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의 눈을 달랜다 -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60
김경주 지음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열 다섯 번째 서평

시차의 눈을 달랜다- 김경주 시인

언어의 유희 그 안에서 가슴속 파편을 찾는다

 

 내가 처음으로 시를 좋아했던 시절은 이십대 중반이었고,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몇 년 전이었지만 시를 시라고 부를만한 단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시집을 쌓아두고, 책꽂이에 시집이 보이지 않을만큼 다른 책을 겹겹이 올리고, 커다란 옷걸이 행거를 가져다놓은 채 철마다 정리되지 않은 몇몇의 두터운 가을 겨울용 외투를 늘어놓고 보낸 시간만큼이나 시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안녕, 등을 돌리고 조금씩 조금씩 뒷걸음치며 갔던가. 아니면 작별의 인사도 없이 줄행랑을 칠 요량으로 황급하게 달려갔던가.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시집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첫장을 펼치는 향연을 즐겼다. 두근거리는 마음속에는 꼭꼭 쟁여놓았던 한때의 애정이 꿈틀거리며 올라왔고, 십년도 훨씬 지나왔던 외면의 시간쯤이야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을 것만 같아 욕심은 커져 바삐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걸 어찌하면 좋을까. 내가 시집을 덮고 산 지난 시간동안 내가 알고 있던 시의 세계는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동동거리는 나를 주저하게 했다. 김경주 시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이번 그의 시집을 받아들고부터 나는 그에 대한 늦은 뒷조사를 살금살금 하기 시작했다. 그가 썼던 이전의 시 몇 편도 같이 읽어보았다.




 그가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굳이 책꽂이 귀퉁이에서 낡은 소포지로 포장해두었던 김수영 전집을 꺼내들었던 것은 사실 김수영의 시를 들여다보기 보다는, 김경주 시인의 작품세계를 더 잘 알고 싶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얇은 시집 한권에는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이 춤추고 있었다. 밤하늘에 깨알같이 박힌 별들이란 표현처럼, 그의 시집 한권에는 그만의 색이라 할 수 있을법한 이미지들이 도열한다. 현대시를 감상할 때 느껴왔던 점을 생각하면, 김경주 시인의 작품은 이미지(다소 무겁거나, 또는 어둡거나 질척이는 듯한 ) 중심의 작품세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언어를 조탁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시인의 몫을 논할 때 그 조탁의 힘과 더불어 같이 생각해봐야 할 것을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다. 이를테면. 시인은 눈과 가슴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인 안에서 멈추지 않고 세상으로 향한 열린 눈과 가슴은 시인만이 지니는 강한 무기이자, 모든 상처로부터 치유하고 보호하는 치료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내가 읽는 시가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욕심에서부터 출발하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시차의 눈을 달래기 위해서 나는 이 시집을 한번에 그치지 않고, 서너 번은 더 읽어야 함을 느꼈다. 물론 순간 느낌이 오는 시도 몇몇 있었다. 그렇지만 시인은 내게 좀 더 부지런을 떨 것을 부탁한다. 이미지들의 나열 속에서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시인의 뜨거운 가슴속 파편들을 건져냈었나.

뜨거운 가슴으로 찢긴 조각들을 하나둘 찾아 모으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달게 생각하고 주저하지 않는 시인의 시 쓰기는 얼마나 헛헛함이 몰려드는 일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시인의 시가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에서 오는 언어유희의 함정에 빠졌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언어가 풀어내는 유희라는 함정에 시인이 스스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리고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다만, 유희의 함정이나 스스로 문을 닫은 시인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독자들이 얼마만큼 시인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이해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모든 문학은 소통과 교감의 장르가 아니었던가. 개인의 경험과 사고의 범위에 따라 문학을 수용하는 형태는 갖기 다른 모습으로 전이되는 것까지도 간과하지 않겠지만, 이번 김경주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노파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하자.




“처음 눈물이라는 것을 가졌을 때는 시제를 이해한다는 느낌”

                                  

“사람의 눈으로 들어온 시차가 구름의 수명을 위로한다”

  

                                                           -연두의 시제




“이불 속에서 누군가 손을 꼭 쥐어 줄 때는 그게 누구의 손이라도 눈물이 난다 하나의 이불로만 일생을 살고 있는 삶으로 기꺼이 범람하는 바늘들의 곡선을 예우한다”

            

                                                            -바늘의 무렵




“저녁에 흰 뼈가 드러나는 바람과 함께

나는 묻힐 것이다 수십 개의 이름으로”

                                                  

                                                             -개명


시인의 가슴에서 어우러지고 있는 이미지들은 그 나름대로의 이야기로 오롯하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의 시에서 몇 구절을 옮겨 적어놓고 보니 시인은 분명 그 자신의 길을 찾아 쭉 바른 직선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행이다. 초반에 느꼈던 불안감(독특한 시 세계의 낯선 것으로부터 오는 이질감)이 이제 슬슬 나를 풀어주려 하려는가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김경주 시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시 한편을 기록하면서 서평이란 이름의 끄적거림을 마무리할까보다.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김경주




시 때문에 죽고 살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자꾸 엄마는 시를 놓으라고 울고 나는 고양이를 울린다

자꾸 시 가지고 생활을 반성하는 놈 좀 없었으면 하는데

시 때문에 30분을 책상에 앉아 있다가도 참혹해지고

시 한 편 발표하고 나면

몰래 거리에 쓰레기 봉지를 두고 온 기분이 든다




시 때문에 살 일 좀 생겼으면 하는데

사형수가 교수대를 향해 걸어가면서

뒤따라오는 간수들에게 갑자기

자꾸 밀지 말라고 울먹이는 광경처럼




밀지도 않는데 떠밀리고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시만 짜서 이대로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




시 때문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오래 시 안 쓰다가 다시 쓴다는 놈 생각

좀 하고




다시 쓴다는 놈치고

세상의 속물 다 겪은 후 오만하게 돌아온 것 못 봤다

그게 시의 구원이라면

시 때문에 형편없는 연애라도 그만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해 보지만

시 때문에 죽어서도 까불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따지고 볼 것도 없이 신파란

내 쪽에서 먼저 부러우면 지는 법이다

이기고 지고 살 일도 아닌데 시 때문에

이름 없는 무덤 옆에 가서 잠도 자 보았다




시 때문에 울먹이는 일 좀 없었으면 하는데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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