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면기행 - 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
심경호 지음 / 이가서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열 한번 째 서평
내면기행(선인들, 스스로 묘비명을 쓰다) 심경호 지음
삶의 진실성을 엿보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쓴 소설, ‘크리스마스 케롤’이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욕심쟁이에다 고집불통으로 앞뒤 코가 꽉 막힌 스크루지 영감의 이미지는 어른이 되고 난후 이따금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서로 교차되는 원인으로 발동하곤 한다. 이를테면 스크루지는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나, 나의 이미지라는 점이 그것이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이미지와 조금씩 닮아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 불쌍한 이웃을 위해 기부해달라는 이에게 스크루지는 냉소와 멸시를 건넨다. 혼자만의 아집에 몸을 숨긴 채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의도된 고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 스크루지. 이 인물을 향한 주변의 시선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저 늙은이 정말 못됐지 뭐야! 성스런 성탄절 전야에 저렇게 욕심만 부리고. 라는 식의 불만이 가득한 평가와 함께 아무도 찾아와주지 않는 외로운 존재이기에 불쌍할 뿐이다, 라는 연민이 깔린 평가로 구분되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의 주인공 스크루지는 하룻밤 사이에 세 유령에게 심하게 시달림을 받고 개과천선하게 된다. 아니 어쩌면 그 안에 잠재되어있던 본성을 되찾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그는 유령들과의 시간여행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엿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쇠고랑을 온몸에 칭칭 감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며 스크루지를 찾아와, 앞으로 전개될 유령과의 여정을 암시했던 스크루지의 옛 친구가 생각난다. 그는 살아서 행한 일로 인해 죽어서까지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처절한 몸부림으로 표현한다. 살아서 지독하게도 고약한 배타적 성격의 안일함 따위가 죽어서는 쇠고랑으로 늘 따라다니는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의식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되는지 문득 의아한 호기심 같은 게 생겨난다. 인간군상이란 말이 있다. 인구가 어떻고, 올해 새로 태어나는 신생아 수가 어떻다는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인간 군상이란 말만 듣고만 있으면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나왔던 전쟁 장면이 겹쳐진다. 수로 헤아릴 수 없는 많고 많은 이들의 군집.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 각자 개인이 갖고 있는 사고의 범위는 또 얼마나 거대한 영역으로 자리하고 있을지. 거대한 구름처럼 운집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드넓은 우주 한 귀퉁이에 내가 살고 있음을 상기하며 존재감의 위축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이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태어날 것을 명받고 이 땅에 태어난 이들이라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거대한 벽인 동시에 가장 작고 확실한 종지부. 바로 죽음이다. 죽음 그리고 죽음 뒤에 존재하는 영혼. 하지만 어렵게 읽어가야 했던 이번 책은 죽음에 대한 잡다한 논지를 거론하지 않는다. 다만 겸허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었다.
‘내면기행’ 은 600페이지가 넘는 제법 두툼한 분량의 서적이다. 저자 ‘심경호’ 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을까. 방대한 분량의 책은 단지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겉도는 생각만 내보이지 않았다. 죽음을 기다리는 옛사람들의 모습이 심야의 특집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영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한 개인이 살아서 무슨 일을 했는지, 그들의 행적을 시대 순에 맞게 따라가며 살펴보는 일을 시작으로 내면의 기행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행적을 따라가는 과정이 다른 타인이 아닌 내가 주인공이 되고, 작가가 되어 ‘자신의 의지’에 의해 시작됐다는 데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또한 저자가 애정을 갖고 선별했던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대를 앞서 살았던 이들의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과, 그들이 남기고 간 행적을 통해 죽음에의 예의와 더불어 ‘삶의 무상함과 진실성’, 이라는 주제를 제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공통적인 것은 삶의 무상함 일진데, 그 무상함을 알기까지 인간은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치며 시간과 공을 들여서야 깨닫게 된다는 게 아이러니일 것이다.
크게 5부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에서 11편, 내지는 13편 정도의 인물과 그들의 묘비명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어림잡아도 꽤 많은 이들이 언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황’, ‘박세당’, ‘정약용’과 같은 우리가 역사상 잘 알고 있는 그 누구도 있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한 어느 누군가의 행적도 기록되어 있다. 5부로 나누어 각각의 부제를 달았지만 특별하게 부제의 필요성은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굳이 나눌 필요는 없지만 이는 방대한 양에 대한 저자의 독자를 위한 배려인 듯하다.
