나는 작은 소인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내게 있어 사찰이란, 불교 경전이란, 또는 스님들의 이야기라는 나름의 명제를 접하는 것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서는 일이다. 그것은 일상을 이어가며 생겨나는 초조함과 불안감 때로는 교만과 많은 감정의 굴레까지.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터럭이라는 이름의 모든 것들을 비워내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방법에 하나임에는 변함없다.




이름없는 사찰이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걸어들어 왔다고 하면 맞는 표현이 될까. 첫걸음은 흐릿하고 미비했으나, 그 걸음걸이로 내딛은 발걸음의 흔적은 깊고 온화했을법하다. 온당 그러하다. 땅끝마을의 작은 사찰 미황사는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으로 다가선다. 그것은 그들의 기억이 자리하는 곳마다, 그들 옆에서 순간순간 귓전에 일렁였을 바람결마다, 혹 서걱거리는 옷자락에 스쳤을 법한 그들. 사람과 사람들의 숨결마다 깊게 배어든 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절 미황사. 추운 계절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멸을 의미하는 겨울은 새로 돋아나는 모든 만물의 기대치를 품고 있기에 어쩌면 봄보다도 더 희망적이지 않겠는가. 계절의 순환에 따라 겨울 봄 그리고 여름과 가을 사계절의 고운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진 사진은 미황사를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특히나 금강 스님의 미려한 문체는, 스님의 꾸밈없이 소박하게 풀어낸 이야기와 함께 미황사가 지닌 진면목에 더욱 빛을 발하게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세 가지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그중 가장 으뜸은 금강스님의 시처럼 여운이 자리하고 잘 다듬어진 고운 글에 관한 이야기이며, 두 번째는 스님이라는 자리에 서 있는 한 인간의 금강스님을 만나는 일일 것이며, 마지막은 종교와 관련해 종교와 사람의 이야기로 생각했던 것 같다.





 책은 스님이 바라보는 미황사의 이야기, 그 안에서 부처의 뜻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구도자로서의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주변의 마을 사람들과, 미황사를 찾는 인연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이야기 속에는 불교와 민속신앙(토속신앙)의 조화가 공존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갖가지 사연을 지닌 채 미황사를 찾아온 이들의 풋풋하면서도 진솔한 각자의 인간적인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문학당과 템플스테이, 참선수행 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 등과 같은 자리에서 그 깊이를 더한다. 누구나 평범한 한 사람의 모습으로 지극히 낮은 곳에 있는 자아를 발견하고, 저마다의 해안을 얻는다는 데 의미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설사 모두가 찾으려했던 그들 나름의 답을 구하지 못했을지언정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운을 가슴에 담고 각자의 일상으로 회귀하는 것이야말로 금강스님이 꿈꿔왔던 그림이며 또한 부처의 뜻이 아니었을까싶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 이 기억난다. 불교가 왜 대중성을 잃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한용운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나는 금강 스님과 미황사를 나란히 옆에 가져다 놓고 생각의 고삐를 당긴다. 작고 미비한 존재였던 미황사가 크고 웅대한 사찰로,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자리매김한, 말 그대로 ‘미황사의 아름다운 성장기’를 보고 한용운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산중에 있어 깊이 안으로 침잠하는 것으로만 열중하지 않고, 직접 사람들에게 다가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미황사 식구들. 그리고 금강 스님의 열정에서 나는 또 다른 성불의 개념을 찾아냈다는 생각을 한다.

 

----- 늘 찾아오면 맞이할 줄만 알았지 이렇게 틀을 깨고 직접 찾아가는 법도 있었다는 사실에 더없이 행복하다

----- 이렇듯 수행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보는 것이다.




 라고  토로했던 불자의 진솔한 고백에서 미황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일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책 한권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비단 그것뿐일까.

마지막으로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라는 말을 기억하려 한다. 문을 들어 올 때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라는 뜻이라 했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나를 온전하게 비워내야 한다는 말인가.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해서는 내가 지닌 모든 것을 낡은 것인양 미련 없이 버리고 그 자리를 새롭게 한 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새날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법인 스님의 표현처럼 ‘세상 속으로 걸어 나온 절’인 미황사를 만나면서 내가 알게 된 또 다른 해안의 방법으로 오래 기억되리라 믿는다.

끝으로, 박남준 시인의 깊은 가을밤 달무리 같은 고운 글도 덤으로 만날 수 있어 좋았다는 것도 잊지 말자.




사실은 ‘들어갈 문을 찾는 일 보다, 내 것을 비우고 잊어낼 수 있을까’ 라는 화두가 먼저 내 발목을 붙잡는다. 그러나 이런 주저함마저 그곳 미황사에 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가볍게 털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바뀔 것을 예감하며 남해 끝. 땅끝마을 미황사에 대한 내 사랑 노래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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