'출세를 위해서는 줄을 잘 서야한다', 는 말이 있지만 책을 보는 내내 나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살기 위해서는 줄을 잘 서야한다” 고 말이다. 역사책에 실렸던 내용을 어렵사리 끄집어내 고민하지 않더라도, 조선조의 역사는 굽이치는 급물살과 같이 위태롭게만 보인다. 이를테면 역사는 결코 평탄하지 않는 긴 고난의 길이었음에는 분명하다. 특히나 당파의 갈림이 컸기에,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흑백논리가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고, 이도 저도 아니요, 라고 중립을 주장했던 이들은 또 중립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양쪽에서 지탄을 받아야만했다. 남인, 서인, 북인 등등 한쪽이 득세를 하면 한쪽은 전멸한다. 어느 쪽에 몸을 맡기냐에 따라 한 인간의 기복 많은 삶은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들어보자. 어떤 이는 귀향을 가서 자신이 죽은 다음에 묘비에 쓸 묘비명을 쓰면서 한탄한다. 내가 더 이상 나아질 것도 없고, 귀향지에서 그만 병들어 목숨을 다할 것 같다는 암울한 묘비명을 남긴 그였지만, 당파 내지는 정권이 바뀌는 시기에, 귀향지에서 풀려 십여 년이 넘게 고위고관의 자리에서 임금을 섬기다가 자손들이 묘비명을 수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소개되고 있다.
책의 존귀함을(이 책은 사료적인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아 보인다.)인지하고서라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들이 군데군데 숨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지켜왔던 절개와 의지, 크던 작던 간에 그것이 세상에 드러나던, 드러나지 않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들 나름대로 구축하려 애썼던 ‘학문’일 것이다. 이 학문의 범주에는 부모에 대한 효와 임금에 대한 예의, 더불어 가족의 화해를 근본으로 한다. 어쩌면 유교사상이 강한 조선조의 시대적 영향이 매우 지대했던 까닭에서 오는 결과임에 당연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 ‘학문’을 하는 과정에서 내면으로의 여정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명의 개인은 자신의 가장 마지막 순간인 죽음을 앞두고 과거와 현재, 죽음 뒤의 미래까지 겸손하게 바라보며 머리를 조아리는 긍정적 자기체념과 겸손을, 각자 성취하고자 했던 학문이라는 틀 안에서 경험했던 것이다.
저자는 이미 다른 저자들이 저술해 세상에 내놓은 죽음에 관한 책들을 거론하면서 중복됨이 없게 노력했음을 고백한다. 이 책은 기존에 나온 죽음에 대한 사색적 성향의 형이상학적 냄새를 풍기는 책이라기보다는, 보다 인간적인 측면에 접근해서 출발하고 그 끝을 맺고 있기에 독자는 더 애잔함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다. 불로초를 찾으러 애썼던 진시황도, 로마제국을 이룩했던 군주도 역사 속으로 흘러가지 않았던가. 인간이라면 결국 죽음 앞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앞에 죽음이 당도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게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가끔 고민한다.
생하고 멸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 밖에 일이다. 사멸을 앞두고 인간의 생각이 깊어지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잘 것 없었노라고’, 겸허하게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삶의 무상함과 동시에 사소하지만 진지한 ‘삶의 진실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스크루지가 실제로 죽음 앞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는 어쩌면 자기 나름대로 동양의 묘비명 비슷한 짧은 일대기를 이야기하지 않을까. 세 명의 유령을 따라다니면서 ‘나는 삶의 진리를 얻었노라고’. 말이다.
“죽은 후에야 그만둔다는 ‘사이후이 死而後已’ 야말로 자기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참모습이다”라고 했던 저자 심경호의 글이 오래도록 기억에 자리한다.
죽기 전까지는 끝낼 수 없는 것, 끝을 내서도 안 되는 일이란 무엇일까. 자신을 끊이없이 갈고 닦는 일일 것이다. 쉬지 말고 항상 생각하고, 반성하며, 올곧은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 마지막 순간까지 놓아버릴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인간의 큰 과제가 아닐까 싶다.
소개되고 있는 각각의 인물들과 묘비에 관련한 내용들, 시대적 배경, 그들 각자의 삶의 모습과 함께 당대의 주류를 이루었던 학풍을 소개하고, 이를 공부하는 이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접할 수 있었기에 이점 또한 이번 책의 감춰진 매력이라 생각 한다.
방대한 사료의 수집과 정리, 한글 번역에 힘써 노력한 저자의 애씀이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는 듯하다.
이참에 내 자신을 위한 묘비명 하나 쓰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겨나는 것은 아무래도 책의 힘인가 보다